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고] 문화유산 보존, 이제는 '보는 것'을 넘어 '지키는 것'으로

  • 이재성 대구시 문화체육관광 국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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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입력 2025-04-24  |  수정 2025-04-24 07:24  |  발행일 2025-04-24 제20면
[기고] 문화유산 보존, 이제는 보는 것을 넘어 지키는 것으로
이재성 (대구시 문화체육관광 국장)
우리가 박물관이나 미술관에서 마주하는 문화유산은 오랜 세월의 흔적을 느낄 수 없을 정도로 정제된 모습으로 우리 앞에 놓여 있습니다. 그러나 이는 마치 오랜 풍파를 견딘 나무가 가지런히 정리된 정원에 심어진 듯한 모습이라 할 수 있습니다. 세월의 풍상 속에서 훼손되고, 때로는 잊혔던 유물들이 대중들에게 선보이기까지 보이지 않는 수많은 이들의 노력과 헌신이 있습니다. 바로 '수리·복원'이라는 전문적이고도 섬세한 과정입니다.

대구시는 최근 아동문학가 윤복진 유족이 기증한 근대 유물 14점을 대구간송미술관과 협업하여 약 6개월 간의 수리·복원 작업을 진행했습니다. 이 유물들은 일제강점기 활동한 여러 예술인들의 기록 자료로, 오랜 세월 유족의 자택 등에서 보관돼 오다 보니 훼손이 적지 않았습니다.

대구간송미술관 수리·복원팀은 해당 유물에 대해 과학적 분석을 실시한 뒤, 맞춤형 복원 계획을 수립하였습니다. 건식 및 습식 세척을 통해 오염을 제거하고, 구겨지고 찢긴 자료는 지질이 유사한 종이를 자체 제작해 보완했습니다. 더불어 유물 보존을 위한 전용 상자까지 제작함으로써, 유물이 보다 안전하게 후대에 전해질 수 있도록 마무리했습니다.

특히 이번 사업에서는 '보이는 수리복원실'을 운영하며 시민들에게 복원 과정을 투명하게 공개하고, 수리·복원이라는 전문 영역에 대한 이해와 관심을 높였습니다. 많은 관람객들이 이 과정을 지켜보며 유물에 깃든 이야기와 수리·복원의 정성에 깊은 감동을 받았다는 후기가 이어졌습니다. 이번 사업은 단순한 유물 복원에 그치지 않습니다. 2024년 9월 개관한 대구간송미술관은 간송미술문화재단의 축적된 전문성과 노하우를 지역사회와 나누기 위해, 영남권 지류문화유산 수리·복원 허브로의 운영을 천명한 바 있습니다. 대구시 또한 이에 발맞춰 지역 공공기관 및 개인이 소장한 소중한 유물들이 체계적으로 복원되고 보존될 수 있도록 다양한 협력 사업을 추진할 계획입니다.

영남지역은 유교문화를 비롯한 다양한 지식과 정신유산의 보고(寶庫)입니다. 서원, 향교, 종교시설 및 문중 기록물 등 많은 종이 기반 유물들이 여전히 지역 곳곳에 존재하고 있습니다. 앞으로 대구간송미술관이 이러한 유산들을 보다 안정적이고 전문적으로 보존·복원할 수 있는 든든한 거점이 되어줄 것으로 기대합니다.

간송 전형필 선생은 일제강점기 민족 문화유산을 지켜내기 위해 사재를 아끼지 않았던 인물입니다. 그의 '문화보국' 정신은 대구에서도 여전히 유효하며, 이제는 시민 모두가 함께 실천해 나가야 할 시대정신입니다. 이제는 우리 모두가 함께 문화유산을 지키는 시대입니다. 문화유산을 단순히 감상의 대상으로 바라보는 것을 넘어, 지키고 전승해야 할 공동의 자산으로 인식하는 문화적 전환이 필요합니다.

대구시는 앞으로도 문화유산 보존을 위한 정책적 노력을 아끼지 않겠습니다. 대구간송미술관이 지역의 과거를 보존하고, 현재를 교육하며, 미래를 여는 열린 문화공간으로 자리매김하길 기대합니다. 시민 여러분의 지속적인 관심과 참여를 부탁드립니다.이재성 (대구시 문화체육관광 국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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