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은경의 영화의 심장소리] '말없는 소녀' (콤 바이레드 감독 ·2022·아일랜드)…조용한 환대, 침묵의 의미

  • 김은경 영화 칼럼니스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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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입력 2024-02-02 08:06  |  수정 2024-02-02 09:05  |  발행일 2024-02-02 제14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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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은경 (영화 칼럼니스트)
영화가 너무 좋아 원작을 샀다. 오랜만의 일이다. '말 없는 소녀(The Quiet Girl)'의 원작은 아일랜드 작가 클레어 키건의 '맡겨진 소녀(Foster)'다. 데이비 번스 문학상을 받았고 '타임스'에서 뽑은 21세기 최고의 소설 50권에 선정되었다. 영화도, 소설도 정갈하고 아름답다. 영화는 영화대로, 소설은 소설대로 각각의 향기를 풍긴다. 맑고 은은한 향기다. 둘 다 보는 이를 울린다. 아주 오랜만에 영화를 보고 눈물이 났다.

1981년의 아일랜드, 여덟 살 소녀 코오트는 여름방학 동안 처음 보는 친척 집에 맡겨진다. 가난한 부모의 돌봄을 제대로 받지 못한 내성적인 아이다. 코오트는 난생처음으로 친척 부부에게서 따뜻한 대접을 받는다. 조용하지만 진심 어린 환대였다. 방학이 끝날 무렵, 훌쩍 자란 아이는 삶의 소중한 것들을 배운다. 더듬거리며 읽던 글자도 잘 읽을 수 있게 되고, 무엇보다 침묵의 의미를, 사랑을 알게 된다. 부모에게 받지 못한 사랑을 받은 아이의 내면은 무언가 달라져 있다.

아이도, 영화도 조용하다. 친척 부부도 조용하다. 그들은 차분하면서도 바지런하다. 아줌마는 음식을 만들고, 바느질을 하고, 물을 긷는다. 아저씨는 소를 돌보고, 소 젖을 짜고, 농장 일을 한다. 수풀 속에, 침대 밑에 숨어 있기 일쑤던 '말 없는 아이'는 이들의 따뜻한 돌봄 속에서 '할 말은 하는 아이'로 변했다. 더는 아빠의 표현대로 '겉도는 아이'가 아니다.

가장 기억에 남는 건 코오트가 침묵의 의미를 배울 때다. 친척 부부는 사고로 아들을 잃은 아픔이 있다. 이 사실을 함부로 떠들어대던 이웃 아줌마로 인해 다시 한번 큰 상처를 입는다. 아저씨는 말한다. "많은 사람이 침묵할 기회를 놓쳐서 많은 걸 잃었단다"라고. 사려 깊은 침묵이 얼마나 소중한 배려이고 사랑인지를 배운다.

영화는 아일랜드 시골의 여름 풍경이 아름답게 담겼다. 영화 초반 코오트의 집안 풍경은 어둡다. 친척 집에 오고부터 자연과 빛이 환하게 담긴다. 1.37:1의 화면비는 인물의 표정, 특히 코오트의 표정을 더욱 미세하게 담아낸다. 베를린영화제, 유럽영화제 등 각종 영화제에서 수상했으며, 아카데미 국제영화상 후보였다. 전세계영화제 최다 관객상 수상이라는 기록도 있다. 아일랜드어(게일어) 대사들이 이채롭다. 톰 바이레드 감독과 코오트 역 캐서린 클린치 모두 이 영화가 데뷔작이라는 사실이 놀랍다.

영화도, 소설도 참 많은 사랑을 받았다. 이렇게 맑고 고요한 영화가 이토록 많은 사랑을 받는다는 사실이 신기하다. 세상사에 지친 현대인에게 '깊은 산속 옹달샘' 같은 맑은 물 한 모금에 대한 갈증은 늘 있는 모양이다. 삭막한 세상이지만 아직 희망이 있는 것 같다.

영화는 대부분 소설 그대로다. 시작 부분이 좀 다를 뿐이다. 영화는 영화대로, 소설은 소설대로 각각의 아름다움이 있다. 이렇게 맑고 아름다운 영화들이 더 많이 만들어지고, 더 많은 사랑을 받았으면 좋겠다. 영화를 보고 나면 마음이 정화되는 느낌을 받을 것이다. 특히 영화의 마지막은 슬픔과 기쁨이 동시에 차오르는 진한 감동이 있다. 어느새 원작소설을 주문하는 자신을 발견하게 될지도 모른다. 영화 칼럼니스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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