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취재수첩] 영주시장 불법 선거, 시작과 끝

  • 손병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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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입력 2025-03-17  |  수정 2025-03-17 07:12  |  발행일 2025-03-17 제22면
[취재수첩] 영주시장 불법 선거, 시작과 끝
손병현기자〈사회3팀〉
6·1 지방선거 국민의힘 영주시장 후보 공천 결과 발표를 며칠 앞두고 한 통의 전화가 걸려왔다. 떨리는 목소리의 제보자는 박남서 예비후보 캠프에서 청년들을 모집해 문자투표 안내를 하고 있으며, 특정 후보를 찍도록 유도하고 있다는 충격적인 내용을 전했다. 이어 도착한 문자 메시지 캡처본에는 '일당 지급' '온라인 투표 대행'이라는 의미의 문구가 선명했다.

처음에는 믿기 어려웠다. 직접 캠프 주변을 탐문하며 실체를 확인하기로 했다. 우연히 마주친 한 청년에게 가벼운 대화를 건넸다. 캠프 관계자로 가장하고 접근, 그는 거리낌 없이 자신의 역할을 털어놓았다. "어르신들 문자투표 안내했다"라는 그의 말에 곧 확신이 들었다.

또 다른 정보원은 더욱 심각한 내용을 전했다. 캠프 측이 투표 후 돌려주겠다며 권리당원의 휴대전화를 수거했다는 것. 선거의 비밀성이 철저히 보장돼야 함에도, 캠프 차원의 개입이 있었다면 이는 단순한 불법 선거운동을 넘어 민주주의의 근간을 흔드는 중대한 범죄다. 이러한 증거들을 바탕으로 기사를 송고했다. 공천이 확정된 날, 기사는 지역사회를 강타했다. 여론이 들끓었고, 영주시 선거관리위원회는 즉각 조사에 착수했다. 열흘 후, 선관위는 박 후보 캠프 관계자를 검찰에 고발했다.

수사 결과는 충격적이었다. 단순한 문자투표 안내를 넘어, 금품과 음식을 제공하며 조직적으로 선거운동을 펼쳤다는 정황이 드러난 것. 심지어 지역 주민들에게 금품을 건네며 박 후보를 지지하도록 요청한 혐의까지. 결국, 박 후보와 선거캠프 관계자 등 10여 명이 법정에 서게 됐다.

2023년 9월21일, 대구지방법원 안동지원. 재판부는 박남서 시장에게 징역 1년 6개월, 집행유예 3년을 선고했다. 이어 진행된 2심과 대법원 역시 이를 유지하며 박 시장의 당선무효형을 확정했다. 하지만 재판 과정은 일반적인 선거 재판과 달리 이례적으로 길게 진행됐다. 박 시장 측은 재판 과정에서 변호사를 수차례 교체하며 막대한 비용을 투입, 상고심까지 최대한 지연시키는 전략을 펼쳤다. 결국, 대법원의 최종 판결이 보궐선거 시행 기한을 넘기면서 시정 공백 사태가 발생했고, 부시장 권한대행 체제로 전환되는 등 시 행정에 큰 혼란과 막대한 지장을 초래했다.

이번 사건은 단순한 지역 정치 스캔들이 아니다. 권력을 유지하기 위해 불법을 서슴지 않는 선거문화에 대한 경종이며, 지역 정치의 현주소를 적나라하게 드러냈다. 과연 이번 사건이 정치개혁의 전환점이 될 수 있을까. 이제 남은 것은 유권자의 선택이다. 향후 지역정치가 어떤 방향으로 흘러갈지, 시민들은 두 눈을 부릅뜨고 지켜보고 있다.
손병현기자〈사회3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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