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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장은 모든 맛의 출발점
이번 주에는 장(醬) 얘기를 해봅니다.
된장과 간장은 나무(한식) 뿌리와 같습니다. 이게 중심을 못 잡으면 음식 맛을 자유자재로 못 끌고갑니다.
'간이 맞다'란 말은 '적당하게 짜다'는 뜻입니다. 이게 쉽게 만들어지지 않습니다.
메주란 삼국사기에 등장할 정도로 한민족과 동고동락한 전통식품이죠.
가장 맛있는 된장은 어머니가 자식을 위해 조금 담근 것이고 양이 많아질수록 맛은 감소될 수밖에 없습니다.
된장과 간장은 짭니다. 하지만 신기하죠, 오래 묵힐수록 짜면서도 달싹합니다. 이 오묘한 '상극적 공존미학'을 어떻게 설명할 수 있을까요.
맛있는 음식은 염도가 알맞습니다. 그게 피의 염도(0.9%)와 궁합이 맞아 몸이 편해지는 거죠. 인체의 핏속 염도는 바닷물과 비슷한 0.9%, 그 염도를 의학적으로 만든 게 바로 식염수입니다. 혈액도 그 염도를 갖고 있어야 각종 암 등에 잘 걸리지 않는다는 게 식품의학자들의 일반적인 견해입니다.
염분이 조금 넘치면 짜고, 부족하면 싱겁습니다. 가장 알맞은 포인트를 감지하는 것, 그게 조리사의 실력입니다. 예전 어머니들은 모두 명 조리사였습니다. 하지만 '핵가족·맞벌이 시대'로 접어들면서 부엌을 호령하시던 어머니는 거의 사라지고 '외식하는 아내'만 남은 것 같습니다.
# 장에도 중용의 미가 있어
'장의 미학'을 아십니까?
그 포인트를 잘 알아야 '대장금'이 될 수 있습니다. 문제는 혀입니다. 지금 우리의 혀는 상당히 망가져 있습니다. 맛세포인 미뢰가 날카로움을 잃어버린 탓이지요. 1908년 일본에서 개발된 화학조미료(아지노모도) 때문이기도 하고 칫솔로 혀를 너무 닦아서 그렇게 된 것도 같습니다.
가공식품이 없던 시절에는 조리사의 미뢰가 정상작동돼 국맛 등을 정확하게 잡아낼 수 있었습니다. 화학조미료가 나오면서 우리의 음식 솜씨는 조선 때보다 형편없이 퇴보했다는 지적입니다. 명 조리사는 짠맛을 정복한뒤 다른 맛으로 건너갑니다. 커피도 설탕을 넣는 것보다 소금을 넣는 게 더 맛있다고 하죠.
오는 18일쯤 '정월장'을 담그는 가정이 많을 겁니다. 겨울과 봄의 경계에서 장을 담가야 잡균이 따라붙지 않아 선조들이 이 시기를 찾은 것 같습니다.
양질의 소금은 물과 콩을 만나 두 개의 세상을 만듭니다. 바로 된장과 간장이죠. 콩을 쑤어서 메주를 만들고, 그 메주를 띄워 장을 담그기까지 최소 6개월이 걸려야 '애기 장'이 태어납니다. 아직 갈 길이 멉니다. 거기서 최소 2년이 흘러야 '중급 장', 그 이상 돼야 '고수급 장'으로 등극합니다. 처음엔 불이 나중엔 빛과 공기, 최후엔 세월이 이들을 예술적으로 발효시킵니다. 옛 어른들은 제대로 된 장맛을 보면서 절대 '짜다'는 표현을 사용하지 않았습니다. '달다'고 했습니다. 짜면서도 단 그 묘리를 알아야 장을 제대로 빚을 수 있습니다. 맛은 사람보다 자연의 몫인 것 같습니다.
이 장은 3~5년 미만일 때는 '식품'에 머물지만 더 오래되면 '약품'의 반열로 올라섭니다. 간암 환자가 수십년 묵은 간장을 장복해 암을 정복했다는 얘기도 들립니다.
최근 400여년 묵힌 덧간장 한 병(1ℓ)이 500만원에 팔려 화제가 됐습니다. 충북 보은군 외속리면 하개리 보성 선씨 참의공파 21세 종부 김정옥씨가 1656년 처음 담가 매년 햇된장과 섞어 20ℓ를 리필, 장기 보관해오던 걸 한 대기업 회장에게 팔았다고 합니다.
장의 중요성을 단적으로 암시하는 속담이 몇 있습니다. 한번 음미해보시죠.
'장 단 집에는 가도 말 단 집에는 가지마라'. '한 고을 정치는 술맛으로 알고, 한 집안 일은 장맛으로 안다'. '아이 배어서 담근 장으로 그 아이 결혼할 때 국수를 만다'
# 지역의 된장 명가
우리 지역도 '장의 고장'입니다.
그런데 안타깝게도 지역민들은 그걸 잘 모르는 것 같습니다. 1953년 11월 대구 남산동에서 태어난 삼화식품은 58년 '군납 장 시대'를 엽니다. 일품청, 문화 메주, 수녀원에서 만드는 백합, 김천의 일월, 안동 제비원 전통식품 등도 지역을 장의 도시로 만드는 데 일조했습니다.
특히 58년 문을 연 문화 메주는 '개량 메주'의 선두주자죠. 고 김환태 선생이 서울대 농대 재학시 장류 과학화 를 선도합니다. 그는 메주를 띄우지 않고 발효된 콩만으로 막바로 장을 담글 수 있는 특허 기술을 개발 했습니다.
김천의 농소면을 메주고을로 만든 일월 된장도 유명합니다. 일월은 소형차 티코 모델 등 서울에서의 화려한 경력을 가진 김환옥씨가 90년대 후반 낙향해 만든 겁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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