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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북 의성, 나의 고향이자 뿌리이다. 그중 안평면은 내가 태어나 자란 곳이다. 내 고향 마을은 마을 어귀 독립기념비와 교회가 말해 주듯 1919년 3·1 독립 만세 운동의 중심지 중 하나이기도 하다. 어린 시절 들어온 당시 상황은 내게'공동체를 위한 헌신'이 무엇인지를 공직 여정에서 늘 되새기게 했다.
그 고향의 산들이 불탔다. 유년 시절 단골 소풍지 장소였던 산자락과 사찰이 불길에 휩싸였다는 소식은 재난을 넘어 마음 깊은 곳을 무너뜨리는 통증이었다.
현장을 찾았을 때, 검은 산은 묵묵히 말이 없었다. 검게 그을린 나무들 사이로 스며든 봄바람조차 차가웠다. 침묵 속에서도 멀리서 산 자들의 움직임이 생명의 위로로 다가왔다. 봄바람이 불꽃을 등에 태워 산들을 넘으며 번개같이 동해안까지 갔다니, 거친 강풍으로 변함이 야속하다. 시뻘건 불길에 우리의 뿌리 고향 사람들은 아연실색했을 것이다. 생존의 기로를 넘긴 야생동물들도 먹고 놀고 자는 근거지를 잃어버려 이 봄은 엄한 시련기가 될 것이다. 모두에게 미안한 마음이다.
다행히도 흙 속에 숨은 뿌리는 봄 햇살에 생명의 신호로 화답해 줄 것 같다. 성금을 전하고 돌아오는 길에 나는 검은 산야가 품고 있을 생명력에 위안을 느껴 본다.
올봄 내내 도시인들은 분열과 혼란의 길을 걸었지만, 그을린 산야는 그 와중에도 희망의 씨앗을 간직해 줌이 고맙다. 이번 산불은 우리에게 여러 교훈을 던지고 있다. 기후 위기를 겪는 자연은 날로 거칠어져 가고 있다. 소나무 등 침엽수 위주의 산림은 높은 발화성과 확산 속도, 병해충 피해 그리고 지구온난화까지 겹쳐 산림정책의 대전환을 요구하고 있다.
산림은 단지 경관만이 아니라 도시의 방패이고, 공동체의 숨결이며, 특히 기후 위기 시대에 위안처이자 품겨질 생명의 샘터이다. 우리 인생 여정의 마지막 종착지이기도 하다. 빠른 복구 못지않게 숲의 회복력에 대한 깊은 통찰이 필요할 것 같다. 이제는 활엽수를 중심으로 한 생태적 균형, 재난 대응형 수종 구성, 그리고 지역 맞춤형의 조림 전략이 요구된다.
달서구는 이런 변화에 선제적으로 대응해 왔다. 2016년부터 관목류 포함 580만여 그루를 심어 왔다. 53만 구민이 매년 1인당 1그루 이상 나무를 심은 수치다.
특히 탄소중립 가치를 담는'우리 마을 동산 가꾸기'사업은 주민과 봉사자들이 함께하는 공동체 생명 운동이다. 도원지, 한실 공원, 앞산 자락길, 와룡산 편백숲 자락길, 대곡지 산림휴양공원, 장기동 등에 쉼과 치유, 탄소중립이라는 다중 기능을 실현하고 있다. 편백 5만3천 그루가 뿜어낼 피톤치드는 물론 그린카펫 사업을 통해 담장·옹벽, 나대지를 녹색 생태공간으로 꾸준히 전환시키고 있다.
나무를 심는 일은 공동체를 지키는 일이자 생명을 살리는 일이다. 이번 산불은 내게 행정의 미션을 일깨워주며 지역 상생의 가치를 다시 실감케 한다. 산림정책은 수목 관리를 넘어 지속 가능한 철학으로 승화되어야 할 시대 가치이다.
기후 위기 시대, 여러 형태로 다가올 재난들은 우리가 공동운명체로 대처해야 할 숙제이다. 잿더미 위에서도 새순이 준비되듯 우리의 삶터에도 상생과 생명의 가치를 담는 지혜가 늘 탐색 되어야 할 것이다.
나는 4월 봄 주말 오늘 주민들과 함께 앞산 자락길에 편백 묘목을 심고 있다. 고향의 검은 산들이 언젠가 새로운 숲으로 손짓해 줄 것을 확신하며.
이태훈(대구 달서구청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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