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단상지대] 나무와 음악인문학

  • 임진형 음악인문학자·대구챔버페스트 대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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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입력 2024-03-04 07:11  |  수정 2024-03-04 07:12  |  발행일 2024-03-04 제21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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임진형 (음악인문학자·대구챔버페스트 대표)

아도르노의 말처럼 예술이 그 시대의 산물이며 개인과 사회의 역사를 기록하는 것이라면, 사가 서거정이 노래한 대구의 십경(영)은 조선 중기의 절경이다. 그중 '북벽향림-도동측백나무숲'은 여섯 번째에 해당한다. 대구시 동구 도동 180. 심하게 깎이고 경사진 바위틈에 밀집해 있는 측백나무군은 애처롭기도 하지만 하늘에 가닿으려는 의지는 가히 놀랍다. 나무는 인간의 기원이다. 아담과 이브는 에덴동산에 있는 두 나무(생명나무, 선악의 나무)를 통해 생명과 죽음을 경험하고 선악의 선택에 따른 책임을 배운다. 예수는 나무로 만들어진 말구유에서 태어나 스스로를 포도나무라고 부르며, 33년의 짧은 생애를 살다 십자가 나무 형틀에서 죽고 또 부활한다. 단군신화는 또 어떤가? 환인의 아들 환웅이 신단수라는 나무에서 내려와 나라를 세웠다. 수많은 이들은 지금도 오래된 나무 아래에서 탄생과 마을의 안녕을 기원하며, 마침내 수목장으로 생을 마감한다.

한편, 바로크 시대 작곡가 헨델은 부드럽고 아름다운 플라타너스 나무 아래에서 휴식하길 좋아했다(오페라 '세르세'). 청력 문제로 극심한 고통에 시달렸던 고전파 음악가 베토벤은 숲속에서 산책을 하며 나무들이 건네는 그윽한 말 '너는 거룩하구나, 거룩하구나'를 들으며 큰 위안을 얻는다. 자연에서 영감을 얻은 그의 음악적 상상력은 비로소 '전원교향곡'으로 탄생한다. 오랜 방랑 생활과 병마에 시달렸던 낭만주의 작곡가 슈베르트는 보리수나무를 그의 고향이자 언제든 달려갈 수 있는 친구로 여겼고(연가곡 '겨울나그네'), 슈베르트보다 더 오래전 석가모니는 보리수나무 아래에서 수행하며 깨달음을 얻는다. 음악의 '음'도 기실은 나무에서 출발한다. 바이올린을 만들기 위해 고산지대에 있는 가문비나무는 먼저 베어지고 죽어야 하는 운명을 가지고 태어난다. 베어진 나무는 속을 다 비우고 나서야 공명을 만들며 깊고 아름다운 울림으로 부활한다.

나무는 살아있는 생명, 쉼터이자 아름다움이다. 인간의 출발점이자 귀향지인 나무는 세상의 근원이다. 나무, 즉 자연은 도시 문명에 익숙해진 문화인들의 생활을 위해 일방적으로 희생된다. 그로 인해 그린의 상실과 고독한 도시인이라는 후유증이 생겨난다. 그 속에서 빠르게 증가하는 환경 위기는 또 어떤가? 참나무 한 그루가 베어지면 한 계절 동안 100t이 넘는 물의 양을 잃게 된다고 한다. 그렇다면 우리는 자연 생태의 보전과 유지에 저간 얼마나 많은 관심을 가졌는지 생각해 볼 일이다. 꽃과 나무가 있는 정원과 푸른 숲은 우리에게 맑은 공기를 무상으로 선사하고 그늘이 되어줄 것이며, 미기후 개선과 미세 먼지 및 도시 열섬의 개선에 크게 기여할 것이다.

이제는 문명과 문화가 자연을 위해 나설 차례다. 도시의 녹색 인프라 구축에 힘을 보태고자 자연의 숲과 인문학의 숲이 만난다. 21세기 학제적이고 융합적인 형태로 전개되는 학문의 흐름에 맞추어 오는 22일 <사>대구그린트러스트와 대구챔버페스트는 자연과 음악을 주제로 인문 강의와 음악 공연을 함께 진행하는 '그린-뮤직 콘서트 사이프러스(측백나무)'를 개최한다. 서거정의 '북벽향림' 시에다 현대 작곡가가 음악을 만들고, 대구 도동측백나무와 빈센트 반 고흐의 그림 사이프러스의 역사와 가치를 이야기한다. 이는 과거와 현재를 연결하고, 여기(here)와 거기(there)를 연결하는 새로운 형태의 '음악인문공연'이다. 오늘 아침은 수잔 잭스의 '에버그린'을 들으며 그린 티를 마셔야겠다.

임진형 (음악인문학자·대구챔버페스트 대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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