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출향인사를 찾아서] 사공일 세계경제연구원 이사장

  • 입력 2006-01-16   |  발행일 2006-01-16 제28면   |  수정 2006-01-16
경제학자·관료 큰 족적 남긴 세계적 석학
5共 경제수석·재무장관 등 역임
성공적 경제 정책 이끈 핵심 역할
"기업엔 국경 없어…투자 규제 확 풀어야"
[출향인사를 찾아서] 사공일  세계경제연구원 이사장

사공일 세계경제연구원 이사장(66)은 '한국이 낳은 세계적 경제석학'으로 불러도 손색이 없다.물론 그를 우리 경제가 절정의 호황을 누리던 시절에 청와대 경제수석비서관과 재무부 장관을 지낸 경제관료 정도로만 기억한다면 '석학'이란 칭호는 어울리지 않을 수도 있다. 하지만 경북고와 서울대 상대를 졸업한 뒤 미국으로 건너가 UCLA에서 석·박사 학위를 받고 뉴욕대 교수를 4년간 역임하는 등 관료생활을 전후한 일련의 이력과 세계경제연구원을 이끌고 있는 현직을 보면 '석학'으로 부르는 것이 전혀 어색하지 않다. 그는 평생을 경제와 함께 했다. 경제학 공부를 하고 경제학 교수로 출발해 정부 경제정책을 총괄하는 일을 하다가 다시 국제적 명성을 얻고 있는 경제연구원을 만들어 운영 중이다.

사공 이사장의 고향은 군위군 효령면의 조그만 시골마을이다. 하지만 효령초등 4학년 때 가족을 따라 대구로 이사하는 바람에 효령에 대한 기억은 한정적이다. 선영이 있어 가끔 발걸음을 하지만 어린시절과 학창시절의 추억은 아무래도 대구에서 더 많다. 지금도 대구에는 형님과 누님이 살고 있어 명절이면 들른다.

대구에서는 대구초등과 경북중, 경북고를 다녔다. 초등학교 5학년 때 발발한 6·25 전쟁통에 중학교 시절 방천 가교사에서 수업을 받던 일이 지금은 아련한 추억으로 남아 있다.

고교 시절을 회상할 때면 이종림 교장선생님이 제일 먼저 생각난다고 했다. 앞산 앞의 교정에서 강당을 만들 때 이종림 교장선생님이 운동화 신고 학생들과 함께 들것(당시 일본말로 '당까')으로 모래를 퍼 날랐단다. "요즘 같으면 생각이나 할 수 있는 일이겠습니까. 강직하고 청렴하면서도 소탈하신 분이었죠."

사공 이사장이 요즘 서울에서 자주 만나 고향의 추억을 함께 더듬는 친구들은 대부분 대구초등-경북중-경북고를 쭉 이어서 함께 다닌 동기동창들이다. 같은 경제학자의 길을 걸어 온 윤식 전 대구경북개발연구원장, 대법관을 지낸 정귀호 변호사, 김영식 전 쌍용중공업 사장, 정성진 국가청렴위원장 등이다. 고인이 된 이수정 전 문화부 장관도 생전에 자주 어울린 죽마고우다.

이 외에도 개인사업 등을 하면서 서울에 사는 경북고 39회 동문들이 많다. 이들은 서울 교대역 근처에 조그만 '동기회 사무실'을 만들어 옛 친구들을 만나는 사랑방으로 삼고 있다.

아무래도 사공 이사장이 가장 왕성한 활동을 한 시기는 1980년대 중반 공직생활을 할 때일 것이다. 그는 전두환 대통령 시절 4년 동안 청와대 경제수석을 지냈다. 또 '사공일' 하면 '재무장관'을 떠올리는 사람이 많을 정도로 재무정책의 수장으로서 많은 일을 했다. 경제만을 평가 받는 5공 시절 경제정책의 한 가운데에 그가 있었던 셈이다. 가장 보람 있었던 일을 물어봤다. 생각할 것도 없다는 듯이 바로 대답이 돌아왔다.

"경제가 '너무' 잘 되던 시절에 경제정책을 담당했던 일입니다. 1980년대 초반에 물가와 인플레이션을 잡고 1986년에 경상수지 흑자를 처음 냈지요. 또 당시 외채 문제가 정치권에서 이슈화할 정도로 어려웠는데, 재무장관을 하면서 상당히 많이 갚았어요. 어떤 사람들은 경제정책의 성공을 당시의 '3저(유가·달러가치·국제금리 하락)' 덕택이라고 폄훼하더군요. 그러나 '3저'가 우리나라만의 현상은 아니었지 않습니까."

우리 경제의 활력을 이끌어냈던 사공 이사장에게는 지금 경제현실이 만족스러울 리 만무하다. 이에 대한 의견을 묻자 그는 매우 조심스러워했다. "교수들처럼 칼럼 등을 통해 자유롭게 비판을 할 수 있는 입장도 아니고… 더구나 지금 경제정책을 입안하는 사람들이 모두 후배들인데…."

그러면서도 그가 가장 강조하는 것은 '기업의 투자 마인드 촉진'이었다. "수출은 좋지만 민간소비와 투자가 늘지 않는 것이 굉장히 큰 문제입니다. 투자가 왜 늘어나지 않겠습니까. 기업이 현금을 쌓아놓고만 있기 때문이지요."

이 대목에서 그는 정치적 환경, 정부의 간섭과 규제 등 투자 여건을 제약하는 비경제적 요인에 주목했다. 특히 사회에 팽배한 반기업 정서가 투자동기를 부여하는 데 걸림돌이란 지적이다.

"지구촌 시대에 전세계가 경쟁상대인데, 우리만 투자 여건이 나쁘면 우리 기업들은 다 외국으로 가고, 외국기업들은 우리나라에 오지 않을 것이 뻔하지 않습니까. 투자 활성화에 정책의 포커스를 맞춰야 합니다." 과거정권에서 성공적인 경제정책을 이끌었던 '경제석학'이 현 정부에 조심스럽게 던지는 쓴소리였다.

◆사공일 이사장 약력

△1940년 군위 △경북고·서울대 상과대학, 미국 UCLA 석사·박사 △뉴욕대 교수 △KDI 재정금융실장·부원장 △부총리 겸 경제기획원 장관 자문관 △산업연구원 원장 △청와대 경제수석비서관 △재무부 장관 △IMF 특별고문 △ASEM 비전그룹(AEVG) 의장 △대외경제통상대사 △대통령 경제자문회의 위원 △세계경제연구원 이사장(현)

◇주요 저서 △경제개발과 정부 및 기업가 △세계속의 한국경제 △세계는 기다리지 않는다 외 다수

[출향인사를 찾아서] 사공일  세계경제연구원 이사장
1987년 미국 워싱턴에서 열린 IMF 총회에 한국 대표로 참석해 연설하는 사공일 당시 재무부 장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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