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재열의 외신 톺아보기] 하버드대학의 책 한 권

  • 박재열 경북대 명예교수·시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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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입력 2024-04-01 07:11  |  수정 2024-04-01 07:13  |  발행일 2024-04-01 제21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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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북대 명예교수·시인

하버드대학 도서관에 사람가죽으로 장정한 책이 한 권 있었다. 1934년에 그 도서관에 들어온 '영혼의 운명'이라는 책이었다. 이 책의 첫 주인은 프랑스 의사였으며 그는 그 책이 '인간영혼에 관한 것인 만큼 인간가죽으로 감쌀 가치가 있다'라고 생각하여 자신이 근무한 병원에서 죽은 한 여인의 등에서 채취한 피부로 그 책을 장정하였다. 그는 그런 내용을 쪽지에 적어 책에 끼워 뒀었다. 2014년에야 이 대학이 그 장정을 펩타이드 질량 지문분석법을 적용해보니 인간피부가 틀림없었다. 이런 '인피(人皮) 제본술'이 유행한 것은 19세기 의사들 사이에서였다. 죄인을 사형보다 더한 극형을 하기 위해 그의 피부를 뜯어내거나, 개인장서용으로, 죄인의 고백기록을 쌀 목적으로, 가족이나 연인에게 남길 책의 장식용으로 당사자의 인피를 뜯어내는 경우가 있었다.

하버드대학의 한 단체가 문제제기를 하고 그 책의 장정을 떼어내어 프랑스에 고이 묻어줄 것을 총장에게 요구하였다. 대학이 그 유해 일부를 떼어냈으며 앞으로 그것을 엄숙하게 처분하겠고, 피부를 뜯긴 여인의 인격을 존중하지 못했음에 대해 사과하였다. 한 연구단체가 인피 장정이라는 책 50권을 조사해 본 결과 18권엔 정말 인피가 사용되었고 13권은 동물가죽임이 밝혀졌다. 하버드대학은 또 3년 전에 이 대학과 박물관 설립에 노예제도와 식민주의가 어떻게 이용되었는가를 되돌아보고, 학문적 탐구로 인해 사자와 인간에 대한 존경심이 무시된 데 대해서도 사과하였다. 더불어 박물관 등에 보관하고 있는 2만 점의 인간의 해골, 모발, 골편, 치아 중에 노예제도와 식민주의와 관련된 것은 법령에 맞게 관리하겠다고 하였다.경북대 명예교수·시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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