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재열의 외신 톺아보기] 노인과 황새

  • 박재열 경북대 명예교수·시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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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입력 2024-04-08 07:03  |  수정 2024-04-08 07:04  |  발행일 2024-04-08 제21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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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재열 (경북대 명예교수·시인)

13년 전 튀르키예의 한 노인이 호수에서 그물을 올려 고기를 떼어내고 있었다. 그물이 부스럭거려 돌아봤더니 놀라워라, 하얀 깃털, 까만 끝동을 단 날개, 오렌지색 다리, 뾰족하고 긴 부리, 황새가 와 있지 않은가. 노인은 꿈에도 생각지 못한 손님이라 고기 한 마리 던져 줬더니 넙죽 받아 삼켰다. 또 줬더니 또 삼켰다. 노인은 그해 여러 번 이 새의 방문을 받고 식사를 대접하였다. 노인과 황새의 인연은 이렇게 시작되었다. 이 황새를 야렌이라고 불렀다. 야렌은 '아내' 나즐리가 있었다. 이들은 늦여름엔 남쪽으로 내려갔다가 그 이듬해 봄에 옛 보금자리와 노인의 배를 잊지 않고 찾아왔다. 황새는 일부일처제이나 남쪽으로 갈 땐 따로 간다. 그 이듬해 봄엔 정확히 옛 둥지로 돌아와 함께 새끼를 깐다.

5년째 되는 해에 한 사진작가가 노인의 이야기를 보도했다. 올봄에 야렌이 13년째 찾아오니 지방방송은 야렌의 '귀향'을 크게 다루었다. 이들을 주제로 다큐멘터리, 동화를 만드니 이 노인은 유명인사가 됐다. 70세 노인과 17세 황새가 주연하는 영화까지 만들고 있다. 235명이 사는 이 조용한 마을이 관광지가 되었다. 올레 길을 내고 호수 옆에 카페를 열었다. 1980년대에는 41쌍이 둥지를 틀었으나 올해엔 네 쌍이 왔다. 야렌 부부의 보금자리는 노인 집 옆 전주 위에 있는데 지방정부에서 둥지 옆에 카메라를 설치하여 24시간 일반시청자들이 들여다볼 수 있도록 했다. 부부는 몸을 단장하고 목을 비틀고 부리로 딱딱 소리를 내고 둥지를 고쳐 짓고 사랑을 나눈다. 노인이 야렌! 하고 불러 부부에게 식사를 제공한다. 관광객들은 이 노인을 보면 반갑다고 놓아주지 않는다.

경북대 명예교수·시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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