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문학과 사회 > 남정현의 '분지'

  • 입력 1997-05-23 00:00  |  발행일 1997-05-23

작가 남정현은 1933년 충남 서산군 서산읍 동문리에서 출생했다. 학력
별무. 1958년 단편 '경고구역'이 "자유문학"에 초회 추천되고 1959년 역시
단편 '굴뚝 밑의 유산'이 추천완료되어 문단에 등단했다.

1961년 중편 '너는 뭐냐' 로 제6회 동인문학상을 수상했다. 1965년 단편
'분지'를 "현대문학" 3월호에 발표, 이 작품으로 인해 반공법 위반 구속
기소되어 징역 7년을 구형받아 문단뿐만아니라 사회 전반에 큰 반향을 일
으켰다. 같은 해 제1창작집 "너는 뭐냐" 를 간행했으며 1967년 분지 사건
으로 인해 기소된 사건이 선고유예 판결을 받았다.

'분지'가 발표될 당시의 사회적 배경을 살펴보면 1965년은 박정희 정권
의 등장 이후 가장 세찬 바람이 불어닥친 해였다. 한일협정을 둘러싼 대일
굴욕외교 반대투쟁, 월남파병, 군 내부의 반정부 쿠데타 음모, 박대통령의
방미, 여러 대학과 고등학교의 조기 방학, 위수령발동, 서울대의 민비연사
건, 공화당내의 항명파동 등.. 실로 정권차원을 넘어서 국가의 운명이 걸
려 있는 큰 사건들이 연속적으로 일어났다.

특히 이 해 2월 17일 해방 이후 처음으로 일본의 시나이 외상이 일장기
를 휘날리며 서울로 들어와 한일 기본조약을 가조인 하자 전국민적인 반대
운동은 극에 달하여 정국을 소용돌이 속으로 몰아 넣었다.

각 정당 사회단체는 물론 지식인 학생 시민들이 궐기대회 데모 성명 농
성등 온갖 방법으로 한일협정체결을 반대했다. 이러한 일련의 과정에서 상
당수의 학자 문인 등 지싣인들이 반정부적인 저항에 참여하였다.

이러한 상황속에서 남정현의 '분지'가 발표되고 이 작품이 그 해 5월8일
자 북한의 '통일전선'이라는 기관지에 전재되었고 그것이 발단이되어 형사
문제로 까지 번지게 되었다. 남정현은 처음에 불구속으로 조사를 받아왔는
데 마침 그무렵 한일협정 반대운동이 고조되어 마침내 재경문인 82명의 이
름으로 격렬한 선언문이 발표되었다.

이 성명은 한일협정의 부당성을 공격한 다음 "금번의 한일조약은 우리
국민전체의 민족적 자존과 현실적 이해와 미래의 전망에 경제 정치 문화적
으로 한결같이 굴욕과 재침해와 실질적인 예속을 결과하고 있다. 그러므로
우리는 민족의 정기와 민족의 양심으로 이 언어도단의 한일조약의 즉각 파
기를 엄숙히 요구하고 국회는 전체 국민과 더불어 이의 비준을 완전히 거
부할 것을 강력히 요구하는 바이다"고 주장했다.

바로 그러한 시점에서 중앙정보부는 남정현을 반공법 제4조 제1항 위반
으로 구속하였는데 그 조항의 구체적 내용은 '반국가단체나 그 구성원 또
는 국외의 공산계열의 활동을 찬양 고무 또는 동조하거나 기타의 방법으로
반국가 단체를 이롭게 하는 행위를 한 자는 7년 이하의 징역 및 자격정지
에 처한다'고 되어 있다.

'분지'의 줄거리는 다음과 같다.

활빈당의 수령으로 부패한 조정의 무리들을 혼비백산케 하고 비천한 대
중들을 구제한 홍길동의 10대손 홍만수는 어머니와 여동생 분이와 함께
8.15 해방을 맞는다.

그러나 독립투사인 아버지는 돌아오지 않았고 어머니는 진주하는 미군들
의 환영대회에 나갔다가 미군에게 강간당하여 충격을 받은 끝에 미쳐서 죽
는다. 외가에 가서 자라던 만수는 6.25를 맞아 군복무를 마치고 제대했으
나 여전히 생활은 암담하였다.

거리를 방황 중에 우연히 만난 누이동생 분이가 미군상사 스피드와 동거
생활 하고 있음을 알고 만수는 통곡을 했지만 오히려 스피드 상사에 의탁
하여 미군물품 장사를 하면서 살아간다.

그런데 스피드 상사는 밤마다 분이를 미국에 있는 본처와 비교하면서 폭
언과 학대를 일삼았다. 그 후 스피드 상사의 아내가 한국에 찾아왔을 때
만수는 비취라는 애칭을 가진 그녀를 향미산으로 유인하여 당신의 몸이 얼
마나 아름답기에 내 누이가 당신 남편 한테 그토록 학대 받는냐면서 몸을
좀 보여달라고 하다가 거절 당하자 강제로 그녀를 눕히고 겁탈을 감행한다.

이 사실을 알게된 펜타곤 당국은 정예사단과 미사일을 동원하여 만수가
숨어있는 향미산을 포위한다. 그리고 만수를 학살하겠다는 경고에 주변의
주민들은 공포에 떤다. 만수는 자기 지역구 국회의원을 찾아가서 구원을
요청했으나 거절당하고 만다. 그는 눈앞이 캄캄했다.

