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책 속의 길] 장애의 역사

  • 김성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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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입력 2025-05-09 08:15  |  발행일 2025-05-09
[책 속의 길] 장애의 역사

김성희 <새마을문고중앙회대구서구지부 회장>

책을 통해 사람을 만난다. 문고 활동을 하다 보면 책에서 시작된 인연이 삶의 이야기로 이어진다. 누군가의 하루에 스며들고, 말 한마디 건네는 순간에도 마음을 배우게 된다. 그날도 그랬다.

출근 전, 가게에 쓸 잔돈을 마련하려고 은행에 들렀다. 출입문, 경사로에서 휠체어를 힘겹게 밀고 오르던 어르신을 마주했다. 청원경찰이 자리를 비운 틈, 그분의 휠체어를 밀어드렸다. “고맙습니다." 짧은 인사보다 오래 남은 건 그분의 눈빛이었다. 내가 가볍게 넘던 경사가, 누군가에겐 하루를 가로막는 벽이었다는 사실에 마음이 무거웠다.

미국의 역사학자 킴 닐슨은 '장애의 역사'에서 장애를 단순한 신체의 문제가 아닌, 사회와 시대가 구성한 개념이라 설명한다. 농경사회에서는 신체의 차이가 장애로 여겨지지 않았지만, 산업화 이후 '정상'이라는 기준이 생기며 '차이는 곧 차별'이 되었다. 이 기준은 지금도 편견과 배제를 낳고 있으며, 제도는 달라졌어도 인식의 벽은 여전히 높다.

그렇다고 모두가 그 벽 앞에 멈춘 건 아니다. 루게릭병을 안고 우주의 이론을 펼친 스티븐 호킹, 청각장애를 넘어선 헬렌 켈러. 이들은 장애를 '한계'가 아닌 '가능성'으로 바꾸어냈다.

그러나 우리의 일상에는 여전히 낮고도 높은 벽이 남아 있다. 턱 높은 인도나 무거운 출입문만이 장벽은 아니다. 일터와 학교, 관계 안에서 우리가 무심코 만든 말의 속도와 배려 없는 기준, 다름을 받아들이지 않는 분위기 또한 누군가에겐 가파른 경사가 된다. 그런 경사 앞에 먼저 손을 내미는 사람들이 모일 때, 공동체는 비로소 연대가 된다.

은행 앞에서 마주한 짧은 순간이 삶의 방향을 되묻게 했다. 지금 나는, 내 곁의 무게를 누구와 함께 나누고 있을까. 내가 무심히 지나친 또 다른 경사 앞에서, 여전히 홀로 버티는 이는 없을까.

이런 경사를 낮추기 위해선 공동체의 역할이 중요하다. 책을 통해 사람과 사람을 잇고, 이해와 배려의 가치를 나누는 새마을문고의 활동은 그 출발점에 있다. 작지만 지속적인 우리의 독서운동이 사회의 기울기를 낮추는 디딤돌이 되기를 바란다.

장애는 누구의 삶에도 닿아 있는 이야기다. 지금도 경사 위에 홀로 선 이가 있다. 우리가 먼저 손을 내밀 때, 그 길은 조금씩 평탄해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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