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침을 열며] 벚꽃이 피고 지고 봄날은 짙어가고

  • 박순진 대구대 총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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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입력 2024-04-08 07:00  |  수정 2024-04-08 07:01  |  발행일 2024-04-08 제22면
멋들어지게 꽃이 피었다가
금방 떨어져도 경이로운 봄
상춘객들과 여유 느껴보자
세상사가 아무리 번잡해도
무심한 봄, 그렇게 깊어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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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순진 대구대 총장

계절은 완연한 봄으로 나아가고 있다. 주말 동안 벚꽃이 만개하고 꽃잎이 눈송이처럼 흩날리는 멋진 풍경이 연출되었다. 막 물오른 나무는 연한 새싹을 밀어내고 양지바른 언덕에는 때 이른 야생화가 고개를 불쑥 내밀고 있다. 지난겨울 유난히 바람이 심하고 날씨가 변덕스러웠어도 어김없이 봄이 때맞춰 오는 것을 보면서 해마다 이맘때면 문득 자연의 섭리에 마음이 겸허해지곤 한다. 봄의 생명력은 가히 감탄할 만하다.

큰길에는 잘 자란 벚나무가 흐드러지게 꽃을 피웠다. 저렇게 많은 꽃을 약속한 듯 일시에 피워내니 신기할 따름이다. 나무들이 서로 소통한 듯 때를 맞춘다. 사람들이 모르는 말을 주고받는 게 분명하다. 단번에 피워내는 꽃의 양도 실로 엄청나다. 저렇게 많은 물질을 준비한 것이 참으로 놀랍다. 흐드러진 꽃송이 하나하나를 보면 그 많은 송이가 저마다 온전히 제대로 모습을 갖추어 피었다. 바쁘게 핀 듯해도 허투루 피지 않는다.

주말 동안 상춘객이 넘쳐났다. 벚꽃은 유난히 짧은 기간 활짝 피었다 한꺼번에 흩날리며 떨어지는 꽃이라서 자칫 만개 시기를 놓치면 또 한 해를 기다려야 한다. 요 며칠 동안 강둑을 따라 핀 벚꽃길이며 대학 캠퍼스에 줄지어 꽃핀 벚나무 아래며 사람들이 삼삼오오 산책하며 사진 찍기에 여념 없는 장면이 연출된다. 필자도 봄놀이 삼아 산책을 나섰다. 주말 동안 번잡한 세상사를 내려놓고 잠시 여유를 갖고 싶었다.

마침 집을 나선 김에 투표소에 들러 사전투표를 하기로 했다. 벚꽃 가득 핀 동네 길을 지나 큰길에 접어들면 길목마다 유권자를 현혹하는 현수막이 어지럽게 걸려 있다. 후보들의 소란스럽고 다소 과장된 유세가 가던 발걸음을 멈추게 한다. 선거 운동이 본격적으로 시작되며 우리 사회의 갈등과 분열이 민낯을 드러내고 있다. 지역을 대표하고 시민을 위해 일할 국회의원을 선출하는 선거를 보며 기대보다 우려가 큰 현실이 여러모로 아쉽다. 선거일이 다가올수록 세상이 더 어지럽고 두렵게 느껴진다. 유권자로서는 당혹감만 커진다.

후보들이 저마다 지역을 발전시키고 국민의 민생을 위한 공약을 내세우고 있지만 정작 유권자의 이목을 붙잡는 것은 시끄러운 확성기와 꼴사나운 네거티브다. 방송에서는 비방과 흑색선전이 난무한다. 유튜브는 더 가관이다. 언젠가 했던 말과 글이 온통 까발려지고 연일 논란이 된다. 국민 눈높이에 맞지 않는 행동을 한 사람으로 지목되면 그 파장이 끝도 없다. 누가 더 나쁜 사람인가 경쟁하는 형국이다. 그야말로 소문이 만개하였다.

벚꽃이 활짝 핀 길을 걸으며 봄이 오고 있음을 느끼고 싶어서 나선 길에서 선거 운동을 맞닥뜨리니 여러 생각으로 마음이 편치 않다. 아무리 그래도 맹렬한 봄 풍경은 혼탁한 세상사를 잠시 잊게 해준다. 계절은 변하는 대로 순응하면 되고 멋들어진 꽃은 피어난 그대로 감상하면 그만이다. 굳이 꽃마다의 과거나 미래를 캐묻거나 말하지 않는다. 가로수로 심어져 잘 가꾼 벚꽃도 좋고 앞산과 뒷산에 제멋대로 자란 야생 꽃도 나름대로 제멋이 있다.

자연은 긴 겨울을 인내하며 봄을 준비하고 일순간 봄이 된다. 멋들어진 꽃이 피었다가 금방 떨어지는 장면은 해마다 겪는 일인데도 매번 경이롭게 보게 된다. 꽃이 피고 지는 일은 자연이 정한 이치다. 화무십일홍이라 하니 때를 놓치지 말아야 한다. 넘치는 상춘객들과 더불어 여유를 느껴 보자. 일순간 꽃이 지고 나면 연이어 나뭇잎이 새순을 내밀고 무성해진다. 세상사 아무리 번잡하고 우리를 어지럽게 해도 무심한 봄은 그렇게 깊어간다.
박순진 대구대 총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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