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더 나은 세상] 가장 강한 사람들

  • 신현정 캐나다 사스카추안대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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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입력 2024-03-14 06:53  |  수정 2024-03-14 06:57  |  발행일 2024-03-14 제22면
캐나다는 난민들 많이 거주
살려면 어디든 가야 하기에
무엇이든 할 수 있는 사람들
이 생명력 강한 사람들 사이
한국인은 어디쯤 서 있는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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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현정 캐나다 사스카추안대 교수

아프가니스탄 난민 출신의 여학생 밴드 The Sounds of Afghanistan은 11명의 중고등 학생들로 구성되어 있다. 새스커툰 한인회 한국 설날 행사 초청공연에 대한 감사로 한국식당에서 식사를 했다. 캐나다는 난민을 적극 수용하는 나라 중 하나라 새스커툰도 예전 시리아 난민들 그리고 얼마 전에는 우크라이나 난민들을 대거 수용했었는데 이들 대부분은 3년 전 도착했다고 했다.

어린 여학생들이 화려한 전통의상을 입고 랩이 섞인 노래를 부르는 발랄하고 아름다운 모습이, 난민들을 여전히 트라우마에 시달리고 전쟁터에서 살아남아 온 가난한 사람들이란 식으로 묘사하는 전형적인 스테레오타입을 깨기에 좋다고 생각해 섭외했었다. 한국문화를 매우 좋아한다며 들떠서 식당에 나타난 학생들은 대부분 본국에서 사립고등학교를 같이 다니던 사이로 3년 전 탈레반이 아프가니스탄을 장악할 때, 미국 비영리기구와 연관된 학교장의 주선으로 특별기를 통해 캐나다로 왔다고 했다. 학교밴드인데 여성들의 교육이 금지되어 있다시피 한 나라에서 온라인과 방송활동 등을 통해 알려졌던 터라, 카불 탈출 시 휴대폰의 사진들을 지우고 긴 히잡으로 얼굴을 가리고 버스를 탔다는 얘기에선 영화 같은 긴박함이 느껴졌다.

정부의 초기 지원이 끝난 후로는 각자 알아서 생존해야 하기에 생활은 쉽지 않다고 했다. 그럼에도 가족들 친구들과 함께 온 터라 강한 커뮤니티가 형성되어 있고, 3년 전 처음 왔을 때는 영어를 거의 못 했다는데 유창한 영어는 물론 좋아하는 K-pop 드라마를 통해 익혔다는 한국어도 꽤 유창한 A를 비롯, 어린 학생들 대부분이 일을 하고 있다는 사실도 놀라웠다. 15세의 A도 이웃집 베이비시터로 일한다며 가족 모두가 돈을 번다고 했다. 아프가니스탄에서는 한국 드라마 주몽이 해마다 다시 방영될 정도로 국민드라마로 높은 인기를 누린다는 것을 비롯해 슬프고 힘들 수 있는 이야기들을 밝게 재잘대던 일행은 캐나다로 같이 오지 못한 가족을 둔 학생들 얘기에 이르러 결국 눈물을 보였다.

작년에 합류한 이 학생들은 파키스탄으로 탈출해서 지내다 세 자매만 작년에 캐나다에 도착했다고 했다. 그럼 요리는 누가 하니 물었더니 15세인 둘째가 한다고 했다. 14세의 막내 J는 말했다. 스무 살 넘은 큰 언니는 돈 벌고, 둘째 언니는 요리하고, 나는 그냥 먹어요. 눈물이 핑 돌았다. "너는 그냥 먹기만 해도 돼, 너 이제 겨우 14세인 걸"이라고 말해줬다. 이들은 파키스탄에 남아있는 가족들을 데려오는 것이 꿈이다. 캐나다 정부 지원 인원은 마감되었고 교회 등의 기관들을 통해 데려오려면 한 명당 2천만원 가까운 비용이 필요하다고 했다. 그 돈이 큰돈이 아닐 만큼 부자들도 많으니 두 명의 부자들만 찾으면 되는 거네. 같이 찾아보자고 했다.

세계 여성의 날이 있는 3월이다. 지난달 어느 행사에서 옆자리에 앉았던 지역 주의회 의원의 말이 생각났다. 지역 출신으로 정치인으로 가족들과 행복한 생활을 하고 있는 그는 말했다. "You don't need to go far for success. (성공을 위해 멀리 떠나야 할 필요는 없어.)" 크게 바라는 게 없기에 멀리 갈 필요가 없는, 머물 수 있는 사람들. 생존을 위해 어디로든 가야 하기에 무엇이든 할 수 있는 사람들. 이 생명력 강한 사람들 사이에, 오늘날 한국인들은 어디쯤 서 있는가.
신현정 캐나다 사스카추안대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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