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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죽도록 맛있는 돼지국밥 있소?
갑이 을에게 이런 귀엣말을 줍니다.
"그 집 돼지국밥 맛, 정말 끝내준다. 당장가서 맛 보라구."
순간, 을은 그 식당 음식을 찬찬히 뜯어보지도 않고 막연한'선입견'을 갖습니다. 그 국밥은 무조건 맛있을 거라는 '환상'이죠. 맛 세포인 '미뢰'는 어쩔 수 없이 최면에 걸립니다. 일종의 '플라시보(Placebo) 효과'죠. "이 약을 한 달간 먹으면 식욕감퇴 현상이 일어나 살이 빠질거라"는 의사의 말을 확신하고 약을 복용하면 정말로 살이 빠지게 되는 것과 비슷한 효과죠.
'소문 맛'이란 게 있습니다.
존재할 수 없는 정체불명의 이 놈이 우리를 유혹하고 못살게 굽니다. 저는 극단적으로 이런 생각을 해봅니다. 사람들이 먹은 음식에 대한 소감을 타인에게 전하지 않고, 음식 광고는 물론 언론에서도 특정 식당을 편들지 않는다면, 식당의 빈익빈 부익부 현상도 어느 정도 완화될 거라고 믿습니다. 식당문화가 성숙하려면 '게임의 룰'이 적용되어야 합니다. 비슷한 맛이라도, 누가 어떻더라 하면 사람은 거기에 혹하게 돼 있습니다. 특히 대구는 소문에 무척 민감합니다. 그래서 상당수 식당 주인들은 '떠는 식당' 음식만 카피합니다. 닮아가는 식당. 결국 세인들로부터 버림받을 겁니다.
지금 우린 '맛의 철학'을 가질 수가 없습니다. 주체적 식사 마인드를 잃었기 때문입니다. 남들이 장에 가니 나도 장에 가는 식입니다. 옆 사람에게 괜찮은 식당을 묻습니다. 누가 괜찮다고 하면 그냥 괜찮은 식당으로 섬깁니다. 조리사가 만든 음식은 맛도 일정 수준을 갖게 됩니다. 같은 내공이라도 소문맛 때문에 누군 흥하고 누군 망합니다. 주인들은 그걸 '운' 탓으로 돌리지만.
◇ 그냥, 시장 안 돼지국밥집에 가봤습니다
대구에 숱한 돼지국밥 골목이 있습니다.
서성로 돼지 골목이 가장 유명했죠. 그곳 팔번식당은 전두환 전 대통령이 찜을 했죠. 서성로 돼지국밥 붐은 이내 도심 재래식 시장 안으로 확산됩니다. 봉덕, 명덕, 서문, 남문, 수성, 중앙, 목련 등으로. 한 그릇 평균 4천원, 따로 국밥식으로 먹으려면 천 원 더 주면 됩니다. 퇴근 후 봉덕시장과 명덕시장 돼지국밥 집을 둘러봤습니다. 올해 40여년의 역사를 가진 봉덕시장 안엔 돼지국밥 집이 모두 7개(김천, 삼정, 한양, 영천, 또또, 왔다, 청도)가 있고 명덕시장에는 8개(영천, 상주, 청송, 명덕, 선산, 서울, 안동, 금호)가 있습니다.
봉덕 시장에는 골수 돼지국밥파들이 많이 들락거립니다.
첫째, 셋째 일요일만 놀고 늘 24시간 돌아갑니다. 여기 오는 국밥파의 혀는 매우 예민합니다. 조금만 맛이 변해도 당장 주인에게 섭섭함을 털어놓습니다. 단골이 고수라서 맛도 속일 수 없습니다. 한번 단골이 되면 좀처럼 식당을 안 바꿉니다. 처음엔 한 집이 씨앗을 뿌렸는데 그 집이 잘 돼 7개 업소로 불어났습니다. 다른 데선 내장도 넣는데 여기선 오직 머리 고기만 고집합니다. 비계는 아까워도 버립니다. 비계파들은 주인에게 비계를 많이 붙은 걸 달라고 부탁합니다. 포대에 담긴 비계와 뼈는 화장품과 개 사료 업체 등에서 수거해 갑니다. 8천~1만원짜리 머리 한 개, 비계 정리하고 나면 선별된 살코기는 고작 2~3인분. 돈이 남을까 싶습니다.
저는 한 식당 앞에서 뚝배기에 국밥을 담는 과정을 유심히 살펴봤습니다. 밑에 밥을 깔고 그 위에 고기를 올립니다. 그 다음 토렴 과정. 이게 예술입니다. 처음엔 국자로 16번쯤 육수를 넣었다 뺐다 합니다. 이게 초벌 토렴, 다음엔 펄펄 끓는 국물에 6~7번 쯤 재벌 토렴한 뒤 손님 테이블로 갖고갑니다. 주인들은 잠시도 쉬지 못합니다. 올해 32년 째 국밥을 팔고 있는 정필분씨(66), 그녀는 "우리 일은 사람이 붐벼도 남는 건 별로 없고 결국 병만 얻는 매우 힘든 직업"이라면서 이 장사의 어려움을 토로했습니다. 그런 줄 몰랐습니다. 명덕시장 서울식당 아줌마는 "며칠전 쓰러져 중환자실 신세도 졌다"면서 링거 바늘 찔려 멍든 자리를 보여줍니다. 이 바닥 아줌마들, 모두 그렇게 살아갑니다. 그들 앞에서 힘들다는 말 하지 맙시다. 파이팅, 돼지 아줌마들!
참고로 요즘 우리가 먹는 부추 올린 국밥 스타일은 3대 100여년의 역사를 가진 경남 밀양시 무안면 무안리 동부식육식당(최수곤)에서 발원했습니다. 그 흐름이 35년전쯤 부산으로 흘러들어가 부산 돼지국밥을 만듭니다. 요즘 국밥집 상호에 밀양과 부산이 많이 들어가는 게 다 그런 이유 때문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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