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시각각(時時刻刻)] "지은, 그거 알아요"

  • 전창록 대구대 초빙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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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입력 2024-03-05 06:54  |  수정 2024-03-05 06:55  |  발행일 2024-03-05 제23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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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창록 (대구대 초빙교수)

이제 곧 봄이다. 봄은 청춘의 계절이다. 지난 2월 말에 아들의 대학 졸업식을 갔었다. 그날은 맑고 따뜻했다. 교정에서 본 청년들은 모자를 던지기도 하고 삼삼오오 모여 사진을 찍으며 즐거워 보였다. 요즘은 대부분 재학 중 군대를 갔다 오니 그들 대부분은 지난 16년간의 익숙한 학생이라는 역할을 떠나 이제 사회에서 전혀 새로운 역할을 맡을 것이다. 그날 나의 졸업식과 그 후 처음 사회에 나왔을 때가 겹쳐 생각났다. 그때 내가 가졌던 앞날에 대한 조심스러움, 막막함, 약간의 두려움이 기억난다. 물론 과거 우리 때보다는 이제 세상으로 나아가 거친 항해를 시작하는 청춘들에게 참고할 동영상, 블로그 그리고 멘토들이 많지만, 그래도 나의 경험을 말해주고 싶다.

첫째는 새로운 역할에서 요구하는 배역을 '연기'하라고 말해주고 싶다. 우리 사회는 연기라는 말에 거부감을 가진다. 그러나 연기야말로 가장 빨리 익숙해지고 배우는 길이다. 연기에는 두 가지 종류가 있다고 한다. A라는 인물을 연기할 때 '어차피 나라는 배우가 A를 연기하는 것이니 A를 나라는 사람에 맞게 해석해서 연기한다'는 서사적 연기론이 있고, '나를 지우고 A와 완벽히 동화해야 한다'는 메소드 연기론이 있다. 배우 김명민은 메소드 연기의 달인으로 유명하다. 이순신의 전 생애를 다루는 불멸의 이순신에서 목소리 톤을 20~50대 연령대별로 4단계로 나누어 준비했고, 극 중 이순신이 총상을 입은 뒤에는 부상 당한 왼쪽 어깨를 상대적으로 내리고 다녔고, 또한 원작(칼의 노래) 책을 페이지가 떨어질 때까지 읽으며 당시 이순신이 느꼈을 고뇌와 책임감을 이해하려 애썼다고 한다. 시작하는 청춘으로 역할에 몰입한 메소드 연기를 펼치라고 얘기해 주고 싶다.

둘째는 주어진 역할이 무엇이든 '정성'을 다하라는 것이다. 얼마 전 누군가는 인생은 '독고 다이'라고 내가 주인공인 나만의 연극 무대를 만들라고 얘기했지만, 우리 대부분은 이 새롭게 시작하는 연극 무대에서 주인공이 아니고 교사 C, 경찰 F로 우리의 역할은 미미할 것이다. 그러나 그 미미한 역할을 멋지게 해내고 그 역할로 인해 연극 전체가 빛날 때, 더 큰 다음 역할로 승급할 것이다. "작은 일도 무시하지 않고 최선을 다해야 한다. 작은 일에도 최선을 다하면 정성스럽게 된다. 정성스럽게 되면 겉에 배어 나오고 겉에 배어 나오면 겉으로 드러나고 겉으로 드러나면 이내 밝아지고 밝아지면 남을 감동시키고 남을 감동시키면 이내 변하게 되고 변하면 생육된다. 그러니 오직 세상에서 지극히 정성을 다하는 사람만이 나와 세상을 변하게 할 수 있는 것이다." 중용 23장의 이야기이다. 작은 일에 최선을 다하는 사람에게 큰일도 할 기회가 생긴다.

셋째는 나와 같이 일하는 사람들에게 '그때그때' 고마움을 표현하라는 것이다. 개인적으로 나는 그 일을 잘 못 했다. 최근 탕웨이가 아이유에게 보낸 손편지가 잔잔한 화제가 되었다. 탕웨이는 아이유가 최근 발표한 미니앨범 'The Winning'에 수록된 곡 'Shh…'의 뮤직비디오에 아이유의 어머니 역할로 출연했다. "초현실적이고 아름다운 촬영을 이어가던 순간 내게로 어떤 장면이 홀연히 떠올랐다. 한 번도 상상해본 적 없는, 젊은 시절의 엄마가 바로 내 옆에 있다는 느낌." 이런 아름다운 기억을 가지게 해줘서 고맙다고, 맞춤법도 틀리고 지운 흔적도 군데군데 있는 그런 손편지를 보낸 것이다. 그 편지에 감동한 아이유가 탕웨이의 양해를 구하고 그 편지를 공개했다. 그 편지의 시작이 "지은, 그거 알아요"였다. 우리 모두는 같이 일하는 사람들의 인정과 감사에 목마르다. 그게 누구든.

전창록 (대구대 초빙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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