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훈교 지음/시인보호구역/139쪽/1만5천원 |
문화콘텐츠그룹 '시인보호구역' 상임대표인 정훈교 시인의 디카시집이다. 지난 1년 동안 제주의 여름ㆍ가을ㆍ겨울 그리고 봄, 사계절을 사진으로 찍고 그 사진에 5행의 짧은 시(디카시)를 써서 완성한 작품집이다. 현재 정 시인은 대구를 떠나 제주에 머물며 시인보호구역 운영과 문화기획자로 다양한 활동을 하고 있다.
이번 시집에서 시인은 사계해안, 신흥리포구, 물영아리오름, 서부두수산시장, 화북포구 등 제주의 풍경을 한 컷의 사진과 절제된 시어로 담아낸다. 또 제주도김창열미술관, 제주사랑방(고씨주택), 제주돌문화공원, 제주목관아, 명월성 등의 문화시설도 시집에서 만나볼 수 있다. 알뜨르비행장, 일제동굴진지, 곤을동 4·3유적지, 주정공장수용소 4·3역사관 등 근대역사의 아픈 서사가 담긴 장소에서는 시인의 깊은 사유가 고스란히 드러난다. 특히 시인은 지명이나 건물, 역사적 사건, 풍경 등을 직접 드러내지 않는다. 대신 '당신'이라는 테마로 연애시의 형식을 빌려 독자와 소통한다.
"오후엔 화북포구에 폭우가 쏟아졌지//내리는 비를 맞으며, 당신이 폭우처럼 쏟아졌으면 좋겠다고 생각했어//앞이 보이지 않을 정도로, 폭우가 되었으면 좋겠다고 생각했어//당신은 그대로고, 나만 낡아가는//(그런 오후는, 이제 싫어)"-'당신이 폭우처럼 쏟아졌으면 좋겠다고 생각했어' 전문
1부 '어느 날은 당신의 이름을 그리워하다'에서는 짙은 그리움에 대해 이야기한다. 그러면서 시인은 이별에서 금방 사라질 것들에 대한 연민과 기억에 대해 말한다. 시집 제목이기도 한 2부 '이제, 저 멀리 우리가 있는 것처럼'은 그리움을 넘어 대상에 대한 아낌없는 사랑과 서정을 노래한다. 이별은 결코 끝이 아니라, 대상을 더 깊이 추억하기 위한 과정이라고 이야기한다. 3부 '우리의 마음은, 언제나 중산간 어디쯤에 있었지'는 가까이 있으면서 미처 알지 못했던, 늘 곁에 있었지만 잠시 잊고 지냈던 또 다른 '당신'에 대한 이야기이다.
백승운기자 swback@yeongnam.com
백승운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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