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만진의 문학 향기] 쇼팽 국제공항

  • 정만진 소설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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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입력 2024-03-01 08:44  |  수정 2024-03-01 08:45  |  발행일 2024-03-01 제17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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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만진 소설가

1919년 3월1일 우리나라는 거족적 독립운동을 일으켰다. 비인간적 식민 지배를 받고 있던 지구상 수많은 민족들 중 유일하게 자긍심 가득한 정기를 하늘 높이 휘날린 세계사적 쾌거였다.

해는 달라도 날짜는 같은 1810년 3월1일 "20세기 최고의 연주 해석으로 인정받는 피아니스트"가 태어났다. 루빈스타인은 1849년 10월17일 불과 39세에 타계한 쇼팽을 "피아노의 절대신"으로 평가했다.

루빈스타인은 자신과 같은 폴란드 사람이라는 이유에서 쇼팽에게 그러한 찬사를 바쳤을까? 팔이 안으로 굽은 마음에서 나온 왜곡에 찬 발언이었을까? 쇼팽 전기를 읽어보면 그런 생각은 그저 기우일 뿐이다.

쇼팽은 20세에 조국을 떠났다. 그는 그 이후 한번도 고향에 돌아오지 못한 채 19년 동안 외국에서 음악 활동을 하다가 '객사'했다. 무덤 위에는 그가 19년 내내 은잔에 담아 고이 간직해온 흙이 뿌려졌다.

19년 전 조국을 떠날 때 벗들은 "모든 폴란드인들이 너의 대성을 기원하고 있다"면서 은잔에 흙을 담아 주었다. 그 무렵 쇼팽은 외국 유학 중이었는데 급하게 귀국을 했었다. 당시 폴란드는 37년째 러시아의 식민지로 신음하고 있었다. 폴란드인들은 줄기차게 독립 투쟁을 해왔고, 이번에도 궐기를 했지만 러시아 군으로부터 무참한 학살을 당했다.

쇼팽은 분노와 가족 걱정에 부랴부랴 귀국했었다. 집에 당도해보니, 러시아 군인들이 자신의 피아노를 부수어 땔감으로 쓰고 있었다. 모두들 '천재'의 안위를 걱정해 하루빨리 파리로 돌아가라고 촉구했다. 은잔에 조국의 흙을 담아주면서….

쇼팽은 기대에 부응해 조국을 빛낸 음악가로 대성했다. 폴란드인들은 감동했다. "천재 음악가는 오스트리아나 독일에서만 태어나는 줄 알았는데 폴란드에서 출생하는구나!" 이윽고 독립을 되찾자 폴란드 관문 바르샤바 공항에는 '바르샤바 쇼팽 국제공항' 현판이 자랑스럽게 걸렸다.

우리나라는 '인천 공항'식 명칭뿐이다. '쇼팽 공항'에 견주면 정말 영혼 없는 이름이다. 바르샤바 공항 방문자는 쇼팽을 떠올리지만 인천 공항에서는 아무 생각도 나지 않는다.

처칠 회고록에 노벨 문학상이 주어지고, 전기 문학이 드물지 않게 예술적 찬사를 받는 것은 인류 역사 전체의 발전에 기여하는 개인의 삶이 드물지 않기 때문이다. 문인은 그런 삶을 작품에 담아야 한다. 그래야 독자에게 참된 향기를 선사할 수 있다. 정만진 소설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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