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말&여행] 전북 남원 황산대첩지…'피바위'는 알고있다 600여년 전 그날의 승리를…

  • 류혜숙 여행칼럼니스트
  • |
  • 입력 2025-01-10  |  수정 2025-01-10 08:48  |  발행일 2025-01-10 제17면
고려말 왜구 침입 약탈·방화 극성

1380년 이성계 출전 황산전투 대승

참패한 왜군의 피 '람천' 바위 적셔

1577년 건립한 대첩비 日帝가 파괴

인근 비전마을은 동편제 시작된 곳

[주말&여행] 전북 남원 황산대첩지…피바위는 알고있다 600여년 전 그날의 승리를…
고려 말 국운을 건 왜구와의 전쟁에서 가장 큰 승리였던 황산대첩의 현장. 왜구의 피로 강이 물들어 7일간 물을 먹을 수 없었다고 하며 그때 왜구의 피로 적셔진 바위가 피바위다.

황산아래 협애한 골을 바라보며 람천을 건넌다. 천과 밭 사이에 돋워진 둑길, 아주 좁지는 않으나 근래에 내린 눈 때문인지 어딘가 위험하다는 본능이 인다. 밭들은 더러 묵정밭인데, 일제히 허리를 휜 채 말라가는 풀들이 앉은 채 죽은 병사들 같다. 곧게 나아가던 둑길이 직각으로 꺾이는 자리에 스스로 고립된 집 한 채와 몇 그루 나무들에 둘러싸인 전망대가 소란스럽지 않은 격식으로 자리한다. 전망대 아래 바위가 넓다. 저 바위가 '피바위'다.

◆ 인월 람천의 피바위

황산은 남원 운봉읍과 인월면의 경계에 있는 산이다. 그 남쪽에 람천의 골이 베인 듯 깊다. 전망대 옆 계단으로 내려가 바위에 오른다. 물새들이 저만치 달아난다. 널찍한 바위는 얕은 돌개구멍들로 울렁울렁하고 구혈마다 물이 고여 음지에선 얼음이고 양지에선 샘이다. 역사적으로 운봉은 지리산을 경계로 경남 함양으로 넘어가는 요충지였다. 삼한시대에는 변한의 영토였고 삼국시대에는 신라의 국경 요새로 여러 세력이 각축을 벌였다. 조선 후기 실학자 정약용은 '남도의 관방(關防)은 운봉이 으뜸이고 추풍령이 다음이다, 운봉을 잃으면 적이 호남을 차지할 것이다'라며 운봉의 전략적 중요성을 평가했다. 정감록은 환란이 닥쳤을 때 이를 피할 수 있는 십승지지의 한곳으로 운봉을 꼽지만, 천하의 명당이라는 운봉도 자주 피비린내 나는 전장이었다.

고려 말에는 왜군의 횡포가 극에 달했다. 약 169년 동안 520회 이상의 침입으로 전라, 경상, 충청도를 아울러 남녀노소를 불문, 백성들을 처참히 짓밟고 약탈과 방화를 일삼았다. 1376년 최영 장군이 홍산대첩(鴻山大捷)에서 왜구를 대파했지만 왜구의 기세는 수그러들지 않았다. 이듬해인 1377년은 특히 심각했는데 왜구는 32번이나 침입해 54개 지역을 유린했다. 우왕 6년인 1380년에는 아지발도(阿只拔都)가 이끄는 왜구가 남부 지방으로 쳐들어왔다. 아지발도는 18세 정도였으나 키가 7척이 넘었고 힘이 장사였으며 철갑으로 무장하여 화살을 맞아도 살을 뚫지 못했다고 한다. 음력 9월. 고려의 장수 이성계는 휘하 8명의 원수(元帥)와 더불어 군사를 이끌고 남원으로 향했다. 그가 지나는 길마다 시체가 널려 있었다. 그 참담한 모습을 본 이성계는 측은하고도 분한 마음에 제대로 자지도 먹지도 못했다고 한다. 이성계는 도착하자마자 말했다. "오늘은 쉬고 내일 곧바로 싸운다."

