![]() |
그래픽=장윤아기자 baneulha@yeongnam.com |
나지라는 말레이시아 출신의 10대 여학생이었다. 눈빛이 총명하고 치과 의사 꿈을 지닌 나지라가 한국에서 살다 말레이시아로 귀국하는 날 아침 바나나우유를 샀다. 쿠알라룸푸르에 가지고 가고 싶었던 거였다. 나지라뿐 아니라 많은 외국인이 한국의 바나나우유를 무척 좋아한다. '천국의 맛'이라고 표현하는 사람들도 있다.
외국인들이 바나나우유에 열광할수록 원조 바나나 우유를 만든 회사 빙그레는 더 빙그레 웃을 것이다. 나 역시 개인적으로도 바나나우유를 좋아해 외국인들에게 "한번 마셔 보라"고 사주면 모두 "와우"하며 감탄한다. "이런 기막힌 우유를 처음 마신다"며 놀라워한다.
우즈베키스탄의 숙녀나 서남아시아 네 살 꼬마도 바나나우유를 단숨에 들이켠다. 해외에서도 바나나우유가 크게 히트를 치고 있다. 아마도 한국 식음료계에서 한류 선두주자쯤 될지도 모른다. 지구촌 나라별 공장 설립도 권하고 싶다.
바나나의 원산지는 동남아 특히 말레이시아라고 한다. 일부 학설이 분분하지만 열대 과일 대부분의 원산지가 인도네시아나 말레이시아인 걸 보면 맞을 듯하다. 그들은 7천 년 전부터 바나나를 먹고 살아왔다.
바나나를 본격적으로 먹기 시작한 지 불과 몇십 년밖에 안 된 한국 땅에서 말레이시아로 바나나우유를 사서 간다. 상황이 역전되고 보니 즐거움이 더해진다. 바나나는 야생 바나나를 포함해 수백 종류가 넘는다. 붉은색, 초록색, 갈색, 노란색… 종류도 다양하다.
코카콜라가 세계인의 입맛을 사로잡기 위해 처음 진출하는 나라에서 무료 시음회를 열었다. 그랬듯이 빙그레도 세계 여러 나라에 진출해 시음을 하게 한 뒤 입맛을 사로잡으면 콜라보다 더 인기가 높아질 수도 있다.
![]() |
게티이미지뱅크 |
한국에서는 1970년대 초반까지만 해도 바나나가 귀족 과일 대접을 받았다. 80년대에서야 급격히 퍼졌으니 일반인들이 바나나를 먹은 건 반세기도 채 되지 않는다. 지금은 바나나를 모르는 한국인이 없다.
바나나가 멀고 먼 동쪽 반도 국가인 한국에 오기까지 수천 년이라는 세월이 걸렸다. 지금은 전국 어느 곳의 상점이든 바나나 천지이다. 다른 과일보다 가격이 싼 편이지만 외국에 비해 턱없이 비싸다. 에콰도르는 20개 정도 달린 바나나 한 다발이 한국 돈 1천원 정도이다.
1970년대 초 당시 국민학교 저학년이었을 때 담임 선생님을 통해 바나나를 처음 알게 되었다. 하루는 총각 선생님이 흥미로운 동화를 들려주셨다. 어느 나라에 왕이 살았는데 외동딸을 무척 사랑했다. 죽을병에 걸린 공주를 살리는 사람에게 왕의 자리를 물려준다고 널리 알렸다. 그때 한 청년이 어디선가 바나나를 구해와 공주가 살아났다는 동화였다.
1970년대 초반 바나나를 본 적도 먹어본 적도 없던 터라 손을 번쩍 들고 바나나가 어떻게 생겼느냐고 여쭤보았다. 그러자 선생님이 노란색 분필로 칠판에다 바나나를 실감 나게 그려주셨다.
낱개 그림을 살펴보니 영락없이 고향 뒷산에서 사촌 오빠들이 따준 야생 과일 으름과 닮아 보였다. 맛이 어떤 것인지 모른다고 하자 선생님도 고개를 갸웃거리셨다. "바나나는 외국 과일이라서 귀하고 비싸 웬만해서는 구경조차 하기 힘든 거라 선생님도 못 먹어 봤다"고 하셨다.
