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희정의 소소한 패션 히스토리] GREEN, 치명적 毒 품은 '욕망의 색'…지구 구하는 '생명의 색'

  • 한희정 계명대 패션디자인과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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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입력 2023-10-20 07:49  |  수정 2023-12-12 10:36  |  발행일 2023-10-20 제13면
시대별로 이미지 다양한 녹색
귀족·외계인·신선함 등 연상
19세기 에메랄드빛 염료 인기
독성 있지만 패션·미술계 유행
사람들 욕망 때문에 사용 지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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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세기 중반 영국의 녹색 드레스. 출처-metmuseum.org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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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5세기 얀 반 에이크의 아르놀피니 부부의 초상화. 출처-nationalgallery.org.uk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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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희정 (계명대 패션디자인과 교수)

춥고 싸늘한 겨울이 되면 짙은 녹음이 그리워진다. 3월이 되어 나뭇가지에서 조그맣게 올라오는 초록빛은 따뜻해질 날씨에 대한 기대와 밝은 봄옷을 챙겨야겠다는 생각을 들게 한다. 파란색과 노란색을 혼합해 만들어진 녹색은 주로 자연, 친환경, 생명, 안전, 안심, 신선함, 편안함, 행운, 휴식, 성장, 평화 등을 상징한다. 자연을 대표하는 색인 녹색은 차분하고 안정적인 느낌의 색상으로 녹색의 공간은 마음을 안정시켜 스트레스를 줄여주기도 한다. 녹색은 자연물 이외에서도 사회적 공간에서 다수 발견되는데 미국 달러화, 병원, 비상구 등이 있고, 종교적으로는 아일랜드를 상징하는 색으로 아일랜드의 선교사이자 수호성인인 성 패트릭이 영면한 날인 3월17일 '성 패트릭의 날(Saint Patrick's Day)'에 녹색 옷을 입은 사람들이 넘치는 퍼레이드가 열린다. 또한 이슬람 사상에서는 이슬람의 창시자이자 선지자인 무함마드 선지자가 녹색의 망토와 터번을 착용했다고 전해지기도 하였으며, 역사적으로도 왕조나 군인, 신성함, 자연과 생명을 상징하기도 하였다.

반면, 녹색은 파충류, 외계인을 연상시키기도 하며 질투, 미숙함, 비판적 이미지를 나타내기도 한다. 녹색이 파충류나 외계인과 연결된 것은 1980년대 초 미국 드라마 '브이(V)'에서 외계인의 피가 녹색으로 나온 것에서 비롯된 것으로 추측되며, 1999년 세기말 영화 '매트릭스(Matrix)'에서 음울한 가상현실 세계를 살아가는 미래 인류의 배경을 검정과 녹색으로 표현한 것에서 음울한 이미지가 연상되기도 하였다. 또한 영어에서 '질투심으로 얼굴이 녹색으로 변하다'는 표현이 있는 만큼 녹색은 부정적 이미지도 포함한다.

이러한 다양한 의미의 녹색은 역사 속에서도 유동적인 의미를 나타낸다. 르네상스 초기 대표적 화가인 얀 반 에이크(Jan van Eyck)의 '아르놀피니 부부의 초상화'(The Arnolfini portrait, 1434)에서 녹색의 드레스를 입은 여성의 모습을 볼 수 있다. 이 작품은 각종 장신구와 고급스럽게 보이는 원단의 의상으로 부유하고 잘 차려입은 남녀의 결혼 서약식을 연출한 장면으로, 이를 두고 당시 녹색의 의미에 대해 다산 혹은 부와 높은 지위를 나타낸다는 해석이 있다.

지금은 색을 표현하는 다양한 기술이 발달했지만 색을 얻는 초기 방법은 자연물에서 얻는 것이었다. 고대 이집트인들은 녹색 안료를 공작석과 같은 천연 광물에서 채취하였고, 로마와 그리스인들은 부식된 구리를 통해 청록색의 인공 안료를 구하였다. 이후 18세기에 화학적으로 색을 조작하는 법이 개발되어 스웨덴의 화학자 셀레(Karl Wilhelm)가 합성한 녹색은 이전에 나온 녹색을 대체하게 되어 원단뿐 아니라 그림과 아이들 장난감에도 사용될 정도로 인기를 끌게 되었다. 그러나 이는 화학적으로 독성이 강한 구리 수소 아비산염으로 치명적인 위험이 있었다.

19세기 초 독일에서 광택감과 대담한 이미지의 에메랄드 빛의 녹색 염료기 개발되었다. 그러나 이 아름다운 에메랄드 녹색에도 비소의 독성으로 치명적 위험성이 있어 많이 노출될 경우 피부 궤양, 탈모, 각혈을 일으키고 심지어 죽음에 이르기까지 하였으나 이 색에 매료된 사람들은 벽지, 카펫, 의상에 녹색을 다수 사용하는 등 색에 대한 욕망을 표현하였다. 이 아름다운 녹색은 파리 그린(Paris green)이라고도 하였으며, 이 녹색 안료는 분쇄 정도에 따라 연한 청록색에서 짙은 녹색까지 표현할 수 있어 당시 인상주의 대표적 화가인 모네, 세잔, 르누아르와 같은 당시 회화계 거장들도 많이 사용하였다.

쥐약과 살충제에 사용되는 비소를 포함한 이 에메랄드 빛의 녹색은 드레스뿐 아니라 벽지에도 사용되어 아이들도 죽음의 환경에 노출되었지만 당시 거대한 산업으로 떠오른 컬러 생산의 영향과 녹색의 매력에 빠진 사람들의 욕망으로 녹색의 사용은 지속되었다. 이에 1862년에는 댄스 파티에서 녹색 드레스를 입고 있는 해골을 묘사한 삽화가 신문에 게재되었다.

녹색은 이와 같이 많은 긍정적 이미지, 그리고 사회적, 종교적 이미지를 가지고 있지만 현대 패션에서 대중적으로 인식된 것은 오래되지 않았다. 90년대 후반까지도 활동적인 캐주얼 패션이나 골프웨어 등에 한정해서 녹색이 다양하게 다수 사용되었으나 다양한 색을 나타내는 여성복에서도 상하 녹색 패션은 부담스러움과 모호한 느낌 때문에 잘 사용하지 않았다. 그러나 2000년대 들어 녹색은 평안하면서도 당당한 이미지로 여성 정장의 컬러 팔레트에도 포함되었으며, 특히 지구를 구하는 친환경의 상징으로 가장 중요한 색이 되었다.


계명대 패션디자인과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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