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권현준의 시네마틱 유니버스] 부산 '전국영화상영자대회'를 다녀와서

  • 권혁준 대구영상미디어센터 사무국장
  • |
  • 입력 2023-12-22 08:02  |  수정 2023-12-22 08:07  |  발행일 2023-12-22 제14면
영화를 빨리감기로 보는 시대…'사치재 전락' 위기의 극장 구하려면?

2023121801000580000024071
그래픽=장수현기자 jsh10623@yeongnam.com

최근 '서울의 봄'이 흥행을 일으키며 모처럼 극장가가 활기를 띠고 있다. 이 단면만 보고 있자면 흡사 팬데믹 이전, 2019년 정점을 찍었던 그 당시의 극장가가 떠오르기도 한다. 오죽하면 한 멀티플렉스 체인의 직원은 팬데믹으로 줄어든 직원 수로는 도저히 감당하기 힘들어 관객들에게 제발 극장에 오지 말라는 호소까지 할 지경이니까.

이런 가운데 지난 11월, 영화진흥위원회는 '2022년 영화소비자 행태조사' 결과를 발표하였다. 이 조사는 코로나 팬데믹이 영화소비자의 행태에 어떠한 영향을 미쳤고, 또 향후의 형태를 예측하기 위해 실시되었다. 이제 팬데믹은 막을 내렸지만, 팬데믹이 가속화한 미디어 환경의 변화 속에 이 조사결과는 많은 시사점을 담고 있다.(물론 여전히 팬데믹의 여파 속에 있었던 2022년의 조사라는 점은 감안할 필요가 있다.)

보고서는 코로나 팬데믹 동안 △사회적 거리두기로 인해 극장 관람이 급감하고, 집에서 OTT로 영화를 관람하는 경향이 증가함에 따라, OTT를 통한 극장 외 영화 관람 성장이 가속화되어 극장의 자리를 위협하는 대체재 성격을 보인다는 점, △이 시기 극장은 관객 수 급감의 위기를 티켓 가격 상승, 블록버스터와 같이 극장에서 큰 스크린으로 보아야 하는 영화 위주 상영 및 특별관과 프리미엄관과 같은 체험 공간 성격 강화, △영화를 통해 재미있고 새롭고 다양한 콘텐츠를 감상하겠다는 영화 소비의 본원적 가치에 대한 요구가 높아지고 있는 한편, 경제적, 시간적 비용 투자 대비 만족도를 극대화하려는 소비자의 다양한 선호가 증가하고 있어, 이를 동시에 만족시켜야 하는 필요가 제기된다는 점을 종합 의견으로 내놓았다.


독립영화관·미디어센터 등 비영리단체 참가
1980~90년대 영화문화운동세대 활동 조명
'커뮤니티시네마 상영 지속가능 방안' 모색
"콘텐츠 단순 소비 아닌 감상에 무게 둬야"



이 결과가 발표되고 약 2주 뒤 전국의 영화상영자들이 모인 '2023 전국영화상영자대회'가 부산에서 열렸다. 이 자리엔 독립·예술영화 전용관, 시네마테크, 미디어센터, 영화제, 커뮤니티시네마 등 비영리적 상영활동을 주도적으로 하고 있는 단체들이 참가하였다. 비영리라는 단서가 의미하듯 모인 이들은 멀티플렉스와 같은 상영'업'자들은 아니다. 그래서 더 생소한 영역의 사람들일 수 있지만, 궁극적으로 영화를 통한 이익보다는 문화를 다양하게 만들어 가고자 하는 사람들이라 할 수 있다. 그런데 왜 지금, 이들은 이렇게 모여야만 했을까?

