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040칼럼] 왕의 남자

  • 곽현지 곽병원 홍보계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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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입력 2024-02-27 06:50  |  수정 2024-02-27 07:00  |  발행일 2024-02-27 제22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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곽현지 곽병원 홍보계장

좋은 약은 입에 쓰나 병에 이롭고 충성된 말은 귀에 거슬리지만 행하는데 이롭다고 공자가어(孔子家語)는 기록하고 있다. 중국 역사에서 탕왕(은나라 시조)과 무왕(주나라 시조)은 곧은 말을 하는 사람들로 나라가 번창했고 걸왕(하나라 마지막 왕)과 주왕(은나라 마지막 왕)은 순종하는 사람들로 나라가 망했다고 한다. 직언(直言)하는 신하와 이를 열린 마음으로 들을 수 있는 왕의 지혜는 국운의 흥망성쇠를 가름할 만큼 그 영향력이 크다.

그러나 역사를 반추해 볼 때 "아니 되옵니다"라는 직언은 사약(死藥)으로, "지당한 말씀입니다"라는 간언은 사전(賜田)으로 돌아오는 사례가 있음을 확인한다.

수군을 폐지하라는 선조에게 '신에게는 아직 열두 척의 배가 있습니다'라며 나라를 지켜냈던 이순신 장군은 '조정을 기망하여 임금을 무시한 죄, 방자하고 거리낌이 없는 죄'로 하옥됐고, 죄를 인정하지 않는다는 이유로 고문을 당했다. 임경업은 북방 지역 군사력 강화를 위해 백마산성, 용골산성, 능한산성 등을 수축했고 병자호란 때 뛰어난 지략으로 청의 침략을 미리 인지했던 조선의 명장이다. 그러나 조정 대신들은 외적보다 정적이 강해지는 것을 더 두려워하여 임경업이 심기원의 모반사건에 연루되었다고 주장하며 임경업을 고문했고 임경업은 53세에 목숨을 잃는다.

김종서는 세종 때 북변에서 6진을 개척하여 국경선을 두만강까지 확장하였고 요동 지방을 외세로부터 지켜냈으며 세종실록 편찬의 책임을 맡는 등 문무(文武) 영역에서 나라를 위해 열정적으로 일했다. 김종서 또한 계유정난 때 역모를 꾸몄다는 음모를 받으며 수양대군에 암살당한다. 소현세자는 청에서 서양의 새로운 문물을 익히고 들어와 조선에 소개하였는데 당시 정권을 잡고 있던 서인 세력의 이간질과 자신을 폐하고 세자가 즉위할까 전전긍긍했던 인조의 의심, 후궁 조씨의 베갯머리 송사로 33세에 독살당했다. 청이 조선과의 외교 관계를 개선하고자 소현세자를 조선에 돌려보낸 국제 정세에는 관심이 없고 내부 권력 싸움에만 열중했던 자들이 소현세자를 청에 귀의한 배신자로 몰았다.

왕조시대가 아닌 21세기 민주주의 사회에서도 이러한 왕의 남자 프레임을 곳곳에서 보고 겪는다.

왕의 남자는 한 사람에게만 충성하면 나머지 사람은 자기 발 아래 두고 호가호위하며 권력을 누릴 수 있기에 본인이 최고 권력자가 되지 않으면서도 권력을 휘두를 수 있는 방법을 본능적으로 안다. 이들은 항상 왕의 심기를 살피는 한편으로 정적을 끊임없이 견제하고 기회를 잡아 도태시키는 기술이 뛰어나다. 언론의 조명이나 세간의 관심을 받을 일이 드물어 음지에서 이권 카르텔을 형성하여 조직 깊숙이 뿌리 내리기가 편리하다. 지난 1일 개봉한 영화 '건국전쟁'에 의하면 이승만 대통령이 80세 무렵 그의 측근들은 이승만의 눈과 귀를 멀게 하고 자신들의 이해관계를 관철시켰다고도 한다.

머리 좋은 자는 노력하는 자를 이길 수 없고 노력하는 자는 즐기는 자를 이길 수 없다고 한다. 그러나 이 또한 운(運) 앞에서는 소용이 없으며 이 모든 것이 따라줘도 복(福) 있는 사람에겐 당할 수 없다. 복 중에서도 최고의 복은 '인복(人福)'이란다. 리더들이 본인의 심기에 거슬리더라도 직언하는 사람(人)을 가까이 두어 조직 발전에 기여하기를 기도한다. 표리부동한 예스맨과 우직한 충신을 구별하는 지혜로 리더와 구성원들의 건강한 비전이 실현되는 조직, 더 나아가 사회가 되기를 기대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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