그날부터 바나나는 매우 맛있는 '신의 과일'일 거라고 상상했다. 언젠가는 귀하디 귀한 바나나를 먹으리라 다짐했다. 그 당시 한국에서 얼마나 귀한 과일이었으면 병든 공주를 살린 신비의 명약처럼 쓰였을까 상상했다. 그러다가 어느 날 바나나를 처음 먹게 되었을 때 미끄덩거리고 그 밋밋한 맛이란…. 오랫동안 기대하고 기다려온 마음 한구석이 그냥 폭 꺼지던 헛헛함이었다.
1970년대 초반에 한국의 낙농업을 살리기 위해 전략적으로 태어난 우유! 바나나우유를 개발했다. 당시 고급 과일의 대명사였던 바나나 맛을 첨가하면 소비가 잘될 것으로 생각해서 바나나우유를 탄생시켰다. 그 회사 이름이 빙그레이다.
바나나우유의 세계 진출은 놀라운 일이다. 회사 이름이 미래를 예측한 것 같다.
오래전 바나나를 다룬 영국 BBC 다큐멘터리를 본 적 있다. 아프리카 내전에서 희생된 군인들과 일반인들의 시체를 무더기로 집단 매장했는데 그곳이 바나나 농장이었다. 죽은 이들을 비료처럼 이용한 경악할 일이 벌어진 것이다.
인류사에는 인간으로서 도저히 해서는 안 될 일들이 버젓이 벌어지고 또 되풀이되기도 한다. 그 다큐를 본 뒤 바나나를 살 때마다 습관적으로 원산지를 확인하는 버릇이 생겼다. 우리나라에는 현재까지 가까운 대만이나 필리핀 또는 중남미 에콰도르산 바나나가 들어온다.
서양 사람들은 싱가포르인들에게 '바나나'라고 별명을 지었다. 황인종 아시아인이면서 백인 유럽 사람들 행세를 한다는 비하의 의미가 내포돼 있다. 영국의 오랜 식민지였고 지구본에 점으로 찍혀 있을 만큼 작은 나라가 국가 경쟁력 세계 2위가 되자 심기가 불편했나 보다. 바나나를 넣은 단어는 대부분 경멸하는 뜻이 있다.
바나나는 지구촌에서 가장 많이 소비되는 과일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제대로 대접을 받지 못하고 있다. 바나나는 성적 암시어로도 많이 쓰여 성인용품 단골 광고 소재이기도 하다. 외국에서는 정숙한 숙녀가 되라며 남자 앞에서 바나나를 까먹지 말라고 가르친다. 바나나에는 이처럼 사연들이 많다.
인류의 엄청난 식량 자원 바나나 입장에서는 억울하지 않을까? 이제 바나나를 먹을 때 한 번쯤은 절이라도 해야 되는 건 아닐까? 바나나의 역사에도 인간의 탐욕이 서려 있다. 탐욕의 사슬 속에서도 인류애를 실천하고 사는 워런 버핏이나 빌 게이츠 같은 사람이 나타나기를 바라는 건 헛된 희망일까?
![]() |
이연실(체리) 로컬 AI블루테크 크리에이터 |
수년 전 이집트 억만장자인 나기브 사위리스는 시리아 난민들의 참상과 세 살배기 아기인 아일란의 죽음을 보고 멋진 계획을 발표했다.
그리스 섬을 사들여 난민 20만명에게 새로운 삶의 터전을 마련해주고 섬 이름도 아일란 섬으로 짓기로 했다. 인류에게 실낱같은 희망은 아직 유효한가 보다.
어린 여학생 나지라가 바나나우유를 사 들고 말레이시아로 떠나갔다. 희망찬 모습이 마음에 새겨진다.
어쩌면 그 여학생처럼 우리도 해외여행을 하며 바나나우유를 마시고 있을지도 모른다. 빙그레 웃으면서 바나나의 여정을 떠올릴까? 대만에서 일본으로, 일본에서 한국으로 들어온 바나나, 인류에게는 구원의 과일이다.
로컬 AI블루테크 크리에이터
영남일보(www.yeongnam.com), 무단전재 및 수집, 재배포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