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경규 교수의 부동산 에세이] 부동산공시제도와 공신력

  • 서경규 대구가톨릭대 부동산학과·부동산경영학과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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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입력 2024-04-03 08:15  |  수정 2024-04-03 10:09  |  발행일 2024-04-03 제16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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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경규 대구가톨릭대 부동산학과·부동산경영학과 교수

우리나라 부동산공시제도는 등록제도와 등기제도로 이원화돼 있다. 대표적 공적 장부(공부)인 대장과 등기부에 공신력을 인정하지 않고 있다. 여기서 공신력은 공부에 공시된 사항을 믿고 거래한 경우 비록 공시 내용이 실제 사실과 달라도 거래의 안전을 위해 그 공시된 내용대로 효력을 인정하는 것을 말한다. 예를 들어 토지대장상 면적이 600㎡로 기재돼 이를 믿고 매수한 후 지적측량을 해보니 그보다 작은 590㎡로 확인된 경우 또는 등기부상 소유자로 기재된 '박부자'를 소유자로 믿고 매수하였으나 나중에 제3자가 나타나 실제 소유자라고 주장하는 경우 공신력 문제가 발생한다. 이때 공신력을 인정한다면 토지 면적을 600㎡로 해석·처리하고 소유자를 '박부자'로 해석·처리하게 된다.

부동산 공부에 공신력을 인정하면 거래 안전과 활성화를 도모할 수 있는 장점이 있다. 하지만 국가 책임문제나 진정한 권리자의 권리박탈과 같은 문제도 야기한다. 따라서 부동산 공부에 공신력을 인정하기 위해선 우선 등록과 등기절차에 있어 국가기관의 공권력에 의한 정확한 조사와 실질적 심사를 통해 실제 사실을 확인하는 게 필요하다.

우리나라에서 근대적인 부동산공시제도는 일제강점기 때 시작됐다. 일제는 토지조사사업(1910~1918년)과 임야조사사업(1918~1935년)을 통해 전체 토지의 지목과 소유자를 조사하고, 지적공부와 등기부제도를 도입했다. 당시 지적공부는 평판과 대나무자로 측량 후 수기로 작성했다. 광복 이후 시행된 농지개혁으로 대규모 소유권 변동이 있었다. 6·25전쟁(1950~1953년)은 부동산 공시 관련 자료의 분실(소실)과 수복지구(북위 38도 이북지역 중 6·25전쟁으로 남한에 편입된 접경지역)의 소유권 분쟁을 야기했다. 1976년부터 면적 단위를 척관법(기본단위: 평)에서 미터법(기본단위: ㎡)으로 변경했고, 2011년 측량기술 발전 등으로 지적공부와 실제 현황이 일치하지 않는 문제를 해소하고자 '지적재조사에 관한 특별법'을 제정했다.

그간 부동산공부에 공신력을 인정하지 못한 것은 이 같은 관련제도의 역사와 관련이 깊다. 즉 공신력 인정을 위한 여건 조성이 부족했다. 그러나 부동산공부에 공신력을 인정하지 않아 선의의 제3자가 피해를 보는 사례가 증가하고 있는 현실에서 등기부만이라도 먼저 공신력을 인정할 필요가 있다. 이 경우 진정한 권리자의 희생이 따르므로 이를 방지하기 위한 제도도 필요하다. 등기관의 실질적 심사제도, 국가배상제도 및 등기 시 배상기금 징수 등이 그 예이다. 종전에도 몇 차례 논의됐으나 시행되지 못한 등기부의 공신력 인정을 통해 부동산 거래의 안전을 도모하고 진정한 권리자도 보호할 수 있기를 기대한다.

<대구가톨릭대 부동산학과·부동산경영학과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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