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만진의 문학 향기] 붉은 망아지

  • 정만진 소설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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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입력 2023-12-01  |  수정 2024-02-09 07:47  |  발행일 2023-12-01 제17면

[정만진의 문학 향기] 붉은 망아지
정만진 소설가

1975년 12월1일 우리나라 최초 국산차 모델 '포니'가 태어났다. pony는 체고가 144㎝ 이하인 '조랑말'을 가리킨다. 그 이상이면 horse, 우리말로 그냥 '말'이다. 즉 '포니'는 자사 제품을 '귀여운' 소형차로 여겨달라는 생산자 쪽 주문이었던 셈이다.

단편 'The Red Pony'는 존 스타인 벡의 1933년 발표작이다. 이 소설은 영어 교과서에 종종 실렸는데, 흔히 '붉은 망아지'로 옮겨졌다. 조랑말과 망아지는 전혀 다르다. 소설 속 pony를 역자는 '귀여운 조랑말 망아지'로 인식한 모양이다.

주인공 소년 조디에게 아버지가 망아지 한 마리를 선물한다. "먹이도 잘 주고, 우리도 깨끗하게 치워줘라." 아버지에게 조디가 묻는다. "내 거예요?" 그날부터 다른 아이들이 조디를 존경 어린 눈으로 쳐다보는 것은 당연하다.

그동안 아이들은 조용한 조디를 겁쟁이 취급하며 깔보아 왔다. 그런데 오늘부터는 전혀 다른 사람으로 느껴진다. pony를 소유하고 있다! 재갈, 안장, 말총 등을 갖추고 말 위에 올라탄 조디는 자신들과 차원이 다른 세계의 위엄이다.

밝은 어느 날, 조디는 망아지를 마구간에서 꺼내어 햇볕을 쬘 수 있게 해놓고 등교한다. 그런데 수업 중 갑자기 폭우가 쏟아진다. 하교하는 대로 부랴부랴 돌아와 보니 망아지가 잔뜩 비에 젖은 채 부들부들 떨고 있다.

다음 날 아침, 망아지가 어디론가 사라졌다. 놀라서 찾아보니 덤불 속 빈터에 누워 있다. 검은 말똥가리들이 빙빙 공중을 맴돈다. 조디는 망아지 머리맡에 앉아 '때'를 기다리는 큰 말똥가리의 날갯죽지를 힘닿는 대로 잡아당겨 끌어내린다.

조디는 제 몸집만큼이나 큰 말똥가리와 사투를 벌인다. 이윽고 새가 죽는다. 조디는 죽은 말똥가리를 때리고 또 때린다. 아버지가 "말똥가리가 망아지를 죽인 것은 아니지 않느냐?"라고 말한다. 조디가 대답한다. "그건 나도 알아요!"

우리나라 국어 교과서에 이효석의 '사냥'이 수록되던 때가 있었다. 그 무렵에는 학교가 학생들을 동원해 산을 에워싸고 짐승을 잡았다. 생명 경시는 일반적 풍조였고, 교육자가 학생에게 아무렇게나 비교육적 행위를 강요해도 괜찮던 시절이었다.

말똥가리가 망아지를 죽인 것은 아니다. 하지만 망아지가 죽기를 기다린다는 점만으로도 말똥가리는 잔인의 극치이다. 약자를 억눌러 사익을 취하는 '인간 말똥가리'가 발을 붙일 수 없는 진정한 민주사회의 만개를 기다린다. 〈소설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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