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유영철 칼럼] 묵묵히 생업에 종사하는 운동권 출신을 생각한다면…

  • 유영철 언론학 박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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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입력 2024-02-28 06:58  |  수정 2024-02-28 07:02  |  발행일 2024-02-28 제27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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언론학 박사

돌아가신 우리 어머니들은 아무리 나라가 잘못돼 가도 제 자식이 나라를 위해 나서는 걸 극구 말렸다. 일제시대, 해방을 겪으면서 불의에 항거하고 정의를 위해 앞장섰다가는 자기 몸 망치고 집안마저 말아먹는 꼴을 많이 봐왔기 때문이다. 일제 때 독립운동하며 쫓겨 다니다 해방 후 사상범으로 몰리는 것도 봐왔었다. 반면 그런 데에 나서지 않고 귀 막고 공부만 한 자식들은 (다 그런 건 아니지만) 고시도 되고 부귀를 누리며 떵떵거리는 걸 봐왔기 때문이다. 일제 때 일제에 아부해 출세하고 해방 후 미군정과 결탁하고 독재정권의 주구가 되어 승승장구하는 것도 봐왔었다. 우리 어머니들은 배운 게 없지만 그렇다는 걸 체득했기에 남들은 어떻든 제 자식은 부모 걱정 안 시키고 공부만 해서 배부른 삶을 살기를 신신당부했었다.

그래서 그런 건 아니지만 나는 운동권은 아니었다. 1970년대 초 대학을 다닌 나는 캠퍼스 내에서 스크럼을 짜고 유신반대를 외치는 시위대에 합류하는 정도였다. 유신말기 졸업 후 신문기자를 하게 됐고, 초년기자 때 사회부 경찰출입을 하면서 시위현장에 가곤 했다. 일부 시위학생들은 "보도도 하지 못하면서 왜 왔어요?"라며 비아냥거리기도 했지만, "언젠가 보도할 날 안 있겠나!" 하며 취재수첩에 기록하곤 했다. 간혹 학생들은 기사화도 하지 못하면서 따라다니는 기자를 측은지심으로 보기도 했다. 독재정권과 싸우다 제적되고 구속돼 '장래를 망친' 그들이 운동권이었다. 나는 대학·고교 선후배로 운동권과 인연이 닿기도 했다. 내 주위 운동권 후배들은 (운동권이 다 그렇지는 않겠지만) 한결 착하고 바르고 순박했다.

대학 서클후배 하나는 이틀에 한 번 격일제로 용역회사 경비직에 근무한다. 이번 달은 쉬는 날이 홀수인지 짝수인지 헷갈려서 작년부터는 달력에다 그달 그 후배 쉬는 날을 홀짝으로 표시하곤 한다. 82학번인 그 후배는 84년 총장실 점거농성으로 제적되고 징역 2년을 살고 나왔고 10년 뒤쯤 시대가 바뀌어 복교할 수도 있었지만 생업 때문에 중퇴로 남게 됐다. 제적되고 몇 년간 징역을 산 그들과, 시국에 눈감고 고시공부에 매달려 수년 만에 합격한 이들과는 엄청난 차이가 날 것이다(물론 의식있고 올바른 합격생도 많았을 것이다). 그 후배가 그때 만약 공부만 팠다면 패스 못 할 분야가 어디 있겠나 싶다. 그랬다면 장(長)급의 뭐가 됐을 것이다. 그래도 그들 후배들은 조금도 그런 이들을 부러워하지 않는다. 큰 수입 없이 거의가 가난하나 꿋꿋하게 정겹게 살면서 민주화 이전으로 후퇴하는 것 같은 나라를 걱정한다.

"운동권 청산!"이라고. "시대적 요청!"이라고. 격일제 경비직의 운동권 그 후배는 어떻게 운동권을 청산해야 하나? 국민의힘이 내세운 야당 정치 운동권을 겨냥한 프레임이겠지만 그런 말 할 자격이 있는지 모르겠다. 민주화에 기여한 공로를 인정한다면 그들에게 미안한 감을 먼저 가져야 할 게 아닌가. 운동권 중 일부는 정치권에 들어가서 의원도 하고 장관도 하고 했으나 그 자체만으로 욕먹을 일은 아니지 않는가. 나는 민주화운동을 한 그들 한 사람 한 사람이 진정성 차원에서 그런 모면적인 선거전략을 들고나온 속 보이는 사람 수백 명보다 낫다고 본다. 나라의 민주화를 위해 몸을 던졌다가 묵묵히 생업에 종사하는 그들을 생각한다면 운동권 청산이라는 정치적인 레토릭은 더 이상 구사하지 말아야 한다.
유영철 언론학 박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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