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논설위원 |
중국 전국시대 말기의 정치사상가이자 법가(法家)를 세운 한비자는 군주의 치국 도구로 법(法)·술(術)·세(勢) 세 가지를 들었다. '법으로 기강을 세우며 지위고하를 막론하고 형평하게 적용한다'. 한비자 법치의 본령이다. 덕에 의한 통치를 내세우는 유가(儒家)에 비하면 훨씬 원칙주의다. 술(術)은 신하를 부리는 통치술인데 군주의 식견과 통찰력까지 아우른다. 한비자는 무능한 권세가를 쫓아내고 지혜로운 인재를 중용해야 조정(朝廷)의 능력이 제고되며 민심을 얻을 수 있다고 설파했다. 세(勢)는 군주의 권위와 힘이다. 순자 문하에서 한비자와 동문수학한 초나라 출신 이사도 진왕 영정에게 법·술·세를 간언했다. 진나라는 결국 천하통일의 대업을 이룬다. 윤석열 정부의 법·술·세는 어떨까.
#1 법=한비자에 나오는 법불아귀(法不阿貴·법은 신분이 귀한 자에게 아부하지 않는다)는 '형평'을 반추한 말이다. 검찰 출신을 중용하는 윤 정부에선 법의 형평성이 지켜지는가. '그렇지 않다'는 쪽에 추(錘)가 기운다. 대통령실과 여당은 "문재인 정부 때 2년간 탈탈 털었는데도 혐의점을 찾지 못했다"고 주장하며 김건희 특검법을 거부한다. 그 흔한 압수수색 한 번 하지 않았는데 탈탈 털었다고? 조국 가족 수사 땐 석 달 동안 70곳 압수수색하고 조국 아들이 원서만 낸 대학원까지 훑지 않았나. 이재명 법인카드 유용 의혹 수사처럼 무시로 경기도청 들쑤시고 과일가게·세탁소까지 압수수색해야 '탈탈 털었다'는 표현에 부합한다.
도이치모터스 권오수 회장 등 주가 조작 혐의자들이 지난해 2월 1심 판결에서 유죄 선고를 받았는데도 검찰은 전주(錢主) 김 여사에 대해선 마냥 처분을 미루고 있다. 단 한 번의 소환도 없었음은 물론이다. 윤석열 대통령은 대선 후보 시절 "죄 지었으니까 특검을 거부한다"며 이재명 후보의 대장동 의혹을 겨냥했다. 이 말이 부메랑으로 돌아왔다.
경찰은 배우 이선균 마약 투약 의혹을 수사하며 망신주기, 수사내용 유출, 밤샘 조사, 공개 소환 등 '나쁜 관행의 총합'을 시전했다. 그러고도 윤희근 경찰청장과 김희중 인천경찰청장은 전혀 잘못이 없다는 투다. 뻔뻔한 궤변이다. 한데 이정섭 검사 처남의 마약 범죄 의혹 수사는 진행되고 있는지조차 모른다. '모든 국민은 법 앞에 평등하다'는 헌법 11조 1항이 무력화되는 순간이다. 시나브로 법치는 이렇게 무너진다.
#2 술=한비자 통치술의 요체는 상벌주의다. 하지만 윤석열 정부는 상벌주의를 거의 실천하지 않는다. 159명의 청춘이 스러진 이태원 참사 때도 고위직의 책임을 묻지 않았다. 대통령 측근엔 유독 관대했다. 공직자 발탁도 검사·지인·보수로 국한한다. 한비자의 지적대로 진영·지연·학연을 뛰어넘는 용인술이 절실하다. 인재풀을 넓혀야 유능한 정부 조각(組閣)이 가능하다. 지지층 외연확장은 덤이다. 엑스포 유치 참패도 무능의 발로 아니었나.
#3 세=가신그룹 등용도 일종의 우군 확대 방편이긴 하다. 하지만 진정한 대통령의 권위와 힘은 국민으로부터 나온다. 민심이 집권정부를 떠받치는 가장 강력한 세력이란 의미다. 한비자도 늘 민심의 중요성을 강조했다. 사정권력과 언론을 장악한들 민의와 괴리되면 대통령 권위는 추락한다. 30%대 지지율로는 국정 드라이브를 걸 수 없다. 선거는 세력 확장의 제도적 장치다. 민의의 스펙트럼을 헤아리는 반전의 동력이 필요하다.
논설위원

박규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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