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길형식의 길] 도원동의 어제, 오늘 그리고 내일

  • 길형식 거리활동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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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입력 2024-03-06 07:02  |  수정 2024-03-06 07:03  |  발행일 2024-03-06 제26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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길형식 거리활동가

남북조시대의 중국 시인 도연명의 작품인 도화원기(桃花源記)에서 유래된 단어 무릉도원(武陵桃源). 복숭아꽃이 만발한 낙원, 아름답고 평화로운 별천지를 의미한다. 대구에는 이 무릉도원에서 유래된 두 개의 도원동이 있다. 바로 중구의 도원동과 달서구의 도원동이다.

달서구 도원동의 1994년 택지지구개발 당시, 도원지구가 아닌 옆 동네 대곡동의 이름을 딴 대곡지구가 되어버린 것은 중구 도원동 홍등가의 나쁜 이미지 때문이라는 설이 있을 정도로 '자갈마당'은 시민들에게 부정적인 이미지로 뿌리 깊게 박혀 있다.

중구 도원동 자갈마당은 일제강점기의 잔재이다. 홍성철 작가의 저서 '유곽의 역사'에 의하면 1908년 일제의 거류민들에 의해 야에가키초가 만들어진 것이 그 시초라고 한다. 자갈마당의 유래는 여러 설들이 있지만 여성들이 도망을 치는 것을 막기 위해 자갈을 깔아놔서 자갈마당이 되었다는 설이 가장 유력하다.

1996년에는 대구시의 관광산업 육성 방안으로 도원동 일대를 합법적 성인 위락지구로 조성하는 계획을 발표하기도 했다. 물론 각계각층의 거센 반발로 무위로 그쳤다. 서울 청량리, 부산 완월동과 함께 전국 3대 홍등가로 알려진 이곳은 2004년 성매매 방지 특별법이 시행되며 쇠락 일로를 걷기 시작했다.

100년 역사의 자갈마당 폐쇄는 쉽지만은 않은 여정이었다. 2019년 업주들의 거센 저항을 뚫고, 모든 업소가 영업을 중단하며 본격적인 철거 작업이 이뤄졌고, 현재 주상복합단지가 건설되고 있다. 도시재생의 일환으로 전국 최초로 성매매 업소 한가운데에 예술 전시관 자갈마당 아트스페이스를 개관하며 1년 6개월간 작가들의 전시가 이루어지기도 했다.

시민들의 갈망대로 자갈마당은 역사의 뒤안길로 사라졌다. 시대의 흐름에 따른 당연한 결과였다. 한 가지 아쉬운 건 흔적조차 남아있지 않은 채 완전히 초기화되었다는 것이다. 도시는 어제와 오늘 그리고 내일이 쌓여 가는 역사적 공간이다. 비록 부끄러운 역사지만, 뒤늦게라도 자갈마당을 기억할 수 있는 작은 한편의 공간이라도 조성되었으면 한다.

우린 지역 예술가, 주민 등과 힘을 모아 문화 재생과 치유 공간으로 탈바꿈한 전주 선미촌을 참고할 필요가 있다. 선미촌도 자갈마당과 마찬가지로 대표적인 홍등가였다. 이전의 잘못을 되풀이하지 않도록 기록하고 기억하는 것. 네거티브한 문화유산의 존재 이유는 바로 여기에 있다. 현재를 꿰뚫고, 이상향의 미래, 즉 무릉도원으로 나아가기 위한 기준과 방향을 제시하는 일종의 나침반이기 때문이다.
길형식 거리활동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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