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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구고법. 영남일보 DB |
지난해 3월 25일 오후 2시. 경북 청도에 한 섬유공장 내 주거지 안에서 남녀가 다퉜다. 이 공장을 운영 중인 A(63)씨가 '보험 금액' 확인을 이유로 20년 가까이 동거하며 사실혼 관계에 있던 40대 여성 B씨에게 휴대전화를 잠깐 보여달라고 했지만 거절당한 것. 이에 수상한 낌새를 느낀 A씨가 B씨 휴대전화를 빼앗아 메시지 대화 내역을 확인했다. 그 과정에서 B씨가 다른 남자와 외도를 한 정황이 나왔다. 몰래 7천만원의 대출까지 받은 사실도 확인했다.
격분한 A씨는 2시간 가량 B씨를 구타했다.
A씨는 다음날 새벽과 오전에 두차례 B씨를 차에 태워 상간남을 찾으러 나섰다가 실패하자, 또 B씨에게 무차별 폭행을 가했다.
A씨는 문득 두려움이 엄습했다. B씨가 집에 나가 신고할 수 있어서다. 당시 B씨는 전신에 멍 자국이 있었고, 설사 증상까지 보였다. A씨는 지인 C(52)씨를 불러 "B씨가 도망을 가려고 하니까 쇠창틀을 만들어라"고 요구했다. 이에 C씨는 이틀 뒤 쇠창틀 2개를 제작해 B씨가 있던 작은방 앞에 설치했다. 또 가로·세로 1m 크기에 500㎏에 달하는 박스를 지게차로 옮겨 방 출입문을 봉쇄했다.
방에 감금된 B씨는 치료를 제대로 받지 못해 병세가 악화됐고, 결국 지난해 4월 1일 사망했다. 부검 당시 B씨는 양쪽 12개 갈비뼈 중 왼쪽 10개와 오른쪽 11개의 갈비뼈가 부러졌다. 극심한 통증에 시달리다 생을 마감한 것이다.
A씨는 살인 등의 혐의로 기소됐다. 1심 재판부는 살인 혐의에 대해선 무죄로 판단하고, A씨에 대해 상해치사 혐의를 적용해 '징역 10년'을 선고했다. 재판부는 "범죄사실의 인정은 합리적인 의심이 없는 정도로 증명돼야 한다. 검사가 제출한 증거들만으론 이러한 확신을 가지게 하는 정도에 이르지 못한다"며 "피고인은 지인들을 통해 약국에서 치료용 약을 구매한 뒤 피해자에게 건네주고, 식사 등을 제공했다. 피해자를 살해할 고의를 갖고 피해자를 방치했다는 공소사실과는 상반된다고 볼 수 있다. 피해자 구호를 위해 일정 부분 노력한 것으로 볼 여지가 있다"고 판시했다.
검사는 살인죄 무죄 선고에 대해 사실오인을 주장하며 항소했고, A씨도 양형 부당을 이유로 항소를 제기했다. 항소심 재판부 판단은 달랐다. 대구고법 형사2부(부장판사 정승규)는 A씨에 대한 원심판결을 파기하고 징역 7년을 선고했다.
정 부장판사는 "심증 형성에 영향을 미칠 만한 객관적인 사유가 새롭게 드러나지 않았다. 원심 판단은 옳고, 원심이 사실을 오인한 잘못이 없다"며 "A씨는 원심에서 피해자 유족들을 위해 5천만원을 공탁했고, 유족들과 원만히 합의해 용서받았다. 피고인의 자녀들도 피고인의 선처를 탄원하고 있는 등 모든 양형 조건을 종합해 볼 때 원심이 피고인에게 선고한 형은 다소 무겁다"고 감형사유를 설명했다.이동현기자 leedh@yeongnam.com

이동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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