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만진의 문학 향기] 역사 속 '나쁜 사람'

  • 정만진 소설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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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입력 2024-03-15 08:05  |  수정 2024-03-15 08:07  |  발행일 2024-03-15 제17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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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만진 (소설가)

소설 '삼국지연의'에서 허소는 조조를 "태평 시대에는 간적, 난세에는 영웅"으로 평가한다. 다른 이의 말을 성심껏 들을 만큼 수양이 되지 못하면 흔히 자기가 듣고 싶은 대로 내용을 왜곡해서 귀에 담는다. 많은 사람들이 그렇다. 공자의 가르침대로 말하면 보통 사람은 군자가 아닌 까닭이다.

그런 까닭에 '삼국지연의'를 읽은 독자들은 허소의 평가를 '조조는 간웅'으로 요약한다. 영웅으로 인정은 하되 좋은 이미지로 받아들이지는 않는 미묘한 심리적 반응이다. 그렇게 함으로써 독자는 스스로를 '간'도 '웅'도 아닌 '보통 사람'으로 규정한다.

'삼국지연의'에는 독자의 이런 식 사유를 뒷받침해주는 또 다른 표현이 나온다. 조조는 호언장담을 늘어놓는다. "내가 천하 사람들을 저버릴지언정 천하 사람들이 나를 저버릴 수는 없다."

조조의 말(寧敎我負天下人休敎天下人負我)은 더 이상 유례를 찾기 어려운 자기중심적 발상의 극치이다. 이 부분을 읽으며 독자는 '적어도 나는 조조만큼 이기주의자는 아니야'라고 자신을 격상시킨다.

조조와 그의 아들 조비·조식은 당대의 이름난 시인들이었다. 그중에서도 조식은 이백과 두보가 출현하기 전까지 중국 최고 시인으로 평가되었다. 조조의 시를 발췌독으로 읽어본다.

"술을 앞에 놓고 노래하네, 인생이 길어본들 얼마나 되랴(對酒當歌人生幾何). 인생은 아침이슬 같은 것, 지나간 날들이 너무 많구나(譬如朝露去日苦多). 그대의 푸르른 옷깃을 보니 내 마음도 펄럭인다(靑靑子衿悠悠我心).

다만 그대를 생각하며 지금껏 홀로 노래를 읊었다네(但爲君故沈吟至今). 논둑 밭둑 넘어 힘들여 이곳까지 왔으니(越陌度阡枉用相存) 서로 깊은 마음 나누며 옛 은혜를 생각하네(契闊談心念舊恩).

밝은 달 듬성한 별밤에 까막까치 남쪽으로 날다가(月明星稀烏鵲南飛) 나무 위를 세 차례 맴도네, 어느 가지에서 잠시 쉬려나(繞樹三何枝可依). 산이 높음을 거리끼지 않고 바다가 깊음을 거리끼지 않듯이(山不厭高海不厭深) 나도 주공 같은 큰 정치를 하여 천하 민심을 얻으리라(周公吐哺天下歸心)."

'삼국지연의'는 한의 맥을 잇는 유비에 초점을 맞춘 탓에 결과적으로 조조를 간웅으로 성격화했다. 조조는 지금으로부터 1천800년도 더 옛날인 220년 3월15일 세상을 떠났다. 오늘 3월15일 조조 기일을 맞아, 역사책을 읽을 때는 저자가 누군가를 '간웅'으로 왜곡하려는 의도 아래 집필한 것은 아닐까, 곰곰 짚어보아야 마땅하다는 생각에 빠져본다. 〈소설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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