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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숨 작가가 다섯 명의 시각장애인과 인터뷰한 내용으로 쓴 연작소설집 '무지개 눈'을 펴냈다. <게티이미지뱅크> |
"'저것 좀 봐.' 소리가 들려오면 나도 모르게 보는 시늉을 해요. 나는 보았던 적이 있으니까요. 내가 보고 있다고 착각하기도 해요. 문 열리는 소리가 들리면 나는 고개를 들어 문 쪽을 바라봐요. 누군가 문을 열고 들어서는 걸 내가 보고 있다고 생각해요."
다섯 명의 시각장애인과 인터뷰한 내용이 바탕이 된 연작소설집 '무지개 눈'이 출간됐다. 실제 인물들의 삶과 내면을 소설로 기록하는 데 몰두해온 김숨 작가의 신작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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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숨 지음/민음사/236쪽/1만7천원 |
그런 김숨이 이번 작품에서 귀 기울인 이들은 시각장애인이다. 현대사회는 점점 더 영상과 이미지 중심으로 변화하고 있다. 사람과 사물을 직접 대면하기보다 터치스크린 속으로 들어가고 있다. 이런 환경 가운데 '무지개 눈'에 등장하는 시각장애인들은 때론 좌절하면서도 자기만의 방식으로 세상을 체득해 살아간다.
이에 대해 김정환 시인은 "불행의 발언권으로 난해한 불행이 위로받는다고 할 수는 없다. 불행은 그것으로 더 불행하고 더 생에 가깝고 더 난해하다. 하지만 어언 불행보다 더 끈질기게 이어지는 김숨 소설을 읽으며 우리는 좀 더 '근본적으로 인간적'이 될 수 있다"고 평론했다.
작품은 △오늘 밤 내 아이들은 새장을 찾아 떠날 거예요 △파도를 만지는 남자 △빨간 집에 사는 소녀 △검은색 양말을 신은 기타리스트 △무지개 눈으로 구성된다. 선천성 전맹인, 저시력에서 후천성 전맹이 된 시각장애인, 선천성 저시력, 전맹과 지체장애를 가진 중복장애인이 단편마다 주인공으로 등장한다. 이들은 단순한 관찰 대상이 아니다. 자신의 감정을 표현하고 기억을 '보여주는' 주체다.
"눈을 감고 있어도 눈동자가 아파요. 아무것도 안 보이는데 눈이 왜 아플까? 아무것도 찌르지 않는데."
소설은 화자의 기억과 감정에 따라 시, 희곡, 독백을 넘나든다. 이어 볼드체, 기울임체, 점자 등의 효과로 그 감각을 생생히 전달한다. 이토록 생생한 감각을 통해 시각 중심의 관점으론 보지 못했던 또 다른 세계를 보여준다.
작가의 말에서 김숨은 '당신께'란 제목으로 "당신은 눈먼 제가 보지 못하는 것들을 제게 보여주었습니다"라며 "이 책은 당신이 제게 내어 준 시간에 대한 답례입니다"라고 전하고 있다.
조현희기자 hyunhee@yeongnam.com

조현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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