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말&여행] 경북 영덕 창포리 풍력발전단지, 하늘과 땅 사이 흔들리는 하얀 풍차…새해 어서 오라는 인사

  • 류혜숙 여행칼럼니스트
  • |
  • 입력 2023-12-29 08:04  |  수정 2023-12-29 08:06  |  발행일 2023-12-29 제15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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동해를 병풍처럼 드리워 놓은 산자락에 약사여래불의 불두가 덩그러니 놓여 있다. '손 서로 끌고 잡고' 달 넘으면 약사여래부처님이 슬쩍 등 떠밀어 주실지도 모른다.

낮은 야산이라더니 높기만 하다. 가파르기만 하다. 무성한 숲속을 넓고 매끄럽게 헤쳐나가는 도로를 달리며 주먹을 꼭 쥐고 척추를 세워 점점 높아가는 정상을 만진다. 정상은 생생한 소리들로 팽팽하다. 유리처럼 날카롭게 진격해 오는 바람과 사방에서 쏟아지는 화살 같은 겨울 햇살, 영원한 곡선으로 이어지는 산등성이와 공중에 걸린 풍차의 날개가 서로 응답하며 떨고 있다. 저 멀리 동해는 다른 세상처럼 아렴풋하다. 그러나 거대하고도 예민한 물결은 그가 이들과 한 족속이란 뜻이지. 바다를 향해 선 사람들도 모두 하늘과 땅 사이의 투명한 고요 속에서 가볍게 흔들리고 있다. 다산은 어느 해 '세밑'에 이렇게 노래했다. '하늘 닿는 부귀도 결국은 소멸하리/ 사방 풍광을 찾아보는 것도 괜찮고말고.' 그렇지, 괜찮고말고. 이 순정한 공명 속에 함께여서 더욱 장하고말고.

산불로 황폐했던 곳에 해맞이 공원 들어서고
2만 가구 전력 사용 가능한 풍력발전단지 조성
주변 산림생태문화체험공원 일출명소 입소문

산자락엔 기원정사 약사여래불 불두 덩그러니
중생 아픔 달래는 부처님…완성땐 '세계 최대'


◆영덕창포풍력발전단지

은백색의 모래밭이 펼쳐진 바닷가거나, 바위들이 몸서리치는 곶의 곁이거나, 비린 것들이 주렁주렁 널린 작은 갯마을의 너른 작업장이거나, 어느 한 곳도 태양을 맞이하기에 좋지 않은 곳이 없다. 그러나 세밑의 정상은 지나치게 매혹적이다. 사람을 그리도 작게 만들면서 들어 올리고 상승시키고 가볍게 만든다. 이곳은 영덕의 바닷가 창포리의 산이다. 남서쪽의 삿갓봉에서 북서쪽의 달봉산으로 이어지는 구릉진 산등성이, 바다와 마주한 고지다.

1997년 2월, 큰 산불이 났었다. 영덕읍 우곡리에서 시작된 산불은 바람을 타고 하루 만에 이곳까지 옮겨붙었고 끔찍한 화마가 휩쓸고 간 창포리 일대 야산은 까맣게 폐허가 되었다. 황폐했던 해안가 절벽에는 이후 '해맞이 공원'이 들어섰다. 산책로를 이루는 1천500여 개의 나무계단은 산불피해 목으로 만든 것이라 한다. 황량한 산등성이에는 남북 방향으로 2㎞에 걸쳐 풍력발전기 24기가 나란히 세워졌다. 발전기 한 기의 높이는 80m, 건물 30층에 달한다. 풍력발전기를 세우려면 초속 5m 이상의 풍속이 필요하다고 한다. 이곳에는 평균 초속 7m의 바람이 분다. 2005년 3월 가동을 시작한 영덕풍력발전단지는 연간 9만6천680㎿h 전력을 생산해 낸다. 이는 2만 가구가 사용할 수 있는 전력으로 영덕군민 전체가 1년간 사용할 수 있는 양이다. 이곳에서 2004년 2월에 개봉한 영화 '태극기 휘날리며'를 촬영했다고 한다. 근 20년이 지났지만 6·25전쟁 전사자들의 유골을 발굴하던 중 진석(원빈)의 이름이 새겨진 만년필을 수습하는 장면과 마지막 전투 장면은 아직 생생하다. 그 두 장면이 이곳에서 촬영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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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크트릭아트전시관. 건물을 뚫고 나온 용과 '트랜스포머 드래곤 수호 장군'이 위풍당당 바다를 향해 있다.

◆산림생태문화체험공원

풍력발전기 주변은 넓디넓은 공원이다. 2008년부터 2014년까지 7년간에 걸쳐 104㏊ 규모로 조성한 산림생태문화체험공원이다. 구릉의 동그란 이마와 오목한 땅에, 뱃머리 같은 산자락에 신재생에너지전시관과 정크트릭아트전시관, 영덕 해맞이 예술관, 창포해맞이축구장, 해양환경체험 기관인 국립청소년해양센터, 숙박시설인 바다 숲 향기마을과 해맞이 캠핑장, 야외 어린이 놀이터와 조각공원, 크고 작은 정원과 전투기 전시장 등이 들어서 있다. 도로와 산책로가 이어지고 전망대가 곳곳에 자리한다. 이곳은 해안가의 해맞이 공원만큼이나 일출 명소로 이름나 있다.

