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말&여행] 충북 괴산 문광저수지와 은행나무, 은행잎이 노랗게 물드는 계절, 저마다의 가을이 이 길에 있다

  • 류혜숙 여행칼럼니스트
  • |
  • 입력 2023-10-27 07:55  |  수정 2023-12-12 10:17  |  발행일 2023-10-27 제15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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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광저수지 변 400m 정도가 은행나무 길이다. 은행잎의 노랑은 지금 절정이다. 이곳의 나무들은 일찍 단풍 지고 일찍 낙엽 진다.

낮은 물가의 축축한 땅으로 곧은 은행나무의 그림자가 부드러운 곡선으로 드리워진다. 그 축축한 물가에 주저앉은 중년의 여인은 연신 웃는 얼굴이다. 참 좋다, 참 좋다 하는 눈빛이다. 젊은 여인은 그녀의 가만한 모습을 카메라에 담느라 바쁘다. 너무 바빠서 젊은 여인의 얼굴은 볼 수가 없다. 그녀들의 가을이 애틋해서 나는 물가를 떠나 은행나무들이 줄지어 서 있는 길 위로 오른다. 많은 사람들이 있다. 빌렌도르프의 비너스 같은 여인이 드레스를 입고 천천히 행진하고 카메라맨은 시종처럼 따르며 황제처럼 소리친다. "천천히! 천천히! 거기 스톱!" 번쩍 들어 올려진 아이는 은행잎을 향해 자그마한 손을 뻗는다. 유모차 안에 누운 아기는 눈을 동그랗게 뜨고 하늘을 본다. 은행잎이 노랗게 물드는 계절, 저마다의 가을이 이 길에 있다.

온통 은행잎인 저수지 수변길 400m
그 길 끝서 이어진 저수지 둑길 아래
유색벼로 만든 단원 '씨름' 재현 그림
둑길 끝서 한 바퀴 도는 2㎞ 산책로

고랭지배추 이어 절임배추로도 유명
폐소금물 활용한 산골 염전도 볼거리
김장철이 지나면 하얗고 푸른 소금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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은행나무 가로수 길을 이곳 사람들은 '은행잎 광장'이라 부른다. 광장 끝에서 물가를 따라 이어지는 데크 길은 '은행나무 길'이다.

◆양곡리 문광저수지

문광면이라 문광저수지다. 양곡리라 양곡저수지라고도 한다. 저수지의 수변 길 400m가 은행나무 길이다. 은행잎의 노랑은 지금 절정이다. 예상보다 더 빠르다. '양곡리'를 부르면 분명 종일 빛이 넉넉할 것만 같은데 실은 햇빛이 잘 들지 않는 골짜기라 한다. 그러나 해가 서쪽으로 기울면 석양에 물든단다. 그래서 예전에는 사양골이라 불렀다. '사양(斜陽)'은 '해 질 무렵에 비스듬히 비치는 햇볕'을 뜻한다. '사양'의 변화형이 '생'이라 한다. 그래서 전국적으로 '사양골'과 '생골'이 함께 쓰이는 예가 많은데 이곳도 사양골에서 생골이 되었고 생골은 다시 '바깥 생골'과 '안 생골'로 나뉘어 '양곡'이 되었다. 해 질 무렵의 볕이 찬란해서 이곳의 나무들은 일찍 단풍 지고 일찍 낙엽 진다. 은행나무 그림자 사이 볕뉘가 해 질 무렵의 비스듬한 볕 같다. 정오를 조금 지났을 뿐인데.

문광저수지는 1978년 5월에 준공됐다. 1977년인가 1979년인가, 여하튼 저수지의 준공을 전후해 마을의 한 할아버지가 은행나무를 기증했다고 한다. 200그루라고도 하고 300그루라고도 하고, 자전거를 타고 묘목 장사를 하던 분이라고도 한다. 마을 사람들은 은행나무를 심었고 지금 이렇게 자랐다. 이제 많은 사람들이 찾아오는 명소가 됐고 '동백꽃 필 무렵'이나 '더킹, 영원의 군주' 등의 드라마가 이곳에서 촬영됐다. 노란 즉석사진 부스에 찾아드는 사람 뜸하다. 그러나 사진을 청하는 이가 전혀 없지는 않다. 찾는 이에게도 기다리는 이에게도 오늘은 추억이다. 은행잎이 물들 즈음 물안개가 피어오르는 이른 아침의 풍광이 사늘한 아름다움으로 사람들을 홀린다고 한다. 그끄저께 상강이 지났으니 이제 물안개는 서리로 변해 더 아름다워지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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둑 아래는 논밭이다. 벼는 거의 비워졌는데 그림이 있는 일부만이 아직 누렇다. 유색 벼를 이용한 것으로 김홍도의 그림 '씨름'을 재현했다.

