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춘호 기자의 푸드 블로그] 프랜차이즈 이야기](https://www.yeongnam.com/mnt/file/200703/20070323.010371444230001i1.jpg) |
1979년 등장한 롯데리아는 전국을 '프랜차이즈 권하는 사회'로 만들어버렸다.
맛을 만드는 식당이 아니라 맛을 유통시키는 공룡 브랜드가 된 프랜차이즈는 97년 직후 IMF 외환위기 때 명예퇴직자들에겐 종교 이상으로 각인됐다.
일확천금의 꿈을 가진 가맹본부에 부나비처럼 날아든 서민형 가맹점들과 윈윈 할 수 있는 날은 언제일는지….
식당도 기업인가?
음식만 잘 만들면 그만인 시절이 있었습니다.
간판도, 메뉴판도 주방장도, 종업원도, 메뉴 개발도, 홍보도 필요없고, 심지어 욕쟁이 할매처럼 욕을 해도 그걸 '정'으로 받아들이던 그런 때였죠. 그땐 주인 혼자서 모든 걸 감당했습니다. 입에 풀칠만 해도 감사하던 시절이라서 그랬던 것 같습니다. 채소·과일·가축도 직접 키웠고, 양념도 직접 만들었습니다. 주메뉴는 바뀌지 않았습니다. 화학조미료도 없었습니다. 그래서 더욱 더 좋은 맛을 내기 위해 좋은 간장과 된장, 고추장을 만들었습니다. 주인의 솜씨는 장인급이었습니다. 그래서 그런지 그때 식당은 좀처럼 망하지 않았습니다. '주막형 식당'이라서 그런가 봅니다. 손님은 늘지도 줄지도 않았습니다. 늘 그 맛이었고 늘 그 손님이 찾아왔습니다.
불과 50여년 전만 해도 그랬습니다.
하지만 세상은 역시 변하는 모양인가 봅니다. 1세대 주인들이 하나둘 세상을 떠나기 시작하던 79년 어느 날 한국 식당가에 UFO같은 식당 하나가 침공합니다. 바로 '롯데리아'였습니다. 그 전에 '림스 치킨'이 있었지만 롯데리아의 위력에 숨도 못쉽니다. 그해 서울 대학로에선 '난다랑'이 등장해 '디럭스 체인 커피숍 시대'를 엽니다. 둘의 위력은 쓰나미급이었습니다. 이들은 졸지에 식당을 장사에서 사업의 차원으로 끌어올립니다. 87년 투다리와 놀부보쌈이 또 융단폭격을 가합니다. 거기에 파리바게뜨까지 뛰어들면서 한국은 '체인점 권하는 사회'로 진입합니다. 대구도 야단이었습니다. 거기다가 맥도날드 등 외국계 패스트 푸드도 밀고 들어왔습니다. 감각이 있는 사업가들은 그동안 쳐다보지도 않던 외식분야에 눈길을 줍니다. 30여년이 지난 지금(2005년말 현재) 전국 2천211개 프랜차이즈 가맹본부가 14만2천여개의 가맹점을 거느리고 있습니다. 전국 75만여개 외식업체 평균 5개 중 한 개가 체인점이 된 거죠.
체인도 시대의 산물?
체인점을 나쁘게 보는 사람도 있고 시대의 흐름이라고 인정해주는 이도 있습니다.
저는 아직 '복제식당' 같은 체인점들이 음식을 작품이 아니라 '상품'으로 취급하는 것 같아 늘 아쉽습니다. 일반 식당은 '라이브 음악'을 하는 것 같고, 그들은 CD를 틀어주는 것 같습니다. 생동감이 덜 나는 것 있죠. 그들은 첫째도 남는 것, 둘째도 남는 걸 강조합니다. 남으면 곧바로 메뉴라인을 개혁합니다. 현대인들의 변덕이 심하다는 걸 잘 알기 때문에 2~3년마다 신메뉴를 띄웁니다. 물론 롱런하는 괜찮은 메뉴도 있습니다.
그들은 음식에서 돈을 벌어 다른 데 재투자합니다. 이게 '뼈대 있는' 일반 식당과 다른 점이라 할 수 있습니다. 체인점 음식은 대량유통을 해야 되고 음식의 맛과 소스 맛을 표준화해야 되기 때문에 특정 식당 주인이 자기 지역의 기온과 지역민의 기호에 맞는 자기만의 먹거리로 진화시키는데는 한계가 있습니다. 국밥 같은 건 체인점용으로 부적절하다고 생각합니다.
