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제와 세상] 대구 30년 정체의 원인은?

  • 권업 객원논설위원
  • |
  • 입력 2025-07-04  |  발행일 2025-07-04 제26면
권업 객원논설위원

권업 객원논설위원

이재명 대통령이 당선되면서 대구시 현안 대형 사업들이 전체적으로 재검토되는 분위기가 감지되고 있다. 신공항건설 사업은 재정 투입방식에서 이견을 보이고 있고, 홍준표 전 시장이 추진해온 ABB사업도 이재명 정부가 발표한 인공지능(AI)와 정보통신기술(ICT)을 주축으로 한 'AI 3대 강국' 구상에서 어떤 포지션을 가질 지 아직 분명하지 않다. 결국 홍 전 시장이 말했던 정부가 주는 빵 부스러기를 줍는 상황이 재연될까 우려스럽다. 되풀이 되는 정권 교체시기인 현 시점에서 한 가지 근본적인 의문이 머리를 복잡하게 만든다. 한 때 3대 도시 중 하나로 국가 발전을 선도한 대구가 30년 이상 정체된 근본적인 원인은 어디에 있는 것일까? 정치 혹은 정책의 실패인가? 아니면 정책으로 치유될 수 없는 대구만이 가지고 있는 내생적 한계인가?


1860년대에 전 세계 공업생산의 40% 이상을 차지했던 영국의 비중은 1914년에 이르면 14%로 낮아졌으며, 현재 3% 미만에 머무르고 있다. 세계경제 중심국가 간 경쟁에서 패배라는 외적 요인은 영국경제의 쇠퇴를 평면적으로는 보여주지만, 영국의 패배를 초래한 근본적 원인에 대해서는 설명하지 못한다. 영국경제의 쇠퇴를 초래한 내부적 요인들에 관해 연구해온 경제사가들은 19세기 후반 영국의 기업가들은 산업혁명 이후 가속화하는 기술혁신 추세에 적절하게 대응하지 못했다는 점을 주로 지적하고 있으며, 가족중심의 기업경영과 그 당시의 전통산업인 면방직업과 모직업에 대한 과도한 집착, 노동자계급의 호전성, 낡은 사회계층구조, 비생산적인 관료제도 등도 쇠퇴의 내부적 요인으로 적시하고 있다. 1981년 마틴 위너의 '영국문화와 산업정신의 쇠퇴'가 출간되면서 소위 위너 테제로 알려진 문화적 비판론에 의하면, 산업국가의 쇠퇴는 경제적 요인만으로 설명하기에는 부족하며 당시의 사회문화적 상황을 이해하지 않고는 정확한 분석이 어렵다는 점을 강조한다. 19세기 영국은 돈을 번 기업가가 전통 귀족계급 언저리에 있는 젠트리(신사계급)에 쉽게 편입할 수 있는 길이 열려 있어 기업가정신이 뿌리를 내릴 여지가 부족했다는 점을 특히 지적한다. 자수성가한 기업가의 2세들은 이튼, 윈체스터 등 명문사립학교나 옥스-브리지를 거쳐 계급상승과 함께 젠트리 문화에 동화되어, 상시적 혁신과 이윤추구가 필수인 기업경영에 적합하지 않는 기질과 태도를 갖게 되었다는 것이다. 이들의 사회 계층적 도약은 그들의 선대를 부유하게 만들고 영국에 '팍스 브리태니카'를 안겨주었던 생산적 가치체계들을 상실했음을 뜻하는 것이다. 결론적으로, 위너는 고등교육을 받은 이들 중간계층의 귀족적 가치, 즉 비기업적 정서는 빅토리아 중기 이래로 영국경제의 쇠퇴에 깊이 영향을 주었다고 주장한다.


물론 위너 테제를 무비판적으로 수용할 필요는 없지만, 우리가 주목할 것은 위너가 제시하고 있는 분석의 틀이다. 국가 주력산업 교체과정에서 수도권에 밀렸다거나 정치적 불이익이라는 외생적 관점만으로는 대구의 장기 침체현상을 설명할 수 없다. 이 문제의 뿌리를 이해하기 위해서는 위너 테제적 관점에서 한 가지 기본적인 의문이 먼저 풀려야 한다. 대구가 가진 전통적인 교육과 안정 지향적 보수성과 일급인재들의 관료지향성, 위험회피 성향을 그대로 보여주는, 전국 2.8%에 불과한 벤처투자 건수 등을 설명할 수 있어야 한다. 미국의 전통적인 교육도시 보스턴, 팔로알토, 더럼은 캠퍼스타운인 동시에 세계적인 기술혁신과 벤처들의 요람이다.



영남일보(www.yeongnam.com), 무단전재 및 수집, 재배포금지

오피니언인기뉴스

영남일보TV



많이 본 뉴스

  • 최신
  • 주간
  • 월간

영남일보TV

더보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