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동 추 거문고 이야기]〈2〉거문고와 매화, 선현의 道 같은 매화 찾아…거문고 벗 삼고 구도의 길

  • 김봉규 문화전문 칼럼니스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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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입력 2024-01-26 07:34  |  수정 2024-01-26 07:35  |  발행일 2024-01-26 제13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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심사정의 '파교심매도'. 나귀를 탄 선비가 설산을 향해 다리를 건너고 있고, 그 뒤를 거문고를 멘 시동이 뒤따르고 있다. <국립중앙박물관 소장>
연재를 시작하면서 고람의 '매화초옥도' 이야기를 언급했는데, 거문고와 인연이 깊은 매화 이야기를 한 번 더하고 가려고 한다.

매화는 추위가 덜 가신 이른 봄날, 잔설 속에서도 어떤 초목보다 먼저 꽃을 피워 맑고 은은한 향기를 선사한다. 그 자태도 고고하고 아름답다. 춥고 험준한 설산의 매화, 고귀한 설중매는 선비들에게 단순한 꽃이 아니었다. 그들이 추구하는, 도달하고자 하는 이상향을 상징했다.

당나라 맹호연 고사 소재 '파교심매도'
다리 건너 눈 덮이고 험준한 산속으로
거문고와 함께 단출히 떠나는 탐매길
'탈속하고 고아한 선비' 대명사로 꼽혀


사육신 중 한 사람인 매죽헌(梅竹軒) 성삼문은 매화를 이렇게 찬미했다.

'매화는 맑고 지조가 있어 사랑스러우며, 향기로운 덕을 지니고 있어 공경할 만하다(余惟梅之爲物 有淸操焉可愛也 有馨德焉可敬也).'

조선 후기의 가객(歌客) 안민영은 '영매가(詠梅歌)'에서 매화를 '아치고절(雅致高節·우아한 풍치와 고상한 절개)'이라는 말로 표현했고, 매화를 특히 사랑한 퇴계 이황은 매화를 신선에 비유하며 '매선(梅仙)'으로 부르기도 했다.

김봉규 문화전문 칼럼니스트
이런 매화는 거문고의 짝이라고 해도 되지 않을까 싶다. 매화는 사군자(四君子·매화 난초 국화 대나무) 중 첫 번째 군자로, 선비들이 학문(유학)을 통해 도달하고자 하는 군자(유교에서 추구하는 이상적 덕목을 갖춘 인간)를 상징한다. 그리고 불교의 선사(禪師)들이 추구하는 깨달음(부처의 경지)에 비유되기도 한다. 그래서 이처럼 도를 추구하는 이들은 매화(도)를 찾아갈 때, 또는 매화를 만났을 때 함께해야 하는 반려 악기로 거문고를 생각했던 것 같다.

그래서인지 매화를 찾아가는 탐매를 주제로 한 그림인 탐매도에 거문고가 등장하는 작품이 적지 않다. 대표적인 탐매도로 심사정의 '파교심매도', 신잠의 '탐매도', 김명국의 '탐매도' 등이 꼽힌다.

◆심사정 '파교심매도'

조선 후기 선비 화가인 현재(玄齋) 심사정(1707~1769)의 '파교심매도'는 탐매도 중 걸작으로 꼽힌다. '파교를 건너 매화를 찾아가다'라는 의미의 이 작품은 심사정이 59세 되는 해인 1766년 여름에 그린 것이다. 이 그림의 주제인 '파교심매'는 중국 당나라 시인 맹호연(689~740)의 고사를 소재로 하고 있다.

대표적 산수전원파 시인 맹호연은 허베이성 출신으로 40세쯤에 장안(長安·지금의 시안)으로 가서 진사 시험을 쳤으나 낙방한 후 고향에 돌아와 은둔생활을 하였다. 도연명(陶淵明·365~427)을 존경한 그는 평생 유랑과 은둔생활을 하며 술과 금(琴)을 벗 삼아 자연의 한적한 정취를 사랑한 작품을 남겼다. 그는 이른 봄 매화를 찾아 당나귀를 타고 장안 동쪽의 '파교'라는 다리를 건너 눈 덮인 산으로 들어가 매화를 찾아다녔다고 한다.

