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단상지대] '우리'와 '그들'이라는 말

  • 임진형 음악인문학자·대구 챔버페스트 대표
  • |
  • 입력 2024-04-01 07:11  |  수정 2024-04-01 07:13  |  발행일 2024-04-01 제21면

2024033101000996400042251
임진형 음악인문학자·대구 챔버페스트 대표

영국 유학시절의 일이다. 필자는 영국이 유럽연맹을 탈퇴한 브렉시트의 모든 과정을 몇 년간 지켜보면서 '우리(us)'와 '그들(them)'의 경계에 대해 더욱 깊이 골몰하게 되었다. 2016년 영국 브렉시트 찬반 국민투표 결과 이후, 브렉시트를 지지했던 당시 영국총리 테레사 메이(Theresa May)는 같은 해 보수당 전당대회에서 이렇게 말한다. "당신이 세계 속의 시민이라고 믿는다면 당신은 아무 곳에도 속하지 않는다." 이 연설에 대한 영국시민들의 찬반 양분 현상이 고조되면서 '우리'와 '그들'의 경계 유무를 주제로 한 영국 시민 사회와 지식인들 사이에 많은 토론이 이루어졌다.

브렉시트 투표 결과의 반작용으로 다양한 문화적 이벤트도 영국 곳곳에서 일어났다. 2019년 6월 요크 아이디어 페스티벌에서는 작곡가, 연주자, 수학자들을 초대하여 '수학과 음악의 말도 없고 그림도 없는 형식'이라는 포럼이 진행되었다. 논의의 요지는 어떻게 음악과 수학의 추상적 구조가 서로 연결되고, 창의성과 예술적 상상력의 요소들을 공유하는지에 대한 거였다. 결국 이는 곧 서로 다른 학문 간의 경계가 허물어지면서 학제 간 연구나 융복합적인 학문의 시대로 우리 사회가 진입해 가고 있음을 말해 준다.

터키계 영국 소설가이자 정치 평론가인 엘리프 샤팍(Elif Shafak)은 이렇게 말한다. "우리는 그림을 그리는 나침반처럼 살고 있다. 드로잉 나침반의 한쪽 다리는 매우 안정적이고 고정되어 있으며, 한 곳에 뿌리를 둔다. 한편 다른 쪽 다리는 그 주위에 크고 넓은 원을 그린다." 우리는 현재에 머무르는 장소뿐만 아니라 동시에 다른 장소에도 존재하기 때문에, 세계의 시민이 되어 경계를 넘어 타인과의 연결과 소통을 통해서 좀 더 다원적이며 유동적인 태도를 가질 필요가 있다. 물론 시민의 조건에는 자신이 속한 국가와 여권이 필요하다. 필자의 경우 한국 여권을 소지하고 있지만, 오랜 기간 해외에서 생활하며 다듬어진 생각과 행동을 하는 나는 한국인인가, 아니면 글로벌한 세계의 시민인가? 음악과 수학이 서로 다른 영역이지만 수(數)라는 추상적인 의미 구조에 경계가 없는 것처럼 그리고 인문학을 포함한 모든 전공 학문이 절대로 홀로 존재할 수 없는 것처럼, 모든 것은 모든 것과 분리되면서도 이어져 있다. 음표와 음표 사이에 음악이 존재한다든가(드뷔시), 스스로를 세계인이라고 자처한 작가(무라카미 하루키)의 경우도 같은 맥락이다. 차이와 동일성, 모순의 일치와 불일치 사이에 비로소 참된 진리와 창조, 성장이 있다.

윤재석 경북대 인문학술원장은 최근에 인문교양도서 '생활인문학 3'을 발간하며 "(인문학은) 연령과 계층 그리고 지역의 경계를 넘어 가치 있는 삶의 여정을 동행하는 길"이라고 말한다. 예술도 이와 다르지 않다. 이분법적 사고와 체계를 넘어서 타인과 연결하고 가장 정성스럽게 소통하는 방식으로서 예술은, 사회적 가치와 효용성으로서 보다 새로이 기능할 필요가 있다.

선거가 다가오면서 각 진영에서는 협화음과 불협화음 사이에서 '우리'와 '그들'의 경계를 더욱 뚜렷하게 구분하며 외친다. 이항대립의 논리를 부정하고 해체주의를 언급한 데리다의 경우나 시(是)와 비(非) 어느 하나에 치우치지 않는 선불교의 '즉비(卽非)'는 어떤 의미를 갖는가? 우리와 그들은 어떻게 분리되며 또 어떻게 이어져 있는가? 숲길을 걸으면 모든 게 화음이다.임진형 음악인문학자·대구 챔버페스트 대표

영남일보(www.yeongnam.com), 무단전재 및 수집, 재배포금지

오피니언인기뉴스

영남일보TV





영남일보TV

더보기




많이 본 뉴스

  • 최신
  • 주간
  • 월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