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르포-암흑의 영양] “숯검댕이가 비처럼 쏟아져”… 이웃 구하던 이장부부는 참변](https://www.yeongnam.com/mnt/file_m/202503/news-p.v1.20250326.1c9e797e806e48048a454776ad78aca6_P1.png)
26일 경북 영양군 영양읍 영양군민회관에 인근 주민들이 대피해 있다.
“눈앞에서 불길이 옆으로 조금씩 이동하는 걸 보면서도 현실감이 없었어요. 재난 영화 속에 들어온 줄 알았어요."
경북 의성에서 시작된 산불이 경북 북동부 전역으로 확산되며 영양군도 25일 대피 명령이 내려졌다. 26일 오후 1시쯤 찾은 산불 대피소 영양군민회관에는 갑작스레 집을 떠나 피신하게 된 주민들로 가득했다.
이날 군민 회관에서 만난 김경숙(73) 씨는 허탈한 표정으로 당시 상황을 떠올렸다. 석보면에 거주 중인 김 씨는 전날 포항에서 급히 올라온 아들의 차를 타고 대피소로 이동했다. 그는 “숯검댕이가 비처럼 우수수 떨어지는 가운데 동네를 급히 떠났지만, 귀농 후 10년째 살아온 제2의 고향을 두고 발걸음을 떼기가 쉽지 않았다"고 했다. 이어 “전날부터 잠 한숨 못 잤다. 혈압이 156까지 치솟아 약을 처방받아 먹었다"고 울먹였다. 김 씨의 아들 장수혁(43) 씨도 어머니와 함께 긴 밤을 지새웠다. 포항에서 자영업을 하는 그는 어머니를 대피소에 모신 뒤 복귀하려 했지만, 도로 통제로 결국 함께 대피소에 머물렀다. 장씨는 “가시거리가 50m도 안 될 정도로 뿌옇는데, 경찰이 지시봉으로만 도로를 통제하니 어디로 가면 될지 몰라 운전 내내 공포감이 몰려왔다. 큰비 예보도 없고, 불길을 언제 잡을 수 있을지 걱정"이라고 말했다.
전날 저녁 자녀들과 함께 회관으로 몸을 피했다는 김수예(49)씨는 “본가가 산보면인데 아이들과 함께 집에 있던 중 갑자기 단수와 함께 정전이 돼, 급하게 몸을 피했다"며 “남편은 아직 혼자 남아 집을 지키고 있다. 어제 저녁 갑자기 통신이 두절되는 바람에 남편과 한동안 연락이 닿지 않아 걱정을 많이했다"고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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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6일 경북 영양군 영양읍 영양군민회관에 주민들이 대피 중인 가운데 자원봉사자들이 식사를 준비하고 있다.
처참한 일상 가운데에도 서로를 돕는 손길은 이어졌다. 영양군 농업기술센터 소속 자원봉사단체 생활지원회에서 활동하는 이승옥(59) 씨는 “집이 송하리에 있어 주변에 재가 날아다니고 불안하지만, 내가 할 수 있는 일을 하고 싶어 급식 봉사를 나왔다"고 말했다. 이어 “서울에 있는 아들이 왜 대피하지 않고 봉사를 하느냐며 걱정했지만, 영양은 내가 지켜야 할 곳이라는 생각에 나오게 됐다"라고 말한 뒤 눈물을 흘렸다.
대피소는 산불로 인한 연기까지는 막아내지 못했다. 뿌연 연기는 대피소 안까지 스며들었고, “대피소 안에도 연기가 너무 심하다"는 우려의 목소리가 곳곳에서 터져 나왔다. 이에 영양군측은 즉시 강풍기 2대를 긴급히 동원하기도 했다.
