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하프타임] 보수의 심장? 또 쓰고 버려질까 두렵다

  • 정재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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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입력 2023-12-08  |  수정 2023-12-08 07:06  |  발행일 2023-12-08 제26면
TK 보수의 심장 불리지만

21대 들어 후퇴론만 나와

쓰고 버려지는 듯한 인상

지역비하발언에도 침묵

22대 총선서도 재현 우려

[하프타임] 보수의 심장? 또 쓰고 버려질까 두렵다
정재훈 서울본부 정치부 선임기자

"그래서 당신 생각에 보수의 심장이 뛰고 있는 것 같아?"

여권 고위 인사가 가볍게 던진 말이 무겁게 다가왔다. 듣자마자 쉽사리 대답하지 못했다. 가벼운 식사자리였던 만큼 "잘 뛰고 있으면 이럴까요?"라며 웃어 넘겼지만, 분명 '깊은 울림'이 있었다.

그러다 지난 주말에 다시 한번 지역 정치권을 되돌아봤다. 총선을 앞두고 있는 대구·경북(TK)의 현 상황을 말이다. 흔히들 TK는 '보수의 심장'이라고 한다. 국민의힘까지 이어지고 있는 보수 여권의 뿌리이자 강력한 '지지기반'이기 때문이다. 전당대회 같은 주요 행사에서는 어김없이 당의 주요 인사들이 TK 지역 민심을 얻기 위해 지역을 찾는다. 이들은 "어려울 때 당을 지킨 성지"라거나 "산업화의 중심"이라고 치켜세우기도 한다.

현재도 TK는 각종 여론조사에서 보수여당 지지세 및 대통령에 대한 국정 지지가 전국에서 가장 높다. 타 지역과 큰 차이를 보이는 수준이다. 그렇지만 이런 지표만 보고 보수의 심장이라는 단어를 쓸 수 있을지는 의문이 든다.

솔직히 말하면 보수의 심장이라기보단 이용만 당하고 버려지는 '짝사랑'에 가깝다는 인상이다. 지난 21대 총선과 이번 국회에서 이 같은 점은 더 심해졌다. 우리 지역이 지속해서 '2선 후퇴' 또는 '용퇴론'에 시달리고 있는 것이다. 총선 직후 당시 미래통합당은 TK와 부산·경남(PK)을 포함한 영남권 및 수도권 일부 텃밭에서만 승리해 '영남 자민련'이라는 조롱을 받았다. 그런데 이후 당내에서 제기된 방안은 영남 지역 인사들의 후퇴가 필요하다는 것이었다. 이후 전당대회나 당내 주요 임명직 역시 마찬가지였다. '영남권 인사들이 너무 많다'는 비판이 잇따랐다. 당의 지지기반을 버려야 한다는 어이없는 논리였다. 수도권에서는 당의 지지기반을 부끄럽게 생각하고 있다는 인상마저 들었다.

이 같은 '역차별'은 현재 진행형이다. 가장 최근인 경주의 김석기 의원이 지난달 최고위원으로 선출됐을 때 "왜 또 TK인가"라며 비판하는 경우도 있었다. 이는 TK 출신 김재원 전 최고위원의 공석으로 생긴 자리였음에도 말이다. 인요한 혁신위원장이 '낙동강 하류'에 대해 언급한 것 역시 마찬가지다.

가장 화가 나는 점은 지역의 목소리를 대변해야 할 지역 국회의원들이 '조용하다'는 점이다. 당신들을 무시하는 것은 결국 지역 유권자들을 욕 먹이는 일이 아니던가. 인 위원장 발언 당시 김용판 의원만이 "잡아놓은 고기 취급"이라며 비공개로 목소리를 낸 것 외에는 별다른 목소리가 보이지 않는다. 최근에 신당 창당을 준비 중인 이준석 전 대표가 지역 의원들을 향해 '비만 고양이'라고 비판했지만, 홍석준 의원이 방송에서 "부글부글하고 있다"고 말한 것 말고는 별다른 대응이 없다. 지역을 비판한 발언에도 침묵하고 있는 것을 보니, 이쯤 되면 보수의 심장은 뛰지 않고 있다고 표현해도 될 것 같다.

22대 총선 과정에서 또 '수도권'을 위해 지역이 희생해야 하는 상황이 벌어질 것 같아 두렵다. 지역민들의 목소리를 반영하지 않고 교체율을 위한 기계적 교체가 이뤄지거나, 새로운 인물을 위해 지역에서 빈자리를 만들어줘야 한다는 이상한 논리도 튀어나올 것 같다. 쓰고 버려질 비운 앞에서 우리는 무엇을, 어떻게 해야 할까.
정재훈 서울본부 정치부 선임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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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울본부 선임기자 정재훈입니다. 대통령실과 국회 여당을 출입하고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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