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고] 자나깨나 '심조불산'

  • 김희석(군위부군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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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입력 2025-04-15  |  수정 2025-04-15 07:11  |  발행일 2025-04-15 제21면
[기고] 자나깨나 심조불산
우리나라 봄의 산야는 숫제 휘발유가 널브러져 있는 기름밭이나 진배없다. 스치기만 해도 화르륵, 그냥 순식간이다. 담배꽁초 같은 작은 불씨 하나에도, 작은 스파크 하나에도 바로 불이 붙어 버린다. 그리고 걷잡을 수 없이 번져 나간다. 내가 몸담고 있는 군위군에서도 지난 3월27일과 4월2일 두 건이나 되는 산불이 발생했다. 입산자가 무심코 버린 담배꽁초와 주택 신축 공사장의 용접 스파크가 바로 산불로 번져 나간 것이다. 다행히 발화 당시 바람이 세지 않아 초기진화가 가능했지만, 아찔한 순간이었다. 여하튼 우리나라 봄의 산과 들은 그냥 휘발유밭이다.

그보다 앞서, 결국 안타깝고도 무시무시한 초대형 사건이 발생하고 말았다. 3월22일 경북 의성의 한 야산에서 발생한 산불이 경북 북부 지역을 초토화시켰다. 사망자만 27명에 이르고 재산 피해는 가늠조차 되지 않고 있다. 피해 면적은 4만5천㏊(여의도 면적의 170여 배)에 이른다. 잔불까지 진화하는 데 10여 일이나 걸렸다. 성묘객 한 사람의 개념 없는 부주의로 인해 초유의 재앙이 발생했다. 기름밭에 놓은 작은 불씨 하나가 초속 20m의 강풍을 타고 대재앙으로 비화(飛火)돼 갔다.

나는 요즘 하루에도 몇 번씩, 소스라치게 놀랄 때가 있다. "이제 한 시름 놓고 계시죠"라는 말 때문이다. 나는 군위군의 산불 책임자로서 불이 한창일 때부터 지금까지 3주 넘게 집에 들어가지 못하고 있다. 그러다가 경북지역의 산불이 진정세를 보이자 주변 지인들이 위로차 건네는 말이 이제 한시름 놓고 있으라는 것이었다. 알고 보면 산불은 끝난 게 아니다. 아직 온 산야가 휘발유밭인 채로 있기 때문이다. 작은 불씨 하나가 언제 또다시 재앙으로 비화할지 모른다. 이제 한 시름 놓고 있으라는 위로의 말은 도리어 나를 불안 속으로 몰아넣고도 남음이 있다. 그 말은 사람들의 해이해진 긴장감을 드러내는 또 다른 표현이기 때문이다.

'심조불산'이라는 말이 있다. 어느 절 입구에 걸려 있던 커다란 플래카드에 쓰인 경구다. 무슨 뜻인지 묻는 신도의 물음에 주지스님의 대답이 일품이다. 산불조심이라는 뜻이란다. 절의 현판 글씨를 오른쪽에서 왼쪽으로 쓰듯 산불조심을 오른쪽부터 써나간 것이라면서….

산불은 무조건 조심하고 예방해야 한다. 휘발유밭에 바람까지 불 때는 작은 불씨 하나도 인력으로 감당할 수 없다. 오로지 조심에 조심을 하는 것 외에는 방법이 없다는 말이다. 이 글을 읽는 독자와 시민 여러분들께 감히 당부드린다. 봄철에는 무조건 산불조심과 예방이다. 주변의 지인들에게도 꼭 전파해 주시기를 당부드린다. 생명이 살아 숨 쉬는 우리의 산야를 온전히 유지하고 우리들의 생명과 재산을 보호하기 위해, 이제 우리 모두 자나 깨나 심조불산이다!

"이번 산불에 희생되신 모든 분들께 삼가 조의를 표합니다. 그리고 수많은 이재민 여러분들께도 위로와 격려의 말씀을 드립니다."

김희석(군위부군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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