드디어 만수는 어머니를 향하여 자신의 처지를 호소하면서 이 세상이 잘
못 되어감을 개탄한다. 그리고 저승에 계신 어느 유공자에게 부탁하여 미
래를 창조하는 역사의 대열에 자기를 참여케 해 달라고 애원한다. 그러는
가운데 향미산 폭파 시간은 7분 전으로 다가왔다. 그러나 홍길동의 정신과
비방을 이어받은 만수는 조금도 겁내지 않는다.

이제 10초 밖에 남지 않았다. 만수는 한폭의 깃발을 만들어 자기가 차
지했던 그 미국여자의 배꼽 위에다 그 깃발을 꽂아 그들의 심령을 뿌리째
흔들어 놓겠다고 어머니에게 다짐한다.

이 작품은 당시 한일협정 등의 외교 교섭 배후에는 미국이 있다는 인식
하에 이루어진 것이라고 할 수 있다. 따라서 이 작품은 반외세 의식이 당
시 발표된 어떤 작품보다 뚜렷하다. 실제로 문제를 삼은 검찰의 공소장을
보면 이 소설의 내용을 다음과 같이 규정하고 있다.

"대한민국이 마치 미국의 식민통치에 예속되어 주한 미군들은 갖은 야만
적인 학살과 난행 등을 자행하고 우리 국민의 생명 재산을 무한히 위협하
며 몇몇 고관 예속자본가들과 결탁하여 국민대중을 착취하여 비천한 피해
대중은 참담한 기아선상에서 연명만을 하고 있으면서도 이런 극심한 것을
말할 자유도 없는 이 나라에서는 이런 민중을 버리고 오직 자본가 정치자
금 제공자들의 이익을 위하여 입법 행정을 하고 있으며 국민 대중들은 물
론 국회의원마저 미국에 아부 예속되고, 약탈의 수단인 원조로써 경제의
명맥을 틀어쥐고 미국의 예속 식민지 군사기지로서 약탈과 착취 부정과 불
의에 항거하는 자들은 미국의 가공할 강압과 보복을 받으면서도 굴복과 사
멸함이 없이 최후의 승리를 쟁취한다는 남한의 현실을 왜곡 허위선전하며
빈민대중에게 계급 및 반정부 의식을 조장하고 북괴의 6.25 남침을 은폐하
고 군복무를 모독하여 방공의식을 해이케 하는 동시에 반미감정을 조성 격
화시켜 반미사상을 고취하여 한미유대를 이간함을 표현하는 등을 주요 내
용으로하여 북괴의 대남적화 전략의 상투적 활동에 동조하는 것이다"

어떤 의미에서 이 작품의 의의는 바로 검찰이 주장하고 있는 공소장의
내용을 참조할만 하다. 1960년대는 한미간의 혈맹의식이 어느 시기보다 고
조되고 또한 반공의식이 전 사회를 옭죄고 있었는데 당시 이런 문학작품이
발표되었다는 것은 일종의 사건에 속한다. 이 작품은 현실을 비판하고 현
실에 저항한 저항문학의 한 본보기라 평가받을 만 하다.

앞서 줄거리를 요약한 바도 있지만 해방이 되었는데도 불구하고 독립투
사였던 아버지가 돌아오지 않고 오히려 환영대회 나갔던 어머니가 겁탈당
하는 장면과, 또한 어머니가 미군으로부터 강간당하고 미쳐서 죽었는데도
불구하고 딸 분이는 미군 스피드 상사와 동거한다는 설정은 충격적이다.

이러한 설정은 아마 불행했던 우리나라 근현대사에 대한 일종의 상징으
로 보인다. 여기서 어머니를 반드시 진짜 어머니로만 제한해서 생각할 필
요는 없을것 같다.

어쩌면 어머니는 우리 민족의 모습인지도 모른다. 수난받는 어머니의 모
습은 일제로부터 해방되었으나 주체적이고 자주적인 신생국가 수립에 실패
하고 미군정이라는 또다른 형태의 이민족 지배에 놓인 우리 민족의 모습이
다.

독립투사인 아버지가 돌아오지 않는다는 설정도 독립운동에 목숨을 바친
애국지사들 역시 독립이 되었지만 신생조국에서 제대로 대접받지 못하고
여전히 친일파들이 득세하는 현실에 대한 아픈 증언으로 읽힌다. 더구나
딸 분이가 스피드상사에게 온갖 구박을 당하면서도 동거하는 이 장면은 바
로 60년대의 우리현실에 대한 풍자이다.

월남전 파병등 정치적인 문제뿐만아니라 무상원조 그리고 사회전반에 뿌
리를 박고있는 양키문화의 잔재가 극성을 부리던 시기가 바로 60년대의 우
리 상황이었다는 점을 감안해 본다면 분이는 어쩌면 바로 60년대의 우리자
신의 자화상인지도 모른다.

필화사건으로 작가가 구속되고 문단과 사회에 일대 회오리바람을 일으킨
남정현의 소설 '분지'는 바로 왜곡된 우리 현대사와 60년대 현실에 대한
정면적인 문제제기이자 풍자이고 또한 비판이라 할 수 있다.
김용락<시인.문학박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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