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단상지대] 삶의 정수에 다가가다

  • 이은미 변호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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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입력 2024-04-15 07:14  |  수정 2024-04-15 07:15  |  발행일 2024-04-15 제21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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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은미 변호사

얼마 전 어떤 조직에서 경력변호사를 대거 채용한다는 공고를 보았는데 조건이 좋았다. 신입도 아니고 경력인 데다가 내가 했던 일과 관련이 있어서 나는 관심을 가지고 공고를 읽었다. 지원자의 나이 조건이 40세까지이니 지원 가능 나이도 넉넉하고 적절하구나 하고 생각하면서 글을 읽던 중 현실타격감이 왔다. 내 나이가 47세인 것을 새삼 깨달은 것이다. '흥, 경력이면 50세까지는 뽑아야지.'

며칠 후 나는 문득 오랫동안 미루던 조혈모세포 기증(골수 기증)을 결심했다. 예전에 장기기증 희망등록은 한 적이 있었는데, 조혈모세포 기증의 경우 입원해서 채취하고 회복하는 기간이 필요하다고 해서 하지 않았다. 그런데 갑자기 더 나이가 들기 전에 의미 있는 일을 하고 싶다는 생각이 들었다. 절차를 알아보기 위해 국립장기조직혈액관리원 홈페이지에 들어갔다. 그곳에는 조혈모세포 기증희망자 등록은 '만 18세 이상 40세 미만의 건강한 사람'이라고 되어 있었다. 해가 바뀌어도 나는 똑같은데 내 나이의 숫자만 관용 없이 더해진다는 것이 억울하게 느껴졌고, 철없는 내가 이쯤 되면 삶의 지혜를 축적했을 것만 같은 나이가 되었다는 것이 받아들이기 힘들었다.

나이가 든다는 것이 이렇게 억울한 생각도 들지만, 나이가 든다는 것의 장점도 종종 발견한다. 나이가 들면 유독 꽃 사진을 찍게 되는 것뿐만 아니라 여러 변화가 생기는 것 같다. 아침에 아파트 거실에서 밖을 내려다보면 늘 비슷한 자리에서 운동하시는 어머님 아버님들이 보인다. 나는 주로 스쿼트를 하면서 밖을 보는데, 그분들의 직관적인 맨손체조나 스트레칭을 보면 웃음이 나서 자세가 무너지곤 했다. 하루는 독수리가 날개를 활짝 펴듯 팔을 펴고는 허리를 90도로 구부렸다 폈다 하는 것이다. 퍼득퍼득 거리면서. 날갯짓은 일정하고 엄숙했다. 그런 날갯짓 이외에도 온몸을 일정한 규칙 없이 배배 꼬는 운동도 하셨다.

그런데 어느 날 나는 그 족보에도 없는 운동을 따라 해 보았다. 독수리가 날아오르듯 시동을 걸고 큰 날갯짓으로 퍼덕이며 상체를 접었다 폈다 했다. 이 근본 없는 몸짓은 심장을 빠르게 뛰게 하여 유산소 느낌을 줌과 동시에 하체를 강하게 지탱하여 근력운동도 되는 느낌을 주었다. 그리고 새가 나는 듯 명상효과와 마음의 평온까지 느껴졌다. 꽈배기처럼 배배 꼬거나 몸을 꿀렁거리며 예측하기 어려운 동작들을 정적으로 연결하는 이 직관적인 운동은 평소 쓰지 않는 근육을 자극하여 피로를 풀고 스트레칭 효과가 있는 느낌이었다.

예전에는 앞뒤로 손을 손뼉 치거나 뒤로 가는 어르신들, 특이한 동작으로 몸을 푸시는 분들을 보면 '풋' 했는데 지금은 그게 삶의 정수에 다가가 있는 몸짓처럼 느껴진다. 타인의 시선을 의식하지 않고, 오로지 내 근육을 푸는 것과 편안함만 추구하는 경지에 이르러야 할 수 있기 때문이다.

예전의 나는 놀기로 약속하면 맛있는 것 어떤 것을 먹을지 어디에 갈지 등 계획을 짰다. 무언가를 경험해야 할 것 같고 최대한 신나야 하고 맛있는 것을 먹어야 할 것 같았다. 그래서인지 제대로 놀았다고 생각되는 날은 자주 오지 않았고 그렇게 놀고 나면 놀아서 기가 털리는 느낌도 있었다. 그런데 나이가 들면서 목적적이지 않은, 잔잔하고 무색무취한 그런 시간에도 '놀았다'는 생각이 들었다. 날씨가 좋을 때 걷거나 앉아 있는 것, 전통시장을 천천히 걸어 지나갈 때도 놀았다는 생각이 든다. 사소하고 작고 평범한 것들, 다른 사람의 인정보다는 내 마음이 채워지는 것을 중요하게 생각하게 된 것이다.이은미 변호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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