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남희의 그림 에세이] 신비하고 괴이한 모양새…돌과 사랑에 빠진 선비들

  • 김남희 화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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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입력 2023-10-27 07:48  |  수정 2023-12-12 10:17  |  발행일 2023-10-27 제13면
돌 보기를 군자 대하듯-단단하고 우직한 '괴석'을 품은 옛 그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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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학교, '괴석도', 종이에 먹, <국립중앙박물관 소장>

변화가 장구해서일까. 돌은 영원히 변치 않는 불변부동의 이미지로 군자의 덕을 상징한다. 무생물임에도 십장생의 일원으로 등극했다. 기이한 형상에 힘입어 시인과 묵객이 찬미하는 대상이었고, 화가들은 붓
을 들어 신비한 자태에 날개를 달아주었다. 모양이 범상치 않아서 흔히 '괴석(怪石)'이라고 부르곤 했다.

괴석에 물길 만들어 난 키우고 꽃 심어
축소된 하나의 자연으로 여기며 가꿔
화가는 괴석 그리며 신비한 매력 만끽
시인·묵객들 찬미의 대상으로 삼기도
선비들 상상력에 불 지피며 수집 유행

◆괴석을 숭상하고 수집하는 까닭

예로부터 기이한 돌이나 바위는 기도처로 신성시되었다. 중국 삼국시대 서진(西晉)의 양천(楊泉)이 편찬한 '물리론(物理論)'에는 "흙의 정기가 돌이 되는데 돌은 기(氣)의 핵(核)이다. 기가 돌을 생성하는 것은 사람의 혈관에서 손·발톱과 치아가 나는 것과 같다"라고 되어 있다. 돌은 자연의 기가 흐르다가 그 정기가 맺힌 것으로 보았다.

서진의 장화(張華)가 지은 '박물지(博物志)'에는 "바위는 대지의 뼈가 되고 하천은 대지의 맥이 되며 초목은 대지의 털이 되고 흙은 대지의 살이 된다고 하였으니, 대지를 구성하는 가장 핵심은 바위"라고 본 것이다. 이렇듯 선인들은 돌을 숭상하고 특이한 돌을 수집하여 가까이 두었다.

송대 섭몽득(葉夢得)이 편찬한 '석림연어(石林燕語)'에 "송대 서화가 미불은 금석(金石)과 고기(古器)에 대한 감식안이 높았고, 기이한 바위를 좋아하여 특이한 바위를 보면 절을 하였다"라는 고사가 전한다.

미불이 보고 반한 돌은 '태호석(太湖石)'이다. 태호석은 원래 소주(蘇州)의 동정산 아래 동정호(洞庭湖)에서 나오는 것을 가리켰지만 '태호(太湖)' 자체가 넓은 강이나 호수를 의미하므로 다른 지역에서 나는 기괴한 석회암도 모두 태호석이라 불렀다. 조선 세조 때에 활동한 서화가 인제(仁齋) 강희안(姜希顔·1417~1464)은 "중국에서는 물속에서 괴석을 채취하지만 우리나라는 대부분 산에서 채취한다"라고 했다.

◆강희안의 태호석과 김홍도의 태호석

희귀한 돌을 수집하는 이들에게 괴석은 축소된 자연이다. 괴석에 물길을 만들고 난을 키우거나 꽃을 심었다. 조선시대에 정원을 가꾸며 인생을 즐긴 선비들이 그랬다. 정원에 각종의 나무를 심고 괴석으로 이국적인 멋을 더했다. 1449년, 서른두 살의 나이에 원예 실용서 '양화소록(養花小錄)'을 쓴 강희안은 정원에 각종 식물을 키우며 괴석에 관심을 보였다.

강희안은 명문가에서 태어났다. 이모부가 세종이고, 4대조가 당상관을 지낼 만큼 당대 최고 집안의 자손이었다. 그는 특이하게도 정원을 가꾸며 '양화(養花)'의 길을 궁구하는 한편, 식물을 기르며 군자의 덕을 함양하고자 했다. 꽃을 기른 목적도 '사람의 마음을 두텁게 하고 덕성을 기르는 것'이었다.

그의 작품 '절매삽병도'는 두 명의 동자가 정원에서 매화를 꺾어 병에 꽂는 모습을 그렸다. 왼쪽에는 대나무 숲이 있고, 오른쪽에는 클로즈업된 늙은 소나무가 있다. 화면 한가운데에 일정한 크기의 공간을 조성하여 기괴한 모양의 태호석을 세우고, 그 뒤에 매화나무를 배치했다. 태호석이 오래된 매화나무로 보일 만큼 둘은 가까이 있다. 한 동자는 매화를 꺾고, 다른 동자는 화병을 받쳐 들었다. 소나무 밑에는 다양한 모양의 분재가 놓여 있다. 고급스러운 정원경(庭園景)이다.

달빛이 은은하다. 바람이 불어 낙엽이 지는지, 선비는 독서를 하다가 창밖을 바라본다. 서재 앞마당에 잎이 넓은 나무와 덩치 큰 괴석이 있고, 서재 뒤에도 용(龍) 모양의 괴석이 있다. 서재 창에서 볼 수 있도록 또 하나의 괴석을 배치했다.

