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고] 의료사고 왜 못 막나

  • 임주현 부산고등(지방)법원 상임조정위원·변호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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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입력 2024-01-31 06:56  |  수정 2024-01-31 06:59  |  발행일 2024-01-31 제26면
"의료사고의 근본원인 찾아
심각성 인식 예방의지 갖고
재발방지 대책을 마련해야
또 사고 다루는 기구가 담당
국가도 인적·물적 투자해야"

임주현
임주현 부산고등(지방)법원 상임조정위원·변호사

지난 연말 아픈 왼발이 아닌 멀쩡한 오른발을 수술해 20대 직장인에게 영구장애를 입힌 의료사고가 나더니 새해 들어서는 무릎 연골 수술을 받은 대학생이 마취에서 깨어나지 못해 사망하고, 지방흡입 수술을 받은 20대 여성이 패혈증으로 숨지는 사건이 보도됐다. 또한 전립성 비대증의 50대 남성 환자가 한약을 복용한 후 설사·오심·구토 증상을 보이다가 숨지는 사건이 발생해 법원이 한약 복용과 사망 간의 관련성을 인정하는 판결을 내렸다.

이외에도 의료사고가 우리 사회에서 얼마나 발생하고 있는지 알 수가 없다. 우리나라 의료수준은 세계 최고이며 대부분의 의사는 유능하고 성실하며 도덕적이라 하는데 이러한 사고는 왜 반복해 일어나는가. 어떻게 하면 사고를 방지해 소중한 생명과 건강을 지킬 수 있을까. 10년 가까이 의료분쟁 조정기관에서 1천800여 건의 사건을 다루면서 고민한 문제다.

우선 현실에서 일어나는 모든 의료사고와 사고위험을 찾아 노출해야 한다. 어떤 사고가 어디서, 얼마나 발생하는지 알아야 한다. 그리고 의료사고 문제는 해당 의사와 환자만의 문제가 아니라 우리 모두의 문제이고 그 정도 또한 심각하다는 것을 인식해야 하며, 예방에 대한 의지를 가져야 한다. 그동안 의사의 책임을 추궁하는 데 두었던 시선을 사고의 근본원인(root cause)을 찾아 대책을 마련함으로써 재발을 방지하는 곳으로 옮겨야 한다. 사고의 근본원인은 의사 개인의 무능과 불성실이 아니고 인간능력의 한계, 경직된 의료계 문화, 정부와의 정책 갈등, 잘못된 의료정책 및 시스템 등 의사 개인의 책임과 무관한 경우가 많으며 그럴 경우 의사는 또 다른 피해자로 그에게 책임을 묻는다는 것은 온당치 않고 재발을 막을 수도 없기 때문이다.

사고의 근본원인을 찾고 예방대책을 연구개발해 교육 홍보함으로써 사고의 재발을 막을 수 있을 터인데, 그 일은 실제 의료사고·사건을 다루는 기구가 담당해야 성과가 있을 것이며 국가는 이를 위해 충분한 인적·물적 투자를 해야 할 것이다.

한편 의사는 '무엇보다 환자에게 해를 끼치지 말라(First, do no harm)'는 히포크라테스 선서처럼 치유를 위해 자신에게 몸을 맡긴 그리고 자신이 도움을 주려던 환자에게 오히려 피해를 주는 상황을 용납해서는 안 되며, 그로 하여금 사고를 당하지 않을까를 염려하게 해서도 안 된다. 의료과정에서 환자의 안전을 보장하고 환자에게 안전에 대한 신뢰를 줘야 한다는 것이다. 그리하여 여러 원인으로 땅에 떨어진 신뢰를 회복해야 한다.

미국 의학원(the Institute of Medicine)은 1999년 'To err is human'이라는 보고서를 내면서 당시 미국 내 의료과실로 사망하는 환자 수가 국내선 점보여객기가 매일 한 대씩 추락할 때의 사상자 수와 같다고 했다. 클린턴 정부는 이 주장에 귀 기울이고 노력해 큰 성과를 보였다. 우리나라 경우 2011년에 연 1만7천명가량의 의료사고 사망자가 발생한다는 주장이 있었으나 누구도 이에 귀 기울이지 않았다. 이 수는 1년 동안 매주 대형 여객선 한 척이 침몰할 때의 사망자 수와 같은 데도 말이다.

지금 우리가 경험하는 의료수준과 이상적인 의료수준, 아니 실천 가능한 의료수준 사이에 넓은 갭이 보인다. 우리 모두가 이 갭을 메우는 노력을 함으로써 안타까운 사고가 또다시 일어나지 않도록 해야 할 것이다.
임주현 부산고등(지방)법원 상임조정위원·변호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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