이제 영화는 일종의 사치재가 되어가고 있는 것 같다. '영화를 빨리 감기로 보는 사람들'의 저자 이나다 도요시는 이를 두고 영화는 소위 '가성비'가 떨어지기 때문이라고 분석하고 있다. 앞서 영화 소비자 행태 조사에서도 드러났듯이, 비용과 시간 투자 대비 만족도를 극대화하기 위해 OTT를 통해 영화를 보는 사람들 1/4이 스킵 기능을 쓰고 있고, 많은 사람들이 유튜브 채널의 요약본을 시청하는 것으로 대체하기도 한다. 이는 돈과 시간을 들이지 않아도 마치 영화 한 편을 온전히 본 것과 같은 착각이 들 정도로 해당 영화를 이해하게 만든다. 그래서 이 과정을 거치고 나면 이미 봐야 하는 콘텐츠가 너무나도 넘쳐나는 와중에 인기 있는 콘텐츠를 놓치지 않게 되고, 결국 누군가와의 대화에서 소외되지 않을 수 있게 되는 것이다. 영화를 감상한다고 말하기보다는, 콘텐츠를 소비한다라고 말하는 것이 더 맞는 표현이 되는 것이다.

과거, 영화를 감상하고 분석하고 비평하는 문화가 새로운 영화의 탄생을 앞당기고 영화사를 발전시켜온 것처럼 전국영화상영자대회에 모인 이들 역시 영화 상영과 관람의 문화가 매우 중요하다는 것을 인식하고 있는 만큼 이번 대회에서는 많은 주제들이 다뤄졌다. '영화와 극장, 관객의 문화사'라는 주제를 통해 1980~90년대 영화문화운동 세대의 경험을 바탕으로 우리나라 영화상영 및 극장의 역사를 짚으며 관객 문화활동의 의미를 되새길 수 있었고, 토론 프로그램에서는 '영화상영의 지속가능성 찾기'를 주제로 독립예술영화전용관과 관객의 공생을 위한 길을 모색하는 논의가, '소형 상설영화관 구축 및 운영에 관한 실효적 방안'을 주제로 커뮤니티시네마의 지속가능성을 위한 극장 기반의 공공적 비즈니스 모델을 만드는 방안에 대한 논의를 통해 영화 상영 문화의 오늘을 점검하고 미래를 모색할 수 있었다. 그리고 여러 상영 현장에서 활동하고 있는 상영활동가들이 '영화를 상영하는 일에 대하여'라는 주제로 영화를 상영하는 일에 대한 고민과 미래 전망에 대한 이야기를 나누며, 저마다의 의미와 가치에 대해 참가자들과 공유하였다.

2023121801000580000024072
권현준 (대구영상미디어센터 사무국장)

이번 대화에서는 보다 본질에 집중하면서도 변화하는 환경 속에서 어떻게 대응해야 할지에 대한 진지한 논의가 이어졌다. 누군가는 시대가 이렇게 변하고 있는데 발 빠르게 대응하지 못한다고 말할 수도 있다. 하지만 변화에 휩쓸려 가기보다는 비영리적 상영활동의 의미를 되새겨보면서, 영화 상영문화의 가치를 재발견하고 또 다른 미래를 상상해 보는 것 역시 중요한 지점이라고 생각한다. '소비'가 아닌 '감상'하는 영화, '수익'이 아닌 '문화'로서의 영화가 여전히 중요하고 그것이 현실적으로 점차 퇴색되어 간다고 하더라도, 이러한 이야기들이 더 많은 사람들과 함께 나눌 필요가 있다고 생각한다. 그리고 어쩌면 무감각해질 정도로 빨리 변하고, 질릴 정도로 많은 콘텐츠가 넘쳐나는 시대에 오히려 이러한 활동과 문화의 중요성은 더 커지지 않을까 조심스레 예측해 본다.

대구영상미디어센터 사무국장

영남일보(www.yeongnam.com), 무단전재 및 수집, 재배포금지

위클리포유인기뉴스

영남일보TV





영남일보TV

더보기




많이 본 뉴스

  • 최신
  • 주간
  • 월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