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규완 칼럼] 권력 독과점 카르텔 깨야

  • 박규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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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입력 2024-01-25 07:01  |  수정 2024-01-25 07:02  |  발행일 2024-01-25 제22면
유럽 융창의 키워드 '분권'
우리나라 압도적 集權국가
제왕적 대통령, 거부권 반복
정치권력 거대 정당이 지배
분권해야 견제와 균형 가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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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규완 논설위원

재러드 다이아몬드 UCLA 교수는 문화인류학자, 진화생물학자이자 스테디셀러 '총·균·쇠' '문명의 붕괴'를 저술한 논픽션 작가다. 한국과도 친밀하다. 성균관대 석좌교수로 재임했으며 한글을 세계에서 가장 과학적인 문자라고 극찬했다. 유럽의 비교우위를 '분권'이란 키워드로 풀어낸 통찰력은 다이아몬드만의 지적 근력이다. 오늘날 50여 개국의 유럽은 과거 수백 개의 정치 단위가 할거했다. 구조적 경쟁체제였다. 그 결과 정치제도·과학·산업·문화 등 각 분야에서 다른 대륙보다 앞선 발전을 일궈냈다. 르네상스와 산업혁명이 유럽에서 태동한 게 우연이었을까. 다이아몬드는 "분열과 분권이 유럽의 융창을 추동했다"고 분석했다. 통섭의 대가다운 혜안이다.

우리나라는 압도적 집권(集權)국가다. 행정권 등 국정운영의 포괄적 권력은 대통령에 집중돼 있고 정치권력은 거대 정당, 자본권력은 재벌기업들이 과점하는 양상이다. 카르텔이 따로 없다. 분권은 이미 글로벌 트렌드다. 빅테크 애플은 분권기업의 벤치마크다. 애플은 CEO 팀 쿡이 독단으로 정책 결정을 하지 않는다. 디자인 총괄, 소프트웨어 개발, 마케팅 등 부문별로 의사결정권자가 나뉘어 있는 사실상 집단지도체제다. 블록체인의 키워드도 정보공유와 분권이며 NFT(대체불가토큰) 역시 소유권의 분점 아닌가.

대한민국 헌법 78조와 104조의 공무원 임면권은 대통령 권한의 백미다. 대법원장 및 대법관, 헌재소장 및 헌재 재판관, 국무총리와 장·차관, 검찰총장, 국가정보원장, 방송통신위원장, 300여 개 공공기관장에 대한 임명권을 갖는다. 사정권력과 여론의 '원격 조종'이 가능하다. 사면권, 법률안 거부권, 행정입법권도 법에 명시된 대통령 권한이다. 득표율은 중요하지 않다. 0.73%포인트 차(差)면 어떠랴. 윤석열 대통령은 특히 거부권의 효용성을 쏠쏠하게 누리는 편이다. 취임 후 4번, 법안으로는 7번째 거부권을 행사했다. 역대급이다. 제왕적 권력에 대한 제동장치가 필요하다.

자본권력은 더 많은 중소기업과 벤처기업, 스타트업이 나눠 가져야 한다. 거대 양당이 독과점하는 의회권력도 분화해야 운영의 묘가 살아난다. 캐스팅 보터 역할을 할 제3당이 등장하면 길항정국의 물꼬가 트일 것이다. 정당 민주화도 시급하다. 우선 중앙당의 힘을 이완해야 한다. 당 대표가 공천권과 당직 인사권을 전횡하는 관행은 독재시대의 유물이다. 하향식 공천은 보스정치, 계파정치의 흑역사다. 시스템 공천을 제도화하고 민의를 제때 수렴하는 개방·분권의 디지털 정당으로 거듭나야 한다. 4·10 총선이 의회권력 분점과 정당 민주화의 분수령이 되길 기대한다.

공화국(republic)의 어원은 '공적인 것(res publica)'이란 라틴어다. 공화(共和)의 사전적 의미는 '여러 사람이 공동으로 일함' '두 사람 이상이 공동으로 정무를 시행함'이다. 의역하면 공적 권력 나누기다. '주권이 국민에게 있다'는 민주(民主)와 맥락이 같다. 민주공화정을 실천하는 길이 분권이라는 얘기다.

유럽의 분열과 분권이 유럽 번영의 엔진이었다면 대한민국의 권력 분점이 정치·경제 발전을 추동한다는 공식도 유효하다. 대통령의 무소불위 권력을 비롯해 입법권력, 자본권력의 민주적 분화가 절실하다. 윤 대통령과 한동훈 국민의힘 비대위원장의 충돌도 권력 독과점 행태가 빚은 신파 아닌가. 민주주의의 요체는 견제와 균형이다. 권력 카르텔을 깨야 견제와 균형이 가능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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