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취준 대신 병시중"…가장의 무게 짊어진 사회초년생들

  • 박영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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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입력 2024-12-30 20:58  |  수정 2024-12-31 07:30  |  발행일 2024-12-31
대구시 실태조사 결과, 지역 청년 311명 '영케어러'

가정 부양하느라 취업도 힘든 상황…지원 절실

전문가 "영케어러 조기 발견하고, 지원 강화해야"
취준 대신 병시중…가장의 무게 짊어진 사회초년생들
게티이미지뱅크.

대구 서구에 거주하는 김가영(여·33)씨는 스무살 때부터 가족의 병시중과 생계를 책임졌다. 뇌졸중으로 거동이 불편한 아버지, 난청으로 일을 그만 둔 어머니, 조현증을 앓는 오빠를 부양했다. 생계유지를 위해 취업 후에도 부업을 병행한 김씨의 건강은 난소낭종·턱관절 문제로 금세 악화됐다.

대구 수성구에 사는 박모씨도 사정은 매한가지. 박씨는 지난 10년간 매월 부모님의 기초생활수급비와 국민연금(130만원)으로 가족을 돌봤다. 박씨는 "아버지의 파킨슨병이 심해져 등급을 받아 주간보호센터나 제도권 도움을 고려했지만, 자부담이 부담스러워 포기했다"며 "집이 아버지 명의라 집세가 안 나갈 뿐이지 가족을 돌볼 사람이 없어 취업도 못 하는 상황에서 130만 원으로 모든 걸 하려니 너무 힘들다"고 털어놨다.

대구지역 가족돌봄청년(영케어러·장애·질병·정신건강 등을 가진 가족 구성원을 직접 돌보는 청년)들의 시름이 깊어지고 있다. 가정을 부양하느라 취업에 어려움을 겪는 것도 모자라, 이를 지원할 제도적 안전망도 전무해 대책 마련이 시급한 실정이다.

30일 대구시에 확인한 결과 지난 3~11월 대구지역 영케어러는 총 311명(13세 이상 39세 이하)이다. 통계청이 최근 발표한 '한국의 사회동향 2024' 보고서를 보면 2020년 기준 전국 영케어러는 15만여명으로 추산된다.

문제는 영케어러가 짊어진 삶의 무게가 결코 녹록치 않다는 점이다. 대부분 영케어러는 취업에 어려움을 겪고 있다. 25~34세 영케어러의 미취업자 비율은 29.3%다. 영케어러가 아닌 같은 나이대 청년보다 4.3% 포인트 높다. 가정을 부양하느라 취업준비에 전념할 수 없어서다.

영케어러 김소희(여·27)씨는 "대학 시절 주 2회 아버지의 내원 스케줄에 맞추느라 취업 활동이 힘들었다"며 "장학금을 놓치지 않아야 하는 상황에서 아르바이트와 아버지 돌봄을 병행했다"고 말했다.

정부나 지자체 차원의 영케어러 지원 정책은 사실상 전무하다.국회입법조사처가 발행한 '해외 영케어러 지원 제도와 시사점' 보고서를 보면 국내 영케어러는 힘든 가정 형편에 놓인 효자 또는 효녀로 인식될 뿐 사회적 지원 대상으론 조명받지 못하고 있다. 영케어러를 대하는 국가별 수준에서도 한국은 1~7단계 중 7단계(무반응 국가 그룹)로 분류됐다.

전문가들은 영케어러를 조기발견해 위기 극복을 위한 지원책을 마련하는 게 중요하다고 강조했다.


김희숙 월성종합사회복지관 사회복지사는 "시에서 예산을 지원할 때 가구 소득만을 기준으로 판단하지만, 자택이 있다고 해서 청년이 괜찮은 건 아니다"며 "청년이 가족 생활비와 병시중까지 책임지는 때도 있다. 이런 돌봄 사각지대를 찾아 지원해야 한다"고 했다. 이어 "기존 청년 지원 사업은 창업 위주였지만, 최근엔 가족 돌봄청년처럼 복지 사각지대 청년을 도우려는 노력이 늘고 있다"며 "다만 기관 간 정보 공유가 부족해 청년들이 지원대상이 아닐 거라며 낙담하는 경우가 많다. 쉽게 접근할 수 있도록 가족 돌봄 청년을 위한 컨트롤타워가 필요하다"고 덧붙였다.

허민숙 국회입법조사처 보건복지여성팀 입법조사관은 "미성년자부터 성인이 될 때까지 가족을 나홀로 책임지는 청년이 있다는 건 지원 제도가 부족하다는 증거"라며 "영케어러는 외부 도움 없이는 환경적 제약으로 본인도 기초생계수급자로 남을 위험이 크다. 조기개입해 이들이 자신의 삶을 살 수 있도록 지원해야 한다"고 했다.
박영민기자 ympark@yeongnam.com 조윤화 수습기자 truehwa@yeongnam.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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