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지형의 스포츠와 인문학] '세계 최초 타이틀'의 나라 영국

  • 박지형 문화평론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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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입력 2023-10-13 07:45  |  수정 2023-12-12 10:51  |  발행일 2023-10-13 제13면
최초 아시아인 주장이 프리미어리그의 우승컵 들고 포효하는 모습 그리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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올 시즌 잉글랜드 프리미어리그(EPL) 토트넘 홋스퍼의 주장 완장을 찬 손흥민은 소속팀 선봉에 서서 무패 행진을 이끌고 있다. 손흥민은 토트넘 역사상 최초의 비유럽인 주장이다. 연합뉴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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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지형 문화평론가

영국은 '세계 최초'라는 타이틀로 따지자면 둘째가라면 서러울 나라다. 1759년에 세계 최초의 국립공공박물관인 대영박물관이 개장을 했고, 1825년에는 산업혁명의 산물인 철도가 세계 최초로 개통됐다. 1840년에는 세계 최초의 현대식 우표가, 1863년에는 세계 최초의 지하철이, 그리고 1868년에는 세계 최초의 신호등이 선을 보였다.

세계 최초의 만국박람회도 영국에서 열렸다. 조지프 팩스턴 경은 1851년 런던 시내에 철골과 유리만을 이용해 거대한 전시회장을 만드는데 그것이 그 유명한 '크리스털 팰리스'다. 축구팬이라면 당연히 떠오르겠지만, 이 크리스털 팰리스를 조립했던 노동자들이 1861년 창단했던 축구팀이 바로 그 '크리스털 팰리스 FC'다. (1987년 해산 후 1905년 재창단) 이 팀은 그래서 지금도 '글레이저스(유리공)'라는 애칭으로 불린다.

크리스털 팰리스의 팬들은 자신들이 세계 최초의 축구 클럽이라고 주장하는 모양이지만, 여전히 공식적으로 세계 최초의 축구팀으로 인정받는 팀은 이들보다 4년 전인 1857년에 창단된 '셰필드 FC'다.(현재 PL의 셰필드 유나이티드와는 다른 팀) 이어 1863년에는 세계 최초의 축협 'FA'가 축구 규칙의 정립과 동시에 설립되었고 1872년에는 글래스고에서 세계 최초의 A매치(잉글랜드 vs 스코틀랜드)가 열렸다. 1888년에는 12개 팀이 참가하는 '풋볼 리그'도 발족했는데 이것이 오늘날 세계 프로축구의 기원이 되었다.

듣고 보면 다 아는 이야기겠지만, 한국인과 관련된 최초의 사건들도 많다. 1966년 영국의 미들즈브러에서는 세계 최초로 아시아 팀이 유럽 팀을 꺾고 월드컵 8강에 진출하는 파란이 연출되는데 그 주인공은 바로 북한과 박두익이었다. 2008년에는 최초로 아시아인이 UEFA 챔피언스리그에서 우승팀의 일원이 되는 일이 발생한다. 당시 맨체스터 유나이티드에서 뛰었던 박지성 선수가 그 주인공이었다. 박지성 선수는 그 뒤에도 최초의 기록을 하나 더 세운다. 축구라는 스포츠가 영국에 생긴 이후로 단 한 번도 아시아인에게 허락되지 않은 1부 리그 팀 주장 자리를 그가 꿰찬 것이었다. 그것은 2012년, 그가 맨유를 떠나 '퀸스 파크 레인저스 FC'에서 뛸 때 벌어진 일. 그러나 무엇보다도 영국에서 일어났던 한국인 관련 가장 큰 최초의 사건을 꼽자면 그것은 아시아인인 손흥민이 2022년 프리미어리그의 득점왕이 된 기록일 것이다. 이렇듯 한국인들은 축구의 종주국에서 아시아인들의 머리를 짓누르고 있던 유리 천장을 하나하나 박살 내어 왔다. 중국인이나 일본인이 했다고 하더라도 존경을 보냈을 이 위대한 업적들을 오롯이 한국인들이 해내 왔던 것이다.

얼마 전에도 영국에서는 소소한 최초의 사건 하나가 발생했다. 바로 사상 최초로 변방 호주 출신의 감독이 프리미어리그의 감독으로 취임했던 일이다. 이 입지전적인 감독이 호주인이기 이전에 그리스인 이민자였다는 사실을 알면 조금 더 놀라운데, 그가 바로 현 토트넘 홋스퍼의 감독 '엔지 포스테코글루'이다. 그리고 그는 사실상 자신의 직권으로 토트넘 역사상 최초의 비유럽인 주장을 임명하는데, 그것이 손흥민이라는 사실을 이미 우리 모두는 알고 있다. 그리고 토트넘은 라이벌 아스널과 비기고 리버풀을 격파하는 등 미친 성적으로 시즌을 시작하고 있고, 항상 희생적으로 솔선수범하는 손흥민의 '서번트 리더십'은 현재 북 런던을 찬사의 도가니로 바꾸어 놓고 있다.

토트넘은 1961년 이후 리그 우승의 기록이 없다. 그러나 여기까지 왔다면 왜 상상 못 할쏘냐? 토머스 뉴커먼과 제인 오스틴, 비틀스와 리시 수낵이 수많은 '세계 최초'의 타이틀을 따낸 그 땅에서, 최초로 아시아인 주장이 프리미어리그의 우승컵을 흔들며 포효하는 모습쯤. 문화평론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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