전투기 전시장에는 공군 수송기와 전투기, 훈련기 등이 전시되어 있다. 이들은 6·25전쟁 당시부터 활약하다 퇴역한 것들로 조종석을 들여다보거나 만질 수 있다. 신재생에너지전시관은 거의 모든 부스가 간단한 게임 위주의 체험 활동을 통해 에너지 변환 과정을 학습하는 곳이라 아이들에게 인기다. 정크트릭아트전시관은 건물을 뚫고 나온 용과 '트랜스포머 드래곤 수호 장군'이 위풍당당 바다를 향해 손짓하는 인상적인 공간이다. 갑옷을 입고 큰 칼을 옆에 찬 이순신 장군이 떠오른다. 2024년 푸른 용의 해를 앞두고 있으니 '드래곤 수호 장군'을 바라보는 마음이 제법 든든하다.

◆월월이청청

영덕홍보관 근처 도롯가에 '월월이청청' 조형물이 있다. 월월이청청은 남해안의 강강술래와 같이 정월 보름날이나 한가위 달밤에 행해지는 부녀자들의 집단 군무다. 노래는 토연토연 김토연아, 생금생금 생가락지, 달람세, 제바제바, 대문열기, 산지띠기, 재밟기 등으로 구성되어 있고 선창자가 앞소리를 매기면 후창자가 '월월이청청' 하고 후렴을 받는 식으로 진행된다. 영덕을 중심으로 남으로는 포항, 북으로는 울진 후포읍까지 성행했으며 발생 시기는 정확히 알 수 없지만 수백 년 전일 것으로 짐작된다. 영덕사람들은 월월이청청을 놀아야 풍년이 들고 마을에 탈이 없다고 믿었다. 월월이청청은 1940년대까지 놀아오다가 일제의 탄압으로 중단되었고 1980년대 초부터 재현해 현재는 영덕 지역 부녀자들로 구성된 월월이청청보존회에서 전승하고 있다.

'달넘세'라는 신경림 시인의 시가 있다. '달넘세'의 사투리가 '달람세'로 이 시는 동해안에 전승돼 온 민속놀이를 취재한 뒤 창작된 것으로 알려져 있다. '넘어가세 넘어가세 논둑밭둑 넘어가세/ 드난살이 모진 설움 조롱박에 주워 담고/ 아픔 깊어지거들랑 어깨춤 더 흥겹게/ 넘어가세 넘어가세 얽히고설킨 인연/ 명주 끊듯 끊어내고 새 세월 새 세상엔 새 인연이 있으리니/ 넘어가세 넘어가세 언덕 다시 넘어가세/ 어르고 으르는 말 귓전으로 넘겨치고/ 으깨지고 깨어진 손 서로 끌고 잡고 가세/ 넘어가세 넘어가세 크고 큰 산 넘어가세/ 버릴 것은 버리고 챙길 것은 챙기고/ 디딜 것은 디디고 밟을 것은 밟으면서/ 넘어가세 넘어가세 세상 끝까지 넘어가세.' 12월에 소리쳐 읽기 좋은 시다.

동해를 병풍처럼 드리워 놓은 산자락에 약사여래불의 불두가 덩그러니 놓여 있다. 기원정사라는 이름의 절집에서 추진 중인 대작불사로 지난 10월에 불두 봉안식이 있었다고 한다. 약사여래불은 중생의 아픔을 달래주는 부처님이시다. 완공되면 세계 최대 규모일 것이라 하는데, 아픔 없는 인류를 꿈꾸는 개인의 명징한 몽상은 인도주의적인 염원으로 실현되는 듯하다. '손 서로 끌고 잡고' 달 넘으면 약사여래부처님이 슬쩍 등 떠밀어 주실지도 모른다. 서로 손잡고 더 흥겨운 어깨춤으로 훌쩍 달을 넘어보는 세밑이다, 월월이청청. 글·사진=류혜숙 여행칼럼니스트 archigoom@naver.com

■ 여행 Tip

55번 중앙고속도로 안동방향으로 가다 안동 분기점에서 상주영덕고속도로 영덕방향으로 간다. 영덕IC로 나가 7번국도 영덕 울진방향으로 직진, 덕곡 교차로에서 20번 지방도 하저리 방향으로 나간다. 교차로에서 1시 방향 신재생에너지전시관, 국립청소년해양센터 이정표를 따라가면 가장 빠르다. 3시 방향 하저리로 나가 20번 지방도를 타고 북향해도 좋다. 바다를 끼고 달리다 해맞이 공원 앞에서 왼쪽 산으로 오르는 길을 따라가면 풍력발전단지다. 신재생에너지전시관 입장료는 성인 1천500원, 군인 1천200원, 청소년과 어린이 800원이다. 매주 '수요일은 문화가 있는 날'로 무료다. 운영시간은 오전 9시부터 오후 6시까지며 설날, 추석, 매주 월요일은 휴관이다. 정크트릭아트전시관 입장료는 성인 5천원, 중고생 4천원, 초등학생 3천원이다. 운영시간은 오전 9시부터 오후 6시까지며 설날, 추석, 매주 월요일은 휴관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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