기록에 따르면, 고려군은 황산에서 시작된 싸움 끝에 이곳 하천까지 왜군을 몰아냈고 결국 왜군의 수장 아지발도를 사살하게 된다. 이성계는 아군의 분별이 힘든 그믐날 밤에 달이 뜨도록 기원했고, 마침 달빛이 떠오르자 아지발도를 화살로 쏘아 죽였다고 전한다. 달을 끌어 왔다는 뜻의 '인월'이란 명칭이 여기에서 유래한다. 지휘자를 잃은 왜구는 고려군의 맹렬한 공격에 쓰러졌다. 고려사는 '적군이 아군보다 10배는 많았으나, 겨우 70여 명만이 살아남아 지리산으로 도망하였다. 왜구의 피로 강이 물들어 7일간 물을 먹을 수 없었다'고 전한다. 그때 왜구의 피로 적셔진 바위가 '피바위'다. 물론 바위가 피로 물들 리는 없다. 사실 '피바위'는 일반 바위보다 철 성분을 약 9% 정도 더 많이 가지고 있어서 이렇게 붉게 보이는 것이라고 한다. 하지만, 정말 피가 흐른 자국 같다. 정약용은 이곳 황산대첩의 현장에 서서 실학자답게 원래 바위 색이 붉은 것 같다고 했다. 그리고 고려의 운명은 위화도 회군이 아니라 황산대첩에서 이미 결정되었다고 하였다.

[주말&여행] 전북 남원 황산대첩지…피바위는 알고있다 600여년 전 그날의 승리를…
헐벗은 가지들 사이로 동산을 병풍으로 두른 황산대첩비지가 보인다. 왼쪽이 사적비각, 가운데는 황산대첩비각, 삼문 옆에 살짝 보이는 지붕이 파비각이다.
[주말&여행] 전북 남원 황산대첩지…피바위는 알고있다 600여년 전 그날의 승리를…
파비각 뒤편의 쪽문을 통과해 오솔길을 따라 가면 비전마을이다. '비(碑)가 전해져 내려온 마을' 혹은 '비가 마을 입구에 있다' 해서 비전이다. 마을 뒤로 황산이 우뚝하다.

◆ 운봉 람천의 황산대첩비지

피바위에서 람천을 거슬러 조금 가면 황산 서쪽 아래에 비전마을이 있다. 마을 서편으로 황산에서 흘러온 것만 같은 나지막한 동산이 길게 펼쳐지는데 그 동산의 끝단에 어휘각(御諱閣)이 자리한다. 황산에서의 승리 후 이성계와 8명 원수의 이름을 새긴 바위다. 이름들은 보이지 않는다. 그 이름들은 일제강점기 때 지워졌다. 어휘각을 지나 평평한 숲길을 가로지른다. 참나무, 서어나무, 밤나무, 단풍나무, 은행나무 등 활엽수가 주종을 이루는 숲은 한겨울에도 멋있고 아름답다. 헐벗은 가지들 사이로 동산을 병풍으로 두른 일단의 영역이 보인다. 저곳이 황산대첩비지(荒山大捷碑址)다. 고려 말 국운을 건 왜구와의 전쟁에서 가장 크고 빛나는 승리였던 황산대첩을 기록하고 기념한 비석이 있는 곳이다.

[주말&여행] 전북 남원 황산대첩지…피바위는 알고있다 600여년 전 그날의 승리를…
1957년에 복원한 황산대첩비. 비신은 오석으로 바뀌었지만 귀부와 이수는 옛것이다. 파괴의 흔적이 남아 있지만 원형을 잘 지키고 있다. 웃는 듯한 용의 얼굴은 귀엽기까지 하다.

