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동대구로에서] 수학 양극화, 쉬운 수학이 답이 될까?

  • 이효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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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입력 2024-01-10 07:03  |  수정 2024-01-10 08:59  |  발행일 2024-01-10 제26면
대입 수능 성패, 수학이 좌우
한국, 수학 순위 최상위권에
'수포자' 비율도 역대 최고치
정부는 수학양극화 해결하고
대학이 학생 선발권 가져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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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효설 사회부 차장

올해 대입 수능에서도 '수학 머리'가 주효했다. 수학 1등급을 받은 최상위권 학생들을 분석해보니 대부분 이과 학생들이었다. 표준점수 최고점은 이과 학생이 11점 더 높았다. 수학을 잘하는 이과생들이 수능 고득점에 유리한 구조다.

경제협력개발기구(OECD)가 최근 공개한 '국제학업성취도평가(PISA) 2022' 결과를 보자. 한국의 수학 순위는 1~2위. 최상위권이다. 국제수학연맹은 지난해 한국의 수학 등급을 최고 등급으로 한 단계 승격했다. 1981년 연맹에 최하 등급으로 가입한 후 최단 기간에 최고 등급으로 올라섰다. 소위 '수학 선진국'이란 수식어가 어색하지 않다.

그러나 수학 선진국의 아이러니도 있다. 한국은 '수포자'(수학 포기자) 양산 규모에서도 최상위권을 다툰다. PISA에 따르면 한국의 수학 하위권 비율은 역대 최고치를 기록했다. 2009년 대비 무려 2배가 늘었다.

수학 성적의 양극화 정도를 나타내는 지표에서도 한국은 OECD 최고 수준을 보였다. 수학 교사들은 초등 4학년부터 수학이 어려워지기 시작한다고 입을 모은다. 수학 머리를 만드는 결정적 시기에 수포자에 '입문'한 경우, 단계별 학습이 중요한 수학 과목의 특성상 영원한 수포자로 남을 수 있다고 우려한다.

한국 교육은 수학 양극화 문제를 해결해야 한다. 가령, 초등 4~5학년 수포자들을 1차로 구조해야 한다. 급격한 난도 상승으로 자신감을 잃고 섣불리 포기하는 학생들을 줄여나가야 한다. 이들을 위한 맞춤형 교수법만 도입해도 쉽게 구조되는 초보 수포자들이 적잖으리라 본다. 방법을 몰라 공부에 접근이 어려운 어린 학습자들이 의외로 많다.

교육부가 2028학년도 대입 수능시험에서 '심화 수학'(미적분Ⅱ와 기하)을 제외해 논란이 되고 있다. 수학이 필수인 이공계 학생에게도 문과 수준의 수학만 테스트하겠다는 것이다. 한마디로 '문과 수능'이 됐다. 학생의 학습 부담과 학부모의 사교육 부담을 줄이겠다는 취지에는 고개가 끄덕여진다.

하지만 학력 저하와 이공계 첨단 인재 양성은 어떻게 접근할 것인가. 3D 프린팅, 자율 주행, 인공지능, 우주선 등 대부분의 이공계 분야에서 미적분이 쓰이지 않는 데가 없다. 올해 서울대, 경북대 등 주요 대학들이 첨단학과를 증설해 첨단과학기술인재 양성에 팔을 걷어붙였지만 의대 광풍을 잠재우진 못했다. 홍유석 서울대 공과대 학장은 "미적분을 배제한 수능은 나라를 먹여 살릴 공대를 무너뜨리는 것"이라면서 "정부가 미래 먹거리로 선정한 인공지능(AI)이나 양자(量子) 등 분야는 심화 수학이 기본이 되지 않으면 공부할 수 없는 학문"이라고 강하게 비판했다. 심화 수학을 어렵다고 뺄 것이 아니라 어떻게 하면 쉽게 가르칠 것인가를 고민해야 할 대목이다.

'수학 혐오'에 시달리는 학생들은 드디어 수학을 공부하지 않을 권리를 일부 획득한 것 같다. 문과생인 필자가 고등학교 시절 학습 시간의 대부분을 수학 문제 풀이에 투자한 것을 떠올리면 그건 낭비가 아니었나 싶다. 요약하건대, 수학이 필요한 대학, 학과만큼은 수학 잘하는 학생을 뽑을 수 있도록 해야 한다. 교육부는 대학에 학생 선발권을 돌려줘야 한다. 수학의 '필수'와 '선택'을 결정하는 것은 대학이 주도하도록 해야 한다.
이효설 사회부 차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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