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찬일의 방방곡곡/길을 걷다] 인천 무의도 실미도 트레킹

  • 김찬일 시인·방방곡곡 트레킹 회장
  • |
  • 입력 2023-11-10 08:06  |  수정 2023-12-12 10:55  |  발행일 2023-11-10 제14면
'실미도'의 증오도 '천국의 계단' 속 사랑도 사라지고…코발트빛 바다만 남았네

2023110501000156400005631
무의도에서 실미도 가는 모세의 기적 길

그땐 정말 몰랐다. 저 바다가 무엇을 말하고 있는지. 무의대교에서 바라보는 바다는 오전의 햇살 아래 코발트블루로 반짝이고 있었다. 바다의 아득한 수평선은 하늘로 날아올라 나의 꿈과 미래에 날개를 달아주었다. 무의도 실미 해안에 도착했다. 잔잔한 파도가 수없이 밀려와 백사장을 흠뻑 적시고 물러나곤 했다. 나는 장엄한 교향곡을 처음 들었을 때처럼, 저 쉴 새 없이 반복되는 바닷물의 오고 감에 애면글면 진한 감동을 느꼈다. 파도가 칠 때마다 하얀 포말이 흰장미처럼 피었다 지고, 따라서 나의 감정도 활짝 피었다 진다.

마침 물때가 맞았으므로 실미도로 건너간다. 실미도는 인천 앞바다에 속한 작은 무인도다. 무의도와 실미도를 이어주는 모랫길은 만조가 되면 바닷물이 출렁거려 섬과 섬을 만들고, 간조 땐 섬과 섬을 연결하여 사람이 걸어서 가는 소위 모세의 기적을 만든다. 사람이 다니는 길은 어장 뽈대로 표시, 갯벌과 분리하고 있다. 발을 통해 오는 모래의 촉감에 바다를 느낀다. 불과 10분 만에 실미도에 도착한다. 이따금 사람이 살지 않았기 때문에 자연이 시나브로 살아 있다.

2023110501000156400005633
무의도 해안에서 본 실미도
2023110501000156400005634
무의도 둘레길 1코스와 무의대교
2023110501000156400005635
무의도 둘레길 1코스 데크길

우측 해변을 걷는다. 바다 건너 육지에는 이름 모를 산야가 펼쳐진다. 그러나 눈길을 사로잡는 것은 역시 바다다. 나에게 파란 바다는 신비고 기쁨이다. 그리고 백사장을 걸으며 나누는 형이상학의 대화다. 바다, 온갖 생명이 살고, 오염을 정화시키며, 무한가능성이 있는 곳. 바다는 사실 모든 생명을 낳았다. 우리 인간을 포함해서. 인간은 바다의 포유류가 육지에 살게 되면서 진화한 영장류다. 해변에 돌이 많아 더 나아가지 못하고 돌아 나온다.

처음 길의 반대편으로 간다. 이쪽에선 무의도가 훤히 보이며, 백사장도 제법 있다. 길지 않는 썰물시간임에도 모래 위에는 수많은 발자국이 이리저리 엉켜 있다. 누가 언제 저렇게 많이 걸었을까. 백사장이 다하고 여기도 돌이 해변을 메우고 있다. 형형색색의 돌들이 상상과 편안함을 주었다. 사람들의 어떠한 요구에도 자기를 지키는 돌 앞에 서면, 나는 돌이 되고 내면의 아픔은 사라졌다. 단지 일시적인 현상으로 나타나는 나 자신에 비해 돌은 그나마 영원일 것이다. 이러한 원시의 해변을 걸으면서, 나는 왠지 이글거리는 감정에 사로잡혀야 했다. 그건 아픔과 다른 끝없이 분출하는 어떤 힘의 정서였다. 내 안에 있는 또 다른 존재인 그 힘은 저기에 서 있는 마치 나 자신 같은 돌의 이입이었다.

산 쪽으로 돌아 나오는데, 곳곳에 쓰레기가 보인다. 쓰레기는 바다 파괴의 첨병이다. 인류는 이미 바다를 손상하기 시작했고, 그게 부메랑이 되어 바다는 인류에게 치명적인 상처를 입힐 것이다. 이는 우리에게 가장 위급한 문제인데, 정작 이를 심각하게 여기는 사람은 거의 소수다. 인류에게 가장 중요한 생존의 열쇠는 바로 그곳, 바다에 있다. 바다를 모르기에 우리는 바다를 더럽히고 약탈하고 죽이고 있다. 그게 우리 자신도 함께 더럽히고 약탈하고 죽이는 것이다. 영장류라 하는 인류가 어쩌다 이 지경에 이르게 된 것일까.


김신조 사건 후 결성된 북파공작대
캠프였던 무인도 비극 영화화한 곳
20년 전 화제 드라마 촬영지이기도

지금 그곳 해안 밀물썰물 드나들며
무의도와 이어지는 '화합의 모랫길'



밀물이 들어오기 전에 실미도를 빠져나간다. 무의도에는 영화 실미도 촬영 세트장이 있다. 영화 실미도(實尾島)는 1971년 8월23일 실제로 일어났던 8·23 난동 사건을 영화화한 것이다. 1999년 백동호의 소설 '실미도'가 발표된 후, 그동안 숨겨져 왔던 실미도 684부대의 사건 진상이 세상에 알려졌다. 이에 따라 영화 '실미도'가 만들어지고 2003년 개봉하였다. 영화 실미도는 우리나라 처음으로 천만 관객 수를 돌파한 비극적이면서도 가슴을 찢는 684 북파 부대 사건을 영화화한 것이다. 그 내용은 이렇다. 1968년 1월21일 북한의 124부대, 즉 김신조를 포함한 31명의 무장 공비들이 청와대를 습격 당시의 박정희 대통령을 암살하고자 침투하였다. 이 과정에서 29명은 사살되고, 1명은 북으로 돌아갔고 1명 즉 김신조는 투항하게 되었다. 투항한 김신조는 침투목적을 묻는 기자에게 "박정희 모가지 따로 왔수다"라고 응대했다. 1·21 사건에 대해, 그 당시 전 국민은 분노하고 북한을 규탄했다. 우리 군도 이에 맞서 김일성 암살 목적으로 북파 공작대를 창설하게 되는데, 그중 하나가 공군 소속의 684부대였다. 1968년 4월에 창설하여 684라는 부대명이 생겼다. 인천 앞바다 무인도 실미도가 684부대의 캠프였다.

