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취재수첩] 심기일전(心機一轉)

  • 이남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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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입력 2024-03-14 06:53  |  수정 2024-03-14 06:54  |  발행일 2024-03-14 제22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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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남영기자〈정경부〉

"1987년 우리나라에서 단일 산업 최초로 100억달러 수출을 달성한 산업이 바로 대구 섬유산업입니다."

최근 대구를 찾은 윤석열 대통령은 '첨단산업으로 우뚝 솟는 대구'를 주제로 한 '국민과 함께하는 민생토론회' 모두 발언에서 이같이 말했다. 참 간만에 들어본 말이다.

대구는 1950년대부터 섬유산업이 발달했다. 값싼 인건비와 경부선이 지나가는 비교적 편리한 교통망이 산업발전의 토대가 됐다. 섬유 산업은 1990년대까지는 잘나갔다. 만들면 수출하기 바빴고 공장은 늘 풀가동이었다. 사실상 대구를 먹여 살렸다. 말 그대로 '효자산업'이었다.

하지만 이후 섬유산업은 쇠락의 길로 접어들었다. 소득 수준 상승에 따른 인건비 상승, 중국산 제품의 저가 공세 등으로 심한 부침을 겪으며 시장에서 경쟁력을 잃었다. 유럽의 고급원단과는 격차가 있었다. 한마디로 포지션이 어정쩡했다. 외환위기 때는 해외로 이전하지 않은 섬유 기업까지 잇따라 연쇄 도산했다. 대구 섬유산업은 더 수세로 몰렸다. 그 여파는 현재까지도 진행형이다. 섬유업계 종사자의 한숨은 갈수록 깊어지고 있다.

희망은 있다. 대구의 섬유업 종사자들은 여전히 연구개발에 매진하며 연구소와 공장라인을 지키고 있다. 120여 개 섬유기업이 집적된 대구염색산업단지가 그 중심에 있다. 녹록지 않은 경영환경 속에서도 입주기업들은 여전히 1조원대의 매출을 올리며 지역 섬유업계를 지탱하고 있다.

43년 역사를 갖고 있는 염색산단은 풀어야 할 숙제가 적잖다. 먼저 대구 서·북부지역의 악취 문제다. 이 일대가 입주 업체 자구노력과 대구시 지원으로 환경부도 만족할 만한 수준으로 지표가 개선됐지만 인근 지역민들의 민원은 심심찮게 제기되고 있다.

대형 프로젝트인 '대구염색산업단지 이전'도 준비해야 한다. 서대구 KTX 역세권 개발사업, 군위군의 대구시 편입과 맞물린 결과다. 대구시는 2030년까지 첨단섬유복합단지를 조성하겠다고 한다. 이처럼 중차대한 프로젝트를 앞둔 상황에서 6년 만에 대구염색산단관리공단은 차기 이사장을 선출한다. 차기 이사장 선거 구도는 2파전이다. 14일(오늘) 제44기 정기총회에서 예전처럼 경선투표로 새 이사장이 결정된다.

염색산단은 대구 섬유업계의 상징이자 마지막 자존심이다. 이 산단을 관리·운영하는 염색공단의 차기 이사장이 대구 섬유인들의 자존감을 회복시킬 수 있을지 기대감이 크다. 어느 때보다 '심기일전(心機一轉)'이 절실하다. '대구 섬유산업의 미래'에 좀 더 고민하는 후보자가 지휘봉을 잡길 바란다.
이남영기자〈정경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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