삼문을 지나면 세 개의 비각이 보인다. 가장 왼쪽의 것은 사적비각, 정면 가운데는 황산대첩비각, 오른쪽의 것은 파비각이다. 먼저 파비각으로 향한다. 조각난 돌덩이들이 홍살 안을 꽉 메우며 누워 있다. 황산대첩비는 의외로 좀 늦었다고 할 만한 1577년 전라도관찰사 박계현(朴啓賢)의 청으로 세워졌다. 선조 10년이다. 수백 년 동안 웅장히 서 있던 비는 광복이 눈앞이던 1945년 1월, 일제에 의해 무참히 파괴되어 돌덩이로 흩어졌다. 그들은 비석을 깨트리고 정으로 찍어 글자를 지우고 땅에 파묻어 버렸다. 그렇게 일제가 파괴한 황산대첩비를 찾아 모아서 비각에 모셔둔 것이 파비각이다. 파비각(破碑閣)은 부서진 비석을 모신 전각이란 뜻이다.

해방 후인 1957년에 복원한 것이 정면의 황산대첩비다. 비신은 오석으로 바뀌었지만 귀부와 이수는 옛것 그대로다. 귀부도 대첩비가 일제에 의해 파괴될 때 같이 파괴되었던 모양이다. 머리 쪽은 목이 떨어져 나간 것을 시멘트로 붙여 놓았고 거북등도 여기저기 갈라진 것을 역시 시멘트로 메우고 붙인 모습이다. 그러나 생각보다 원형을 잘 지키고 있다. 웃는 듯한 용의 얼굴은 귀엽기까지 하다. 사적비각은 고종 19년인 1882년 운봉현감 이두헌이 세웠는데 현재의 것은 1958년에 중건한 것이다. 이 비각 역시 일제강점기 때 파괴되었다.

파비각 뒤편의 쪽문을 통과해 작을 오솔길을 따라 가면 곧장 비전마을이다. '비(碑)가 전해져 내려온 마을' 혹은 '비가 마을 입구에 있다' 해서 비전이다. 마을 뒤로 황산이 우뚝하다. 비전마을은 전라도 남원, 구례, 순창 등 지리산을 중심으로 발달한 동편제가 처음 시작된 곳이라 동편제 마을로 불린다. 판소리의 중시조라 불리며 가왕(歌王)의 칭호를 받은 송흥록명창이 태어난 곳이고, 그의 제자인 국창 박초월이 젊은 날을 보내며 판소리꾼으로 성장했던 곳이다. 마을 중심부에 송흥록 생가와 박초월 고택이 복원되어 있다. 내내 소리가 흘러나온다. 흥부가다. 명창이 태어나 살던 초가지붕의 푸른 그늘 속에 아직 눈이 희다. 마을 정자에서 람천을 내려다본다. 람천은 이곳에서 피바위를 지나 인월과 산내를 흐르고 함양의 마천을 거쳐 마침내 낙동강으로 흐른다. 바람은 차가워 코끝이 찡한데 람천은 반짝반짝 참 곱다.

글·사진=류혜숙 여행칼럼니스트 archigoom@naver.com

여행 Tip

12번 대구광주고속도로 지리산IC로 나가 인월 방향으로 직진한다. 인월교차로에서 우회전해 황산로를 따라 약 1㎞가면 남원 달오름마을 표석과 흥부골자연휴양림, 황산대첩지, 피바위 안내판이 있다. 마을 안쪽으로 좌회전해 들어가 람천을 건너자마자 우회전해 둑길을 따라 간다. 길 끝에 피바위 전망대가 있고 전망대 옆에 바위로 내려가는 계단이 있다. 람천을 건너면 마을 정자가 있는데 주변에 주차 공간이 있다. 이곳에서 걸어가는 것이 좋을 것 같다. 달오름마을 초입에서 황산로를 따라 약 3㎞ 정도 가면 동편제마을, 황산대첩비지 안내판을 볼 수 있다. 마을 안으로 우회전해 들어가면 된다. 어휘각 앞에 주차 공간이 있다.

영남일보(www.yeongnam.com), 무단전재 및 수집, 재배포금지

위클리포유인기뉴스

영남일보TV

많이 본 뉴스

  • 최신
  • 주간
  • 월간

영남일보TV

더보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