사회 취약계층 가난한 하층민의 젊은이 31명을 모병하여 지옥 훈련이 시작되었다. 이런저런 이유로 7명의 젊은이가 사망하고 24명의 정예 부대원들이 남았으나, 그 사이 남북 화해 무드가 조성되어 684부대의 북파 침투는 취소되었다. 이렇게 되자 창설 목적과는 달리 이제 684부대는 골칫거리가 되었다. 그러자 부대원에 대한 대우도 급격히 나빠지고 부대원들을 제거한다는 흉흉한 소문이 부대 내 떠돌기도 했다. 그럭저럭 3년 4개월이 지난 1971년 8월23일 오랜 훈련의 트라우마로 684부대원들의 불만이 폭발, 난동을 일으켰다. 부대 훈련 조교, 기간병, 장교 등 18명을 살해하고 실미도를 탈출해 인천 독배 부리 해안에 상륙, 버스를 탈취 청와대로 향하다가, 군경과 교전을 벌이던 중 수류탄을 터트려 자폭했다. 버스 안에서 20명이 즉사하고 4명만 살아남았다. 하지만 생존자 4명도 이듬해 그러니까 1972년 3월10일 군사재판에서 사형이 확정되고 서둘러 집행되었다.

이런 전무후무한 사건이 일어났으나 언론 통제로 세상에 알려지지 못하고 30년 동안 묻혀 있었다. 그러다가 '실미도' 소설로 그 사실이 세상에 드러나게 되었다. 인간이 인간에 대해 어디까지 잔인할 수 있는지. 그리고 인간이 인간에 대해 어떤 존재인가를 생각하며 터벅터벅 걷는다.

그리고 드라마 '천국의 계단'도 이 섬에서 촬영했다. 드라마 천국의 계단은 2003년 12월3일부터 2004년 2월5일까지 총 20부작으로 방영된 SBS 수목 드라마이다. 주연은 권상우, 최지우, 신현준, 김태희 네 명이며 방영 당시 평균 시청률이 40%를 웃도는 등 드라마 천국의 계단을 모르는 사람이 없을 정도로 대단한 인기를 끌었던 화제작이었다. 그 후 드라마가 끝나고 난 다음에도 각종 패러디와 최지우, 김태희의 액세서리 및 패션들이 유행될 만큼 사람들의 관심을 모았다. "사랑하는 사람은 돌아오는 거야. 아무리 먼 길을 돌아도 결국 돌아오는 거야." "천국은 저에게는 갈 수 없는 나라입니다. 이 벽화 앞에서 세상의 모든 사랑이 이루어지길 그 어떤 용서 받지 못할 사랑도 이루어지길 기원합니다." 아직도 회자되는 명대사가 귀에 환청으로 들린다.

2023110501000156400005632
김찬일 (시인·방방곡곡 트레킹 회장)

무녀가 춤추는 형상을 하고 있다는 무의도의 둘레길 1코스를 걷는다. 실미 해안에서 큰무리 선착장까지다. 실미 해안의 백사장 길은 길 없는 길이다. 마치 반달 같은 만에 떠 있는 실미도가 유난히 눈에서 어릿어릿하다. 이 해안은 도둑게들이 점령한 땅이다. 도둑게는 정식 학명으로 해안에서 2㎞ 정도 떨어진 산에서도 서식한다. 생김새가 웃는 얼굴과 같아 'smile crab'이라 불리기도 한다. 데크 로드로 걷는다. 섬과 바다 하늘, 멀리 산과 도시 그리고 인간이 만든 걸작인 무의대교는 한 편의 시(詩)임에 어김없다. 머리에 쏟아져 내리는 영감은 여기가 또 다른 세계에 이르는 길목임을 암시하고 있다. 데크길이 끝나고 산길로 접어든다. '웬수부리'를 지나고 임경업 장군이 진을 쳤다는 '구낙구지'도 통과하여 큰 무리 선착장에 도착한다. 오후의 섬과 하루의 시간 속 그 틈새에 과연 내가 걷고자 하는 길이 더 있었는지 아련하다.

글=김찬일<시인·방방곡곡 트레킹 회장> kc12taegu@hanmail.net
사진=유판도 여행 사진작가


☞문의: 인천 중구 관광과 (032)760-6475
☞내비: 인천시 중구 무의동 729-15(무의도 실미 해안 주차장)
☞트레킹 코스: 무의도 실미 해안 유원지~실미도~무의도~무의도 둘레길 1코스~큰무리 선착장
☞인근의 볼거리 : 소월미도, 소래포구, 팔미도, 인천종합어시장, 연안부두 바다쉼터, 차이나타운, 인천 대공원, 영종도, 잠진도, 시화호 조력 발전소

영남일보(www.yeongnam.com), 무단전재 및 수집, 재배포금지

위클리포유인기뉴스

영남일보TV





영남일보TV

더보기




많이 본 뉴스

  • 최신
  • 주간
  • 월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