은행나무 가로수 길을 이곳 사람들은 '은행잎 광장'이라 부른다. 널찍한 길이 온통 은행잎이니 '은행잎 광장'이 그럴듯하다. 광장 끝에서 물가를 따라 이어지는 데크 길은 '은행나무 길'이다. 은행나무는 없으나 멀리 도열한 은행나무들을 한눈에 들이니 '은행나무 길'이 맞다. 저수지에 작은 집들이 떠 있다. 낚시꾼들의 집이다. 붕어, 떡붕어, 메기, 잉어, 동자개, 가물치 등이 이곳에 살고 있다고 한다. 은행잎 광장의 눈부신 소란으로부터 등 돌려 앉은 낚시꾼이 처마 그늘 속에 있고 물새들은 빈집 주변에서 논다.

은행나무 길 끝은 저수지 둑길로 이어진다. 둑 사면에 빼곡 자라난 것은 고사리다. 이 또한 '사양'의 수작일까. 둑 아래는 논밭이다. 벼는 거의 비워졌는데 그림이 있는 일부만이 아직 누렇다. 유색 벼를 이용한 논 그림으로 과거 연풍 현감을 지냈던 김홍도의 그림서 '씨름'하는 장면을 재현했다. 잘 보이지는 않지만 힘껏 버티고 있는 발은 알아차릴 수 있다. 둑길의 저 끝에서 길은 도로변을 따라 다시 은행잎 광장 입구까지 이어진다. 문광저수지를 한 바퀴 도는 2㎞의 산책로다.

◆산골에서 만나는 염전, 소금랜드

쩌렁쩌렁 울리는 색소폰 소리와 간헐적으로 터지는 박수소리가 즐겁다. 어묵을 질겅질겅 씹으며, 잔치국수를 후루룩 넘기며 한 곡 한 곡이 끝날 때마다 사람들은 손바닥이 빨개지도록 박수를 보낸다. 은행잎이 물드는 시절 동안 마을 사람들은 천막을 세우고 고구마, 배, 사과 등을 내놓는다. 우동, 커피, 튀김, 구워먹는 치즈, 뻥튀기, 붕어빵 등의 먹거리도 있다. 뜬금없지만 우도 땅콩과 진도 미역도 있다. 11월19일까지 로컬 푸드 마켓이 열린다는 플래카드가 걸려 있다. 이름난 가수들이 노래를 부르고 지역의 음악가들이 연주를 한다. 축제다. 은행잎 광장 옆에 펼쳐진 축제의 천막 너머로 '소금문화관'이라는 이름이 보인다. 소금? 문화관 옆에는 염전도 있다. 염전? 염전이라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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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금랜드. 문화관과 염전, 작은 소금창고와 함수 창고 등이 들어서 있다. 지금 염전은 텅 비어 있지만 김장철이 지나면 하얗고 푸른 소금밭이 될 것이다.

괴산은 주변이 모두 산으로 둘러싸인 전형적인 농촌이고 일교차가 커서 고랭지 배추가 많이 난다. 특히 절임 배추로 유명하다. 괴산의 절임배추는 뛰어난 품질의 배추와 국산 천일염, 그리고 지하 150m 암반수로 만든다. 어느 날 한 가지 고민거리가 생겼다고 한다. 배추를 절이는 데 쓰고 남은 소금물을 어떻게 처리할 것인가. 그때 생각해낸 게 폐 소금물을 한데 모아 소금을 생산, 제설작업에 쓰는 것이다. 괴산군은 곧 폐 소금물을 활용하는 염전 운영에 들어갔고 첩첩산중인 두메산골에서 소금이 생산된다는 것이 전국적인 화제가 되자 '소금랜드'로 발전하게 됐다.

지금 소금랜드는 친환경 생태 교육공간이자 휴양 공간으로 문화관과 염전, 작은 소금창고와 함수 창고, 소금 찜질방, 야생화공원, 한반도 모양의 수생식물원, 어린이 놀이터 등이 오밀조밀 들어서 있다. 아이들은 이곳에서 장아찌도 만들고, 김장 체험도 하고, 소금과 쌀을 맷돌로 갈아 천연 조미료를 만들기도 하고, 염전에서 공놀이도 하거나 소금을 모아 보기도 한다. 11월3일부터 5일까지 괴산종합운동장에서 '괴산김장축제'가 열린다고 한다. 지금 염전은 텅 비어 있지만 김장철이 지나면 하얗고 푸른 소금밭이 될 것이다.

글·사진=류혜숙 여행칼럼니스트 archigoom@naver.com

■ 여행 Tip

경부고속도로 대전 방면으로 가다 김천분기점에서 중부내륙고속도로 충주방향으로 간다. 연풍IC로 나가 배상교차로에서 10시 방향 문경, 괴산 쪽으로 간다. 약 500m쯤 달리다 적석교차로에서 증평, 괴산 방향 오른쪽으로 빠져나가 직진한다. 34번 국도 괴산, 증평, 청주 방향으로 계속 달리다 동진교차로에서 나가 괴산방향으로 직진, 시계탑사거리에서 좌회전해 직진, 대사삼거리에서 좌회전해 19번 국도를 타고 가면 된다. 은행나무 길 바로 옆에 소금랜드가 위치하며 소금랜드 입구와 뒤편에 주차장이 있다. 소금랜드 이용시간은 동절기 오전 10시부터 오후 5시, 하절기 오전 10시부터 오후 6시까지며 소금문화관 입장료는 소인 500원, 대인 1천500원, 주차는 무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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