![[르포-암흑의 영양] “숯검댕이가 비처럼 쏟아져”… 이웃 구하던 이장부부는 참변](https://www.yeongnam.com/mnt/file_m/202503/news-p.v1.20250326.1c2d1fb0bb4f44b4b08a9e6335a6cd29_P1.png)
26일 오후 2시쯤 영양군 소속 산불관리원 오인주(여 54)씨가 불이 옮겨 붙고 있는 나무를 가리키고 있다.
좀처럼 잡히지 않는 불길 탓에 영양군 전역은 짙은 연기로 뒤덮였다. 이날 오후 4시쯤, 전날 불길이 휩쓸고 간 석보면으로 향하는 도로에서는 여전히 불이 번지는 모습이 포착됐다. 영양군 산불감시원 오인주(54) 씨는 대피소에서 차로 5분 거리에서 불이 붙은 나무를 지켜보고 있었다. 그는 “연기가 심하지만, 맡은 구역은 제대로 살피고 대피하려 한다"며 “곳곳에서 불씨가 옮겨붙으며 산발적으로 화재가 계속 발생하는 상황"이라고 설명했다.
![[르포-암흑의 영양] “숯검댕이가 비처럼 쏟아져”… 이웃 구하던 이장부부는 참변](https://www.yeongnam.com/mnt/file_m/202503/news-p.v1.20250326.f33e8ef9c33a4f36aef396d8e81e23ea_P1.jpg)
26일 오후 3시쯤 영양군 산보면 화매리의 한 주택. 강풍에 불씨가 옮겨 붙으며 전소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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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6일 오후 3시쯤 영양군 산보면 화매리의 한 주택. 강풍에 불씨가 옮겨 붙으며 전소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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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6일 오후 3시쯤 영양군 산보면 화매리의 한 주택. 강풍에 불씨가 옮겨 붙으며 전소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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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6일 오후 3시쯤 영양군 산보면 화매리의 한 주택. 강풍에 불씨가 옮겨 붙으며 전소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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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6일 오후 3시쯤 영양군 산보면 화매리의 한 주택. 강풍에 불씨가 옮겨 붙으며 전소됐다.
![[르포-암흑의 영양] “숯검댕이가 비처럼 쏟아져”… 이웃 구하던 이장부부는 참변](https://www.yeongnam.com/mnt/file_m/202503/news-p.v1.20250326.b08937a1013c4863a38b8b6cfb39a04c_P1.jpg)
26일 오후 3시쯤 영양군 산보면 화매리의 한 주택. 강풍에 불씨가 옮겨 붙으며 전소됐다.
석보면에 들어서자 불에 탄 민가들이 여기저기 드러났다. 쌓아놓은 비료 포대 틈새에서는 허연 연기가 피어오르고 있었다. 강풍을 타고 불씨가 어디로 튈지 모르는 상황을 반영하듯, 마을 전체가 긴장감에 휩싸여 있었다. 모든 것이 까맣게 탄 집들 사이에서는 주인이 미처 목줄을 풀어주지 못한 개 한 마리가 울부짖고 있었다. 인근 정류장에서 만난 한숙자(68) 씨는 “어젯밤부터 한숨도 못 잤다"며 “영양은 공기도 맑고 토양도 비옥해 농사짓기 좋은 곳인데, 산불이 농작물에까지 영향을 줄까 걱정"이라며 한숨을 내쉬었다.
이런 가운데, 주민을 구하려던 이장 부부가 숨진 채 발견된 안타까운 사연도 발생했다. 26일 영양군에 따르면 석보면 삼의리 이장 부부가 전날 오후 6시쯤 화매리에 사는 처남댁을 구하러 다녀오는 길에 숨진 채 발견됐다. 삼의리 이장은 처남의 가족들을 차에 태우고는 당시 산불 대피소로 지정된 석보초등학교와 정반대 방향인 삼의리로 향했다. 석보면사무소 관계자는 “이장이 마을에 남아있던 주민을 구하기 위해 마을로 돌아갔던 것으로 보인다"며 “통신이 끊기자 직접 마을을 돌아 주민들을 대피시키려 했던 것"이라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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