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만진의 문학 향기] 인간에 대한 예의

  • 정만진 소설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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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입력 2024-03-08 08:21  |  수정 2024-03-08 08:22  |  발행일 2024-03-08 제17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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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만진 (소설가)

1545년 3월8일 충무공 이순신이 태어났다. "무슨 소리? 3월8일이 아니라 4월28일이지!"라며 오류를 지적하는 분이 계실 수도 있다. 음력이냐 양력이냐의 기준 차이에서 빚어지는 논란이다.

3월8일이 맞다. 노량에서 순국할 때까지 이순신은 한 번도 자신의 생일을 4월28일로 여긴 바 없다. 본인이 3월8일에 태어났다는데 남들이 4월28일이라고 강변해서는 예의가 아니다. 우리나라는 고종이 1895년 음력 11월17일을 1896년 양력 1월1일로 선포하면서 바뀐 책력을 쓰게 되었다.

우리나라 사람이라면 누구나 알듯이 이순신은 호국 대영웅이다. 임진왜란 3대 대첩 중 하나로 손꼽히는 한산 대첩을 비롯해 부산포 대첩·명량 대첩 등 무수한 승전을 일구었다. 나라가 왜적에 넘어가는 것을 막아낸 '역사의 공신'인 것이다.

뿐만 아니라 세계기록유산이자 대한민국 국보인 '난중일기'의 저자이기도 하다. '난중일기'에는 임진왜란이 일어난 1592년의 음력 1월1일부터 전쟁이 끝나는 1598년의 11월17일까지 기록이 담겨 있다. 당연히 '난중일기'는 임진왜란 연구의 소중한 사료이다.

3월8일은 '세계 여성의 날'이기도 하다. 1908년 3월8일 미국 여성 노동자들이 참정권 보장과 노동조건 개선을 요구하며 대규모 시위를 벌였다. 작업장에서 화재로 사망한 동료들을 기리기 위해 2만여 여성 노동자들이 운집했다.

그들은 "빵과 장미를 달라!"고 부르짖었다. 빵은 생존권, 장미는 참정권을 상징했다. 그 이듬해 미국은 3월8일을 '전국 여성의 날'로 정했고, 세계 여러 나라로 확산되면서 1977년 들어 UN이 '세계 여성의 날'로 지정했다.

우리나라는 2018년에야 3월8일을 법정 기념일로 삼았다. 바빌로니아 함무라비 대왕이 부부를 동등한 존재로 규정하고 노동자의 임금을 법으로 보호받게 한 것이 언제인가? 함무라비 대왕은 기원전 1750년 세상을 떠났다. 우리는 함무라비 법전보다 약 3천750년, UN '세계 여성의 날'보다 41년 늦었다.

이순신은 '난중일기' 첫날에 "어머니와 남쪽으로 멀리 떨어져서 두 해 연속 설을 보내니 너무도 애잔하다"라고 썼다. 공자의 인(仁)은 부모의 자식에 대한 자(慈), 자식의 부모에 대한 효(孝), 동기끼리의 제(悌)를 기반으로 한다.

누구에게나 '여성'인 어머니가 있다. 누이가 있다면 그 또한 '여성'이다. 입으로는 공자의 주례(周禮)를 숭앙하면서 '남녀 차별' 해소에는 반발하는 '동방예의지국'을 어찌 이해하면 좋으려나. <소설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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