맹호연의 이 고사는 탈속하고 고아한 선비의 대명사로 인식되면서 '파교심매' '설중탐매(雪中探梅)'의 모습으로 그림에 등장한다. 이 그림에는 어딘가에 매화가 피어있을, 눈 쌓인 적막한 산속을 향해 나귀를 타고 다리를 건너는 선비가 주인공으로 등장한다. 그리고 음식과 술, 문방구 등 필요한 것을 담은 보따리를 들고 뒤따르는 시동이 함께한다.

심사정의 이 파교심매도를 보면 눈 쌓인 겨울 산을 배경으로 선비가 당나귀를 타고 다리를 건너려고 하고 있다. 다리 건너 산은 사람이 범접하기 어려운 험준한 바위산들임을 알 수 있다. 나뭇가지에는 눈이 쌓여 있고, 산봉우리 곳곳에도 눈이 아직 남아있다. 이런 위험한 길을 선비는 왜 가려고 할까. 구도의 길이기 때문이라고 할 수 있다. 매화는 진리 또는 도를 상징하고, 선비는 보이지도 않는 그 매화를 찾아 위험도 마다하지 않고 길을 나서는 것이다.

나귀를 탄 선비는 모자를 쓰고 온몸을 망토로 휘감아 단단히 방한 채비를 한 모습이다. 그 뒤를 어깨에 문방구, 술과 음식 등을 싼 두 개의 보자기를 걸친 긴 막대기를 어깨에 멘 시동이 뒤따르고 있다. 그리고 막대기에는 거문고를 싼 보따리도 함께 매어져 있다.

탐매의 행로에 거추장스럽다고 할 수 있는 거문고를 굳이 준비해가는 데는 이유가 있었을 것이 아닌가. 매화는 단순한 봄꽃이 아니고, 거문고 또한 그 선율을 즐기기 위해 연주하는 데 그치는 악기가 아니었기 때문이다. 매화는 선비들이 추구하는 성인군자의 경지를 의미하고, 거문고는 그런 경지에 도달하기 위해 욕심을 다스리는 수행의 도반으로 삼은 악기였던 것이다.

◆이황의 매화와 거문고

성현(聖賢)으로 존경 받는 '공자' '맹자' '노자' 처럼 '이자(李子)'라고도 불릴 정도로 훌륭한 선비이자 대학자였던 퇴계 이황 역시 매화와 거문고를 사랑했다. 이황은 매화시를 많이 남겼는데 그중에 이런 시가 있다.

'옛 책을 펴서 읽어 성현을 마주하고(黃卷中間對聖賢)/ 밝고 빈 방안에 초연히 앉아(虛明一室坐超然)/ 매화 핀 창가에 봄소식 보게 되니(梅窓又見春消息)/ 거문고 줄 끊어졌다 탄식하지 않으리(莫向瑤琴嘆絶絃)'

임자년(1552년) 입춘에 쓴 이 시는 빈 방에 혼자 앉아 책을 읽으며 옛 성현의 가르침을 이어가는 선비의 생각을 묘사하고 있다. 창가에 핀 매화를 본다는 것은 자신이 성현의 도를 밝히고 있음을 이야기하고 있는 것이라 할 수 있다. 그러니 거문고 줄이 끊어졌다라고, 즉 성인의 도가 끊어졌다 탄식하지 않겠다는 것이다.

창설재(蒼雪齋) 권두경(1654~1725)이 이황의 도학을 기리기 위해 1715년 안동의 퇴계 유허지에 추월한수정(秋月寒水亭)을 건립한 후 지은 '이운재(理韻齋)' 찬문이다.

'보갑에 든 옥거문고(寶匣瑤琴)/ 줄이 끊어진 지 오래이네(絃絶多年)/ 퇴계 선생이 먼 세월을 이어(先生遠紹)/ 그쳐버린 거문고 소리 다시 전하였네(輟響再專)/ 경전을 대하는 매화창에(黃卷梅窓)/ 봄소식이 몇 번이나 돌아왔던가(幾回春信)/ 힘쓰도록 하라 후생들이여(勖哉後生)/ 부디 여운을 다스려 닦아보세(尙理餘韻)'

거문고 줄이 끊어졌다는 것은 성인(공자)의 도학이 이어지지 못한 것을 상징하고 있다. 권두경은 이황이 끊어진 거문고 소리를 다시 이어 매화를 해마다 볼 수 있게 했다고 비유하면서, 그 여운을 받아 다스리자는 뜻으로 '이운재'라는 이름을 지은 것이다.

김봉규 <문화전문 칼럼니스트> bg4290@naver.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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