마치 수문장이 집을 지키는 듯하다. 동자와 학이 마당에서 선비의 책 읽는 소리에 귀를 기울인다. 바로 단원(檀園) 김홍도(金弘道·1745~1806?)의 '추성부도(秋聲賦圖)'다. '추성부도'는 故 이건희 회장의 기증작 중의 명품으로도 유명하다. 가을의 스산한 정경과 간결한 필치의 정갈한 분위기가 숨을 멎게 할 만큼 미려한 걸작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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강희안, '절매삽병도', 비단에 엷은 색. <국립중앙박물관 소장>

김홍도가 이 그림을 그리기 위해 붓을 들었을 때, 그의 마음은 늦가을 같았다. 한때 정조의 신임을 받았지만 화려한 시절은 길지 않았고, 병든 몸으로 생의 마감을 앞둔 처지였다. 마지막 힘을 모아서 송나라 취옹(醉翁) 구양수(歐陽脩·1007~1072)가 쉰두 살에 쓴 '추성부(秋聲賦)'를 읽고 자신의 처지를 떠올리며 이 작품에 예술혼을 쏟았다.

그리고 화폭 왼쪽 위에 '추성부'를 적고, "을축년(1805) 동지 후 3일 단구(丹邱)가 그리다"라고 쓴 후 낙관을 했다. '단구'는 김홍도의 호다. 그림을 그리고 그다음 해에 김홍도는 눈을 감았다. 이 '추성부'의 정원은 한 사람의 인생이 집약된, 자서전(自敍傳) 같은 유물이 되었다. 그곳에 구멍 뚫린, 크고 당당한 풍채의 태호석이 함께한다.

◆이인문의 괴석과 정학교의 괴석

정원이 선경(仙景)이다. 고송유수관도인(古松流水館道人) 이인문(李寅文·1745~1824)의 '연정수업(蓮亭授業)'의 무대가 그러하다. '연정수업'은 이인문이 산수, 인물, 관폭, 수렵, 오리 등 다양하게 그린 스물세 점을 엮은 '고송유수첩(古松流水帖)'에 들어 있다. 화려하게 꾸민 정원은 사람과 사슴이 노니는 낙원이다. 그 중심에 괴석 한 쌍이 있다. 이인문이 자신이 꿈꾼 정원을 표현한 것만 같다.

돌로 축대를 쌓아 연못을 넓게 조성했다. 못에는 연꽃이 피어있고, 경치를 조망할 수 있게 정자를 높이 올렸다. 멋스럽게 휘어진 소나무와 각종 희귀목을 곁들였다. 마침 정자에서는 스승과 제자가 한참 수업 중이다. 스승이 연못을 바라보는 가운데, 제자는 스승을 처다 보며 공부에 몰두한다. 숲이 우거진 그늘에서는 시동이 차를 끓이고 있다.

연못 속에는 웅장한 괴석이 정자를 중심으로 좌우에 꽃처럼 활짝 피었다. 배가 한 척 있는 것으로 보아, 보름달이 뜨면 배에 올라 시를 짓고 비가 오면 비를 맞을 것이다. 화면 왼쪽 아래에는 연못에 낚싯대를 드리운 시동이 보인다. 연못 주변으로 분재처럼 잘 다듬어진 소나무가 아름다움을 과시한다. 우거진 나무 사이로 사슴이 활보하고, 바람에 나뭇잎이 서걱거린다. 이인문이 조성한 지상낙원에 웅장한 괴석이 하늘을 향해 서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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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남희 (화가)

돌에서 세상을 본 화가가 있다. 괴석에 미친 몽인(蒙人) 정학교(丁學敎·1832~1914)이다. 그는 이색화풍을 선도한 여항(閭巷) 문인화가다. 특이한 괴석을 많이 그려서 '정괴석(丁怪石)'이라 불릴 만큼 괴석에 관한 연구가 깊었다. 그림과 글씨, 시에 뛰어난 조선 말기의 명필가로 광화문(光化門)의 편액을 썼고, 1870년 화계사 대웅전 편액과 1886년 배재학당의 편액을 썼다. 괴석을 변형해서 기울기를 높이거나 크게 부각해 괴이한 형태로 그렸다. 화면 한가운데에 괴석을 우뚝 세우고 사군자를 더해서 그만의 화풍을 정립했다.

이 '괴석도(怪石圖)'는 산이 켜켜이 쌓여 바위가 묘기를 부리는 형상이다. 구멍이 뚫린 둥근 창 너머 다른 세상을 연출한다. 괴석을 태산처럼 높게 그리고, 군데군데 가시나무와 대나무를 곁들였다. 과감하게 변형시킨 괴석은 근대화풍으로 이어질 추상화를 연상시킨다. 먹의 농담마저 섬세하게 운용하여 괴석의 입체미를 살렸다. 왼쪽에 제시(題詩)로 문인정신을 피력한 그는 괴석에서 시대를 읽고 이상향을 담고자 했다.

◆괴석이 건네는 단단한 삶의 지혜

세월의 흔적이 켜켜이 쌓인 기괴한 형상의 괴석은 사람들의 상상에 불을 지폈다. 선비들은 저마다 희귀한 괴석을 수집해서 마음을 주며 완상(玩賞)의 기쁨을 누렸다. 일부는 정원에 괴석을 배치하여, 가슴에 흥이 일면 붓을 들어 그림을 그리거나 시를 지었다. 화가들은 괴석을 그리며 화폭에 탈속의 진경을 펼쳤다. 나아가, '괴석도'로 높이 오르는 것만이 인생의 전부가 아님을 일깨워주기도 했다.

세상에 변치 않는 것은 없지만 그래도 더디게 변하는 것이 돌이다. 그래서 옛 사람들은 돌에 마음을 의탁하며 단단한 삶의 지혜를 찾았다. 묵화(墨畵) 속의 괴석이 은근히 돋보이는 이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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