우리보다 더 빨리 프랜차이즈 역사가 시작된 일본, 현재는 체인점 문화에 거부반응을 보이는 이들이 많습니다. 그들은 "음식은 인간의 생명을 좌지우지하는 것이기 때문에 대장간 같은 한 개의 본점만 있으면 족하고 정 불리려면 직영점 체제로 가야된다"고 합니다. 맞습니다. 그런데 우린 아니죠. 직영점은 생색내기 용으로 몇개 밖에 없고 오직 가맹점 불리기에 혈안이 돼 있습니다. 가맹점을 봉으로 본 거죠. 본부에서 진정 자기 음식을 독립운동한다는 심정으로 퍼트리는 게 아닙니다. 염불보다는 잿밥에 더 관심이 많은 거겠죠. 처음엔 호화찬란하게 광고해 더 많은 이들이 오도록 합니다. 그럼 가맹점과 동고동락해야 되는데 그게 아니라서….
지금 젊은이들은 자꾸 체인점에 포로가 되어갑니다. 일반 식당은 더 죽을 지경입니다. 하지만 걱정하지 마세요. 체인사업 열풍도 머잖아 교통정리될 것 같습니다. 프랜차이즈 태풍이 지나가고 나면 다시 일반 식당이 세를 얻을 겁니다. 이젠 나만의 음식을 찾는, 평생 한 가지 음식에 평생을 바친 장인급 조리사의 깊은 맛, 그런 '친환경 웰빙식'을 원하는 마니아들이 늘어나고 있습니다. 그들은 체인점보다 일반 음식점을 선호합니다. 물론 체인점도 살아야겠죠,
하지만 체인점밖에 없는 도시도 생각해보세요. 삭막하지 않으세요. 제발 체인점에 쏟는 관심만큼 우직하게 한 점포, 한 길만 가는 외곬에게도 눈길을 주세요.
향토의 대표 체인점
대구 프랜차이즈의 효시는 모르긴 해도 경상도에서 가장 많이 불고기를 판 대구시 중구 계산동 '땅집'으로 볼 수 있습니다. 땅집 여사장 박복윤은 무척 정이 많은 여성이었습니다. 요즘 같은 체인사업을 용납할 사람이 아니었습니다.
그녀의 생각은 이랬겠죠. 자기 집 음식이 맛있어 같은 이름으로 식당을 내겠다고 하는 데 어떻게 매정하게 상표권 사용료를 받을 수 있겠냐.
그곳 주방장 하창수는 결혼 직후 본점 땅집에서 분가해 동인동에 제2 땅집을 엽니다. 요즘의 가맹점이라기 보다는 직영점에 가까운 형태였습니다.
이어 현재 경기도 과천에 살고 있는 김천 출신의 김종열 할머니도 북성로 대안사 근처에 북성로 땅집을 오픈합니다. 물론 박 사장은 왜 남의 이름을 함부로 사용하냐고 뭐라고 하지 않았습니다.
이후 80년대 들어 장우동이 등장하합니다. 원조 현풍 박소선 할매집곰탕은 70년대초 구마고속도로 건설 특수 붐을 통해 일어났고 80년대 중구 사보이 호텔 맞은편에서 대구 1호 직영점 시대를 엽니다. 이후 현풍 할매는 93년쯤 앞산순환도로 쪽으로 옮겨와 앞산직영점 시대를 열고 현재 중국으로도 진출했습니다.
대구를 치킨 체인의 고향으로 불리게 만든 교촌치킨은 지난 91년 경북 구미에서 1호점을 연이래, 창립 10여년인 현재 연 300억원이 넘는 매출액, 전국 체인점 440여점을 보유한 프랜차이즈 기업으로 성장합니다.
이밖에 맥시카나 치킨, 홍천뚝배기, 서재할매매운탕, 봉창이 해물칼국수, 바르미, 마듀, 나드리김밥천국, 달감치킨호프, 떡보의 하루, 다빈치, 고불치킨, 삼화푸드몰, 고향정 보리뷔페, 개성 평통보쌈, 매운맛 떡볶이 신떡, 속에천불 청송 막걸리 등 '대구발 체인점' 등이 전국을 강타합니다.
부디 체인점이 그동안 가맹점들에게 진 빚을 모두 갚고 명실상부한 한국 외식문화를 개척하나길 기원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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