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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효설 체육팀장 |
홍명보의 국가대표팀 감독 복귀전을 보며 참을 수 없었던 것은 선수들의 졸전이 아니었다.
지난 5일 서울월드컵경기장에서 열린 2026 북중미 월드컵 아시아 3차 예선 1차전. 붉은 색의 6만 관중으로 뒤덮인 홈경기였지만 우리 선수들은 팬들의 지지를 받지 못했다. 경기장은 시종일관 응원과 야유가 뒤섞여 어수선했고, 규탄 함성은 계속 귀에 맴돌았다. 홍 감독이 전술 지시를 위해 벤치에서 일어나 터치라인으로 움직이면 어김없이 거센 야유가 터져나왔다. 이를 잠재우기 위해 벤치로 뒷걸음질 치는 홍 감독의 모습에 한숨이 나왔다.
경기가 끝나자마자 김민재 선수가 관중석을 향해 걸어 나갔다. 참다 못한 표정이었다. 그는 "야유 대신 응원을 해달라"고 부탁했지만, 팬들은 다시 야유를 퍼부었다. '약체' 팔레스타인과 비기고, 팬들에게도 면전에서 거부당한 젊은 선수는 이래저래 낯이 서지 않았을 것 같다. 속이 거북했을 김민재도 '붉은 악마'를 향한 마지막 단체인사에서 머리를 숙이지 않았다. 반면, 일부 한국 팬들은 팔레스타인 선수들에겐 아낌없는 환호와 박수를 보냈다.
다음은 '붉은 악마'의 항변. "한국 선수, 한국 축구에 대한 야유는 없었다. 홍명보 감독과 정몽규 대한축구협회장에 대한 야유만 있었다." 우리 선수들이 지기를 바라는 응원은 없다고도 못 박았다.
하지만 틀렸다. 한국 선수들이 안방에서 환영받지 못했다. 경기 내내 야유가 터져 나오자 정작 우리 선수들이 위축됐다. EPL 뉴캐슬 선수들도 한때 팬들의 야유 때문에 홈경기가 무섭다고 말할 정도였으니 아무리 유능한 선수라도 신경이 쓰이는 건 당연하다.
물론, 경기장에서의 야유와 응원은 팬들의 자유다. 하지만 최소한의 명분이라는 게 있다. 협회 행정에 대한 불만, 정당한 절차 없이 선임된 감독에 대한 비난을 그라운드의 선수들 앞에서 표출한 것은 정상적이지 않다. 협회의 '축구 정치인'들을 내쫓기 위해 그라운드까지 몰려가 집회를 하는 듯한 인상이 지워지지 않는다.
힘들겠지만, 선수들도 심리적 압박을 감당해야 한다. 오죽하면 축구를 전쟁에 비유하겠는가. 축구는 단순한 운동 경기가 아니다. 이기기 위한 전략과 전술, 경쟁, 팀워크가 중요한 것은 물론, 체력적 한계를 극복하는 투지, 사회적 상징까지 내포한다.
한국축구가 심각한 암흑기에 빠졌다며 우려하는 이들이 많다. 축구협회를 향한 범국민적 분노도 가라앉을 기미를 보이지 않는다.
그래도 희망은 있다. '구악'으로 치부되는 재벌가 일원의 축구 행정 속에서도 한국 축구는 거스 히딩크란 독립 명장을 만났던 행복한 추억을 갖고 있다. 수많은 축구팬들은 그가 살려낸 한국축구의 가능성을 생생하게 직관했다. 불필요한 개입이 차단된 시스템을 갖췄을 땐 인정할 만한 경기력을 보여줬다는 것을 기억하고 있다.
암흑기 운운하며 시간만 보낼 게 아니라 어두운 터널을 빠져나올 때다. 협회는 자신들이 만든 틀을 깨고 바꿔나갈 준비를 해야 한다. 책임질 것은 책임지고 정당한 절차에 따라 적임자를 선발하면 된다. 더이상 정치를 닮아가는 축구를 보고 싶지 않다.이효